두 달만에 업무와 동인지 발행의 이중고에서 살아 귀환한 KISARA입니다. 당신도 700페이지 넘게 편집하고 교정해 보라고 토가 안 쏠리나!! (버럭)
꼬박 2개월을 내팽개친 - 자랑이냐! - 블로그 시동도 슬슬 걸 겸, 마치 무언가에 접신하신 듯 원고량이 가히 하늘을 찔렀을 뿐더러(....) 표지 디자인에까지 협조해 주신 사예 님께 약소한 선물을 하고자 이 포스팅을 바칩니다 오홋홋홋. 제가 지난 번에 말씀드렸죠 저를 기쁘게 하시면 보답이 돌아간다고. 그런 의미에서 꼬옥 부장의 껍데기는 매우 쓸만하다는 사실의 입증을....어험어험.
출처는 테츠자루(鉄猿)가 발행한 <오키히지 셀렉션(おきひじ*せれくそん)>에 수록된 우즈키(羽月) 씨의 Link. 부장 따위(......)로 내 스물(삐──)번째 생일을 축하해야 한다는 게 진심으로 못마땅하지만 (야) 뭐 어떻습니까, 가끔은 우리 소고 우리 왕자님 좋은 일도 해야죠. 내 얼마 남지도 않은 사회적 체면과 명예를 걸고 부장 따위에게 좋은 일을 할 생각일랑 추호도 없지 말입니다?
늘 그렇듯이 번역의 질을 꼬장꼬장 따지실 경우 귀를 막고 엉터리 음정박자로 압구정 날라리를 불러제끼겠음. 나는 유리심장의 에이스라고.
흥 부장 따위.
부장이 어쩐지 멀쩡해 보이는 건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의 필터링이기 때문입니다.
(1)
"……소고, 우리 직업은 뭐냐?"
울림이 깊고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오는 흑발의 사내에게, 강제적으로 마주앉아 정좌하고 있는 동안의 청년──오키타 소고는 마치 인형처럼 단정한 무표정으로 응했다.
"무장경찰 진선조 1번대 대장이자 장래의 부장이죠."
"뒤쪽에 니 소망을 멋대로 끼워넣지 말라고. 내가 미쳤냐 너한테 물려주게."
더구나 지금의 대답으로는 현역 부장인 그 자신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의 흑발의 사내──히지카타는 어이없이 탄식하고 이마를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미 정신적으로 몹시 지쳐빠진 탓에 고함을 지르고 악다구니할 기력도 일지 않는다.
그러나 히지카타의 심정이야 어찌 됐건 나 몰라라인 오키타는 옅은 빛깔의 머리칼을 사뿐히 찰랑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듣기에는 좋지만 상황을 의아해 하는 천진한 몸짓은커녕 고작 요딴 일로 나불나불 잔소리를 늘어놓게 별 속 좁은 인간도 다 보겠네, 라는 마음의 소리가 고대로 묻어나오는 짐짓 꾸민 티가 역력한 동작이다.
"남자가 되게도 쫀쫀하긴. 누가 당신 모가지까지 따가겠댑니까. 피해망상도 심각하시지 뒈져라 히지카타."
"허구헌날 틈만 나면 내 모가지부터 분지르려는 놈이 말이 많다. 니가 죽어라 오키타."
덤덤하게 악담을 주고받고, 히지카타는 등뒤의 서탁으로 손을 뻗어 재떨이를 들었다. 재로 변한 담배를 톡톡 두드려 불필요한 부분을 떨어낸다. 다시 담배를 물고 연기를 깊숙이 들이마시자 짜증과 울분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이 정도에 일일이 눈을 치켜뜨고 짖었다간 필경 스트레스로 요절할 거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요 건방진 녀석과는 지긋지긋하게 부대끼고 산 사이이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데도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필터 근처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히지카타는 거의 고집불통 애새끼에게 훈계를 내리는 양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그래, 니 녀석 말대로 우리는 경찰이다. 자 그럼 다음으로, 이건 뭐야."
귀찮은 티가 더덕더덕 묻어나는 폼으로 히지카타는 왼손을 내밀었다. 오키타는 동글동글한 커다란 눈을 내려깔고 시선을 던졌다.
"금속인뎁쇼."
"누가 소재를 물었어. 이 도구가 뭐란 물건인지 대답해 보란 말이다."
"맙소사, 이젠 그런 기본상식도 다 까먹고 나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히지카타 씨 완전히 갔네 갔어. 냉큼 나한테 부장 자릴 양보하고 은둔하지 그러슈?"
"내가 정말 몰라서 이러겠냐 샛갸! 학교 선생이 정답을 모르고 학생한테 묻는 적도 다 있디!?"
"당신 주제에 학교 선생이 다 뭐예요 분수도 모르고."
"남이사! 대답이나 해!!"
스스로도 선생은 영 아니다 싶던 차에 그 점을 아주 대놓고 찔러주니 창피해서 죽을 것 같다. 히지카타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고 바로 걸고 넘어진 거라면 이놈은 진실로 구제가 불가능한 극악 새디스트다.
더 이상 오키타가 물고 늘어져도 곤란하므로 히지카타는 대답을 재촉하듯 내민 손을 위아래로 내저었다. 철겅. 그에 따라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오키타의 말대로 금속 소리였다. 차가운 금속은 히지카타의 왼쪽 손목을 한 바퀴 빙 돌아 원을 이루었고, 한 지점에서 짧은 쇠사슬을 늘어뜨렸다. 사슬 끝에는 히지카타의 손목에 걸린 것과 똑같은 사이즈의 원이 매달렸고, 지금은 할일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히지카타도 매일같이 보는 지극히 평범한 모양의 도구이다. 직무 상 필요불가결한 만큼, 오키타가 소지하고 있어도 이상할 일은 하등 없었다. 따라서 당장 추궁해야 할 문제는 그쪽이 아니다.
둔중하고 불필요한 액세서리 덕분에 묵직한 손을 늘어뜨리고, 히지카타는 오키타를 째려보았다. 그러나 남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표표한 태도로, 오키타는 거리낌 없이 정답을 입에 올렸다.
"수갑이죠."
"그래, 수갑이다. 수갑은 뭐에 쓰는 물건이지?"
"범인을 체포하는 데 쓰죠."
"그럼 해명 좀 해보시지. 범죄자를 포박하기에 쓰는 수갑을, 니녀석은 당최 뭔 이유로 범법자를 체포하는 입장인 내 손에다 채웠는지 말야."
짜증이 줄줄 묻어나는 어조로 물으며, 히지카타는 현상황의 불가해함을 강조하는 양 수갑이 채워진 왼손을 흔들었다. 짧고도 튼튼한 쇠사슬과 그 끝에 매달린 금속고리가 철컹철컹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서류 처리에만 실컷 골몰하다 수갑이 채워지도록 오키타의 접근을 허용하고 만 게 생각하면 할수록 복장이 터졌다. 이불 속에서 하이킥해야 할 흑역사다.
"머리 참 안 돌아가시네, 히지카타 씨. 경찰관계자도 범죄를 저지르고 오랏줄을 받는 놈은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러나 히지카타야 자기혐오와 분노에 발버둥치건 말건, 오키타는 불에 휘발유를 싸지를 기세로 자랑스럽게 핀트가 한참 안 맞는 정론을 들이밀었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뿌직 끊어지는 소리를, 히지카타는 분명히 들었다.
"업무용 비품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이 병신 샛기야아아아아아아아!!!!!!"
(2)
히지카타의 바로 앞에서 여전히 강제적으로 정좌하고 앉은 오키타는 불만이 꽉 낀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한 손으로는 옆머리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바로 직전에 분노에 쩐 히지카타가 철권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 완벽하게 철두철미하게 오키타의 자업자득이었으므로 히지카타는 먼지 한 톨만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양반다리의 무릎으로 받친 팔꿈치에 턱을 괴고 앉아, 히지카타는 험악한 면상으로 수갑 딸린 왼손을 휘저었다. 이번에는 하릴없이 늘어진 빈 고리를 오키타가 꽉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실쭉해진 주제에 히지카타를 냅두고 사라진다는 선택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히지카타로 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겠지만.
히지카타로 말할 것 같으면 이대로 시간이나 죽이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았으므로, 오키타의 손을 매단 채 왼손바닥을 펴서 녀석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열쇠 내놔."
"싫어요."
오키타는 토라진 말투로 대꾸하고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태도가 어찌나 밉살스럽던지 히지카타는 또 한 번 울컥했다. 저주니 장난질이니 히지카타를 들들 볶는 짓과 낮잠만은 뭐가 터져도 매일같이 충실히 영위하는 오키타를 두고 일일이 복장 뒤집어봤자 이쪽 신경만 닳을 게 뻔할 뻔자였지만, 그래도 열받는 건 열받는 것이다. 한쪽 손에나마 수갑을 차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어지간히 굴욕적이었다.
"야, 열쇠."
"싫대두요."
그럼에도 이놈의 심술궂은 애새끼는 히지카타의 요청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히지카타가 눈빛만으로도 사람 하나 능히 때려잡을 면상으로 노려보아도 너는 짖어라 나는 모른다는 양 시치미를 딱 뗄 뿐이었다.
열쇠를 내놓을 마음이 없다면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마고 굳게 결심한 히지카타는, 아마 그때 짜증과 울분으로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했던 것이리라. 오키타가 붙잡은 고리를 냅다 빼앗아 그대로 녀석의 오른손에 철꺽 채웠다. 금속이 쓸리는 가벼운 소리가 찰캉 울린다.
수갑이 채워진 제 손을 내려다보던 오키타는, 마침내 상황을 인식하고 비명을 질렀다.
"우와──! 이게 뭔 짓이에요!!"
"시꺼. 싫으면 얼른 열쇠 내놔."
히지카타가 으르렁거리자, 반론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오키타는 마지못해 제복의 안쪽 주머니에 굼실굼실 손을 밀어넣었다. 한참 안쪽을 더듬더듬하더니, 손을 뽑아 바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한다. 양옆의 두 개와 엉덩이의 주머니까지 부산스럽게 뒤집어놓는다.
히지카타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고맙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류의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는 법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히지카타는 한 손으로 담배를 뽑아물고 미간을 찌푸린 채 불을 붙였다.
한참 후에야 오키타가 감정없는 얼굴로 물어왔다.
"히지카타 씨, 내 수갑 열쇠 어딨는지 못 봤어요?"
"봤을 리도 알 리도 없잖아 이 골빈 놈아!!!"
예상을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아 눈물마저 나올 듯한 전개에 히지카타는 온 힘을 다해 처절히 절규했다. 오키타는 귀찮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귓구멍에 쑤셔넣어 고함소리를 차단해 버렸다. 한 대 쥐어박고 싶어 손이 근질대는 태도다.
이놈 새끼는 도대체 얼마나 더 사람 속을 박박 긁어야 직성이 풀릴지, 히지카타는 담배를 마구 짓씹었다. 연기를 굴뚝처럼 내뿜으며, 냉정해져라, 침착하라고 마음 속으로 주문처럼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다. 그래도 나오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일그러졌다.
"스페어 키는."
"없어요. 요전에 아차 실수로 변소에다 흘려보냈지 뭡니까."
"……."
그리고 예비 열쇠마저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더는 뱉어낼 말도 없는 히지카타는 지끈지끈 쑤시는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좌절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상황을 호전시키겠답시고 오키타에게 수갑을 채운 것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두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를 홀랑 뒤집어보게 했지만, 아이마스크니 사탕이니 휴대폰이니 5촌정이니 지갑 따위가 쏟아져 나올 뿐 역시 열쇠는 없었다. 다다미 위에 쭉 진열된 제 소지품과 수갑이 채워진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오키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덤덤한 얼굴로 천연덕스레 말을 꺼냈다.
"이거 큰일났는데요 히지카타 씨. 오른손을 쓰지 못하니 도저히 일도 못하겠는걸요."
"그러냐. 난 반대 상황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조금도 곤란하게 들리지 않는 오키타의 평탄한 목소리에 히지카타도 자포자기한 투로 대꾸했다. 만약 지금과 정반대의 상황──히지카타가 오른손을 쓰지 못하고 오키타의 오른손이 자유로운 상황이었다면 일이고 뭐고 없었으리라. 하긴, 그렇다고 위안이 되느냐 하면 저언혀 아니지만.
담배를 짓씹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히지카타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손을 보았다. 수갑이 구속에 쓰이는 것은 고리 두 개를 짧은 쇠사슬이 잇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쇠사슬만 없으면 행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셈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턱을 괴고 망연히 중얼거렸다.
"……사슬, 팍 끊어버려?"
"헤에, 입이 마르고 닳도록 비품을 소중히 하라고 악악거리던 히지카타 씨가 솔선해서 수갑을 부수겠다고요?"
"큭, 근본적으로 다 니놈 잘못이잖아!!"
귀신 목이라도 딴 양 고약한 미소를 만면에 띠우는 오키타에게 히지카타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덤으로 서탁을 주먹으로 쾅 내려치자 수북하게 쌓인 재떨이에서 꽁초와 재가 후드득 떨어진다.
분명 이 수갑은 진선조의 비품이긴 하지만, 열쇠가 없어서야 어차피 아무 데도 써먹지 못하니 고이 둬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포함해 히지카타가 설교를 늘어놓자, 따분한 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오키타가 앞으로 몇 시간만 더 참아요, 라고 말대답을 했다.
"엉? 왜 몇 시간이야?"
"새 스페어키가 오늘 저녁에 배달올 예정이라구요."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제법 진지한 얼굴로 지껄이는 오키타를 앞에 두고 히지카타는 한숨을 금할 수 없었다. 암만 그럴싸한 얼굴을 지어봤자 정말로 비품을 아껴서 이러는 게 아닌 줄 보나마나 뻔했기 때문이다.
행동을 제한받는 건 저도 싫을 텐데, 히지카타를 조금이라도 더 볶는 쪽을 선택하는 그 기개는 아예 상찬마저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3)
수갑을 나란히 차고 순찰만은 죽어도 싫다는 히지카타의 주장에 따라 ─ 오키타도 동감이었다 ─ 열쇠가 올 때까지 히지카타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 손을 못 써도 오른손만 비어 있으면 서류 작업쯤은 할 수 있다며 히지카타는 계속 서탁과 마주앉아 눈씨름 중이다. 그리고 히지카타에게서 30센티미터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등에 기대고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낮잠이나 잘까 하고 히지카타 왈 꼴같잖은 무늬라는 아이마스크를 꺼내봤지만, 또 이럴 때는 졸음이라고는 오지 않는지라 별 수 없이 포기하고 주머니에 도로 쑤셔넣었다.
오후의 둔영은 대부분이 자리를 비우고 있어 몹시 조용했고, 펜이 종이를 사각사각 갉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때때로 장지문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그에 섞여든다. 찌를 듯이 차디찬 겨울의 공기에 회색 연기가 은은하게 떠돌며 천장에 닿았다.
그 와중에 등만이 따스한 게 기분 나빴다. 마치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만 같아서.
장난질이 그다지 성과를 보지 못한 데 내심 혀를 칫 차면서, 오키타는 쉴새없이 이어지는 등 뒤의 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을 보낼 만한 물건을 찾아보려 상의 안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보니, 맨 밑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찔렀다. 가느다랗고 뾰족한 금속재질.
히지카타 주살용 5촌정이다.
딱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이 사내와 만났을 때 뒤집어진 복장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절찬 지속 중이었다.
단순히 싫다는 한 마디로 뭉뚱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증오와 그 밖의 여러 가지가 뒤섞일대로 뒤섞여 엉망진창이 된 감정이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던, 만나지 않았으면 영원히 알 일이 없었을 이 감정이 오키타는 때때로 불쾌했다. 휘둘리고 있다고, 느껴지니까.
그게 견딜 수 없도록 싫어서, 차라리 이 사내가 죽어버리면 편하리라고, 오키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숨통을 끊어주려고 획책한다.
마주 닿은 등을 떼어내 히지카타에게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었다. 히지카타는 아는지 모르는지 손만을 바지런히 놀리고 있다. 쇠사슬이 쓸리는 금속음만이 찰강찰강 울렸다. 오키타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재미도 없는 다다미를 응시했다.
히지카타 토시로라는 사내는 자각 한 톨 없이 주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한 번이라도 길이 교차하면, 이후의 길은 이 사내로 인해 좋든 싫든 간에 일그러지고 만다. 곤도와 같이 주변 사람들을 독려해 이끌어가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틀어지게 하는 인력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오키타의 세계도 그러했다.
오키타 자신과 누이와 곤도와 그 밖의 몇 명으로 파문 하나 없는 원형을 이루었던 관계는, 이 남자가 뒤늦게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여지없이 뒤틀렸다.
그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는데, 히지카타는 더더욱 오키타의 신경을 할퀴었다.
──내가 알 바 아냐.
제가 끼치는 영향을 알지도 못한 채, 이 남자는 뻔뻔하게 지껄인다.
마음에 들지 않아. 그것뿐이다. 결론은 언제고 여기로 귀결한다.
그렇게 부풀어오른 격한 감정은 ─ 아마도 살의이리라 ─ 제어를 벗어나 폭주했다.
수갑이 채워진 손을 있는 힘껏 휘저었다. 사슬에 끌려 팔이 위치를 벗어나자 놀란 히지카타가 뒤를 돌아본다. 히지카타를 잡아당겨 바닥에 냅다 쓰러뜨렸다. 수갑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에 의표를 찔린 것도 도와, 남자는 너무나 쉽게 나뒹굴었다. 위를 보고 자빠진 히지카타에게 신속하게 올라탄 오키타는, 자유로운 왼손을 한껏 휘둘러 올렸다. 손에 쥔 물건이 형광등 빛에 섬뜩하게 빛났다. 히지카타의 눈이 크게 뜨인다. 동공이 열려 칠흑빛을 띤 사내의 눈동자를 오키타는 내려다보았다.
움켜쥔 5촌정의 뾰족한 끝을 내리쳤다.
안구 바로 앞에 흉기가 쇄도해도 히지카타는 눈을 감지 않았다. 경악에 찬 표정을 띤 것도 잠시뿐, 금세 가라앉고 말았다. 저를 타고 앉은 남자가 이 순간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조차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런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쑤셔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진심으로, 당신만 없어지면 만사형통이지 싶을 때가 있어요."
"……새삼스럽게 뭘."
"지금 막 재확인했거든요."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 나쁘지도 않다는 그놈의 낯짝을 보노라니 뱃속이 뒤집힐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인력으로 주위를 마구 휘저어놓고, 정작 자신은 차가운 눈으로 모든 걸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내는.
히지카타의 입술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다다미를 그을리는 담배가 시야 한 끄트머리에 머물렀음에도 오키타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대로 시선을 아래에 깔린 남자에게 돌린다.
농락당하는 쪽이 멍청하다고 확신하는 듯한 그 맨질맨질한 얼굴이 죽도록 싫었다. 이쪽이 겪는 것의 반분만이라도 니놈 역시 겪어보라는 원망의 말이 쉼없이 쏟아져나온다. 나는 이토록이나 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흔들리고 있는데, 이 사내에게 나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분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진심으로 이쪽을 보게 할 수 없음에 오키타는 절망한다.
부르쥔 정을 안구에서 목젖으로 옮겨가며 오키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슴속에서 시커멓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으로, 내뱉는 목소리마저 거칠게 갈라졌다.
"당신도,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휘둘려 버리라지."
으르렁대듯 토해내는 오키타의 말에, 직전까지 험상궂던 히지카타의 표정이 단숨에 무너지고 어이없는 빛을 띠웠다. 덤으로 보란 듯이 한숨까지 거창하게 내쉰다. 바보 취급을 당한 기분에 발끈한 오키타는 양눈에 살의를 담고 정 끄트머리로 목덜미의 피부를 눌렀다.
호흡으로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따끔하게 찔러오는 정을 손으로 내치고, 히지카타는 어이를 상실했다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야 임마……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굴려대는 주제에 아직도 모자란 거냐."
엣. 오키타는 눈을 깜박였다. 그 반응에 히지카타는 또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오키타는 단박에 전의를 상실하고 당혹했다. 히지카타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그 자리를 땜빵하려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도 아님을 알았으므로.
"히지카타 씨, 휘둘리고 있어요? 나한테?"
"그렇다 이놈아. 평소 니 소행을 돌이켜봐라."
오키타가 반문하자, 히지카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내버려두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닐지 모르니 항상 눈을 붙박고 있어야 한다. 사실은, 단지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라고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벌레 씹은 표정이 된 히지카타를 똑바로 굽어보며, 오키타의 입술 끝이 천천히 위로 치켜올라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울 만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다.
"그럼 히지카타 씨는, 계속 나만 지켜보면 돼요."
"하아?"
"딴 쪽에 눈을 돌릴 여가도 없을 만큼 갖고 놀아줄게요."
상반신을 수그리고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치면서 속삭인다. 마치 협박하는 양 정을 다시금 부드러운 피부에 눌러대고, 오키타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것이 연모라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을 치졸한 독점욕임을 깨닫는 일 없이, 오키타는 수갑으로 이어진 히지카타의 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나 좀 살려주라……."
도망치듯이 눈을 감은 히지카타는, 길게 길게 탄식하고 얽힌 손가락을 마주 잡아주었다.
"……소고, 우리 직업은 뭐냐?"
울림이 깊고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오는 흑발의 사내에게, 강제적으로 마주앉아 정좌하고 있는 동안의 청년──오키타 소고는 마치 인형처럼 단정한 무표정으로 응했다.
"무장경찰 진선조 1번대 대장이자 장래의 부장이죠."
"뒤쪽에 니 소망을 멋대로 끼워넣지 말라고. 내가 미쳤냐 너한테 물려주게."
더구나 지금의 대답으로는 현역 부장인 그 자신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의 흑발의 사내──히지카타는 어이없이 탄식하고 이마를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미 정신적으로 몹시 지쳐빠진 탓에 고함을 지르고 악다구니할 기력도 일지 않는다.
그러나 히지카타의 심정이야 어찌 됐건 나 몰라라인 오키타는 옅은 빛깔의 머리칼을 사뿐히 찰랑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듣기에는 좋지만 상황을 의아해 하는 천진한 몸짓은커녕 고작 요딴 일로 나불나불 잔소리를 늘어놓게 별 속 좁은 인간도 다 보겠네, 라는 마음의 소리가 고대로 묻어나오는 짐짓 꾸민 티가 역력한 동작이다.
"남자가 되게도 쫀쫀하긴. 누가 당신 모가지까지 따가겠댑니까. 피해망상도 심각하시지 뒈져라 히지카타."
"허구헌날 틈만 나면 내 모가지부터 분지르려는 놈이 말이 많다. 니가 죽어라 오키타."
덤덤하게 악담을 주고받고, 히지카타는 등뒤의 서탁으로 손을 뻗어 재떨이를 들었다. 재로 변한 담배를 톡톡 두드려 불필요한 부분을 떨어낸다. 다시 담배를 물고 연기를 깊숙이 들이마시자 짜증과 울분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이 정도에 일일이 눈을 치켜뜨고 짖었다간 필경 스트레스로 요절할 거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요 건방진 녀석과는 지긋지긋하게 부대끼고 산 사이이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데도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필터 근처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히지카타는 거의 고집불통 애새끼에게 훈계를 내리는 양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그래, 니 녀석 말대로 우리는 경찰이다. 자 그럼 다음으로, 이건 뭐야."
귀찮은 티가 더덕더덕 묻어나는 폼으로 히지카타는 왼손을 내밀었다. 오키타는 동글동글한 커다란 눈을 내려깔고 시선을 던졌다.
"금속인뎁쇼."
"누가 소재를 물었어. 이 도구가 뭐란 물건인지 대답해 보란 말이다."
"맙소사, 이젠 그런 기본상식도 다 까먹고 나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히지카타 씨 완전히 갔네 갔어. 냉큼 나한테 부장 자릴 양보하고 은둔하지 그러슈?"
"내가 정말 몰라서 이러겠냐 샛갸! 학교 선생이 정답을 모르고 학생한테 묻는 적도 다 있디!?"
"당신 주제에 학교 선생이 다 뭐예요 분수도 모르고."
"남이사! 대답이나 해!!"
스스로도 선생은 영 아니다 싶던 차에 그 점을 아주 대놓고 찔러주니 창피해서 죽을 것 같다. 히지카타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고 바로 걸고 넘어진 거라면 이놈은 진실로 구제가 불가능한 극악 새디스트다.
더 이상 오키타가 물고 늘어져도 곤란하므로 히지카타는 대답을 재촉하듯 내민 손을 위아래로 내저었다. 철겅. 그에 따라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오키타의 말대로 금속 소리였다. 차가운 금속은 히지카타의 왼쪽 손목을 한 바퀴 빙 돌아 원을 이루었고, 한 지점에서 짧은 쇠사슬을 늘어뜨렸다. 사슬 끝에는 히지카타의 손목에 걸린 것과 똑같은 사이즈의 원이 매달렸고, 지금은 할일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히지카타도 매일같이 보는 지극히 평범한 모양의 도구이다. 직무 상 필요불가결한 만큼, 오키타가 소지하고 있어도 이상할 일은 하등 없었다. 따라서 당장 추궁해야 할 문제는 그쪽이 아니다.
둔중하고 불필요한 액세서리 덕분에 묵직한 손을 늘어뜨리고, 히지카타는 오키타를 째려보았다. 그러나 남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표표한 태도로, 오키타는 거리낌 없이 정답을 입에 올렸다.
"수갑이죠."
"그래, 수갑이다. 수갑은 뭐에 쓰는 물건이지?"
"범인을 체포하는 데 쓰죠."
"그럼 해명 좀 해보시지. 범죄자를 포박하기에 쓰는 수갑을, 니녀석은 당최 뭔 이유로 범법자를 체포하는 입장인 내 손에다 채웠는지 말야."
짜증이 줄줄 묻어나는 어조로 물으며, 히지카타는 현상황의 불가해함을 강조하는 양 수갑이 채워진 왼손을 흔들었다. 짧고도 튼튼한 쇠사슬과 그 끝에 매달린 금속고리가 철컹철컹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서류 처리에만 실컷 골몰하다 수갑이 채워지도록 오키타의 접근을 허용하고 만 게 생각하면 할수록 복장이 터졌다. 이불 속에서 하이킥해야 할 흑역사다.
"머리 참 안 돌아가시네, 히지카타 씨. 경찰관계자도 범죄를 저지르고 오랏줄을 받는 놈은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러나 히지카타야 자기혐오와 분노에 발버둥치건 말건, 오키타는 불에 휘발유를 싸지를 기세로 자랑스럽게 핀트가 한참 안 맞는 정론을 들이밀었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뿌직 끊어지는 소리를, 히지카타는 분명히 들었다.
"업무용 비품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이 병신 샛기야아아아아아아아!!!!!!"
(2)
히지카타의 바로 앞에서 여전히 강제적으로 정좌하고 앉은 오키타는 불만이 꽉 낀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한 손으로는 옆머리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바로 직전에 분노에 쩐 히지카타가 철권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 완벽하게 철두철미하게 오키타의 자업자득이었으므로 히지카타는 먼지 한 톨만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양반다리의 무릎으로 받친 팔꿈치에 턱을 괴고 앉아, 히지카타는 험악한 면상으로 수갑 딸린 왼손을 휘저었다. 이번에는 하릴없이 늘어진 빈 고리를 오키타가 꽉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실쭉해진 주제에 히지카타를 냅두고 사라진다는 선택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히지카타로 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겠지만.
히지카타로 말할 것 같으면 이대로 시간이나 죽이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았으므로, 오키타의 손을 매단 채 왼손바닥을 펴서 녀석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열쇠 내놔."
"싫어요."
오키타는 토라진 말투로 대꾸하고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태도가 어찌나 밉살스럽던지 히지카타는 또 한 번 울컥했다. 저주니 장난질이니 히지카타를 들들 볶는 짓과 낮잠만은 뭐가 터져도 매일같이 충실히 영위하는 오키타를 두고 일일이 복장 뒤집어봤자 이쪽 신경만 닳을 게 뻔할 뻔자였지만, 그래도 열받는 건 열받는 것이다. 한쪽 손에나마 수갑을 차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어지간히 굴욕적이었다.
"야, 열쇠."
"싫대두요."
그럼에도 이놈의 심술궂은 애새끼는 히지카타의 요청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히지카타가 눈빛만으로도 사람 하나 능히 때려잡을 면상으로 노려보아도 너는 짖어라 나는 모른다는 양 시치미를 딱 뗄 뿐이었다.
열쇠를 내놓을 마음이 없다면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마고 굳게 결심한 히지카타는, 아마 그때 짜증과 울분으로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했던 것이리라. 오키타가 붙잡은 고리를 냅다 빼앗아 그대로 녀석의 오른손에 철꺽 채웠다. 금속이 쓸리는 가벼운 소리가 찰캉 울린다.
수갑이 채워진 제 손을 내려다보던 오키타는, 마침내 상황을 인식하고 비명을 질렀다.
"우와──! 이게 뭔 짓이에요!!"
"시꺼. 싫으면 얼른 열쇠 내놔."
히지카타가 으르렁거리자, 반론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오키타는 마지못해 제복의 안쪽 주머니에 굼실굼실 손을 밀어넣었다. 한참 안쪽을 더듬더듬하더니, 손을 뽑아 바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한다. 양옆의 두 개와 엉덩이의 주머니까지 부산스럽게 뒤집어놓는다.
히지카타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고맙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류의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는 법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히지카타는 한 손으로 담배를 뽑아물고 미간을 찌푸린 채 불을 붙였다.
한참 후에야 오키타가 감정없는 얼굴로 물어왔다.
"히지카타 씨, 내 수갑 열쇠 어딨는지 못 봤어요?"
"봤을 리도 알 리도 없잖아 이 골빈 놈아!!!"
예상을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아 눈물마저 나올 듯한 전개에 히지카타는 온 힘을 다해 처절히 절규했다. 오키타는 귀찮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귓구멍에 쑤셔넣어 고함소리를 차단해 버렸다. 한 대 쥐어박고 싶어 손이 근질대는 태도다.
이놈 새끼는 도대체 얼마나 더 사람 속을 박박 긁어야 직성이 풀릴지, 히지카타는 담배를 마구 짓씹었다. 연기를 굴뚝처럼 내뿜으며, 냉정해져라, 침착하라고 마음 속으로 주문처럼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다. 그래도 나오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일그러졌다.
"스페어 키는."
"없어요. 요전에 아차 실수로 변소에다 흘려보냈지 뭡니까."
"……."
그리고 예비 열쇠마저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더는 뱉어낼 말도 없는 히지카타는 지끈지끈 쑤시는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좌절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상황을 호전시키겠답시고 오키타에게 수갑을 채운 것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두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를 홀랑 뒤집어보게 했지만, 아이마스크니 사탕이니 휴대폰이니 5촌정이니 지갑 따위가 쏟아져 나올 뿐 역시 열쇠는 없었다. 다다미 위에 쭉 진열된 제 소지품과 수갑이 채워진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오키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덤덤한 얼굴로 천연덕스레 말을 꺼냈다.
"이거 큰일났는데요 히지카타 씨. 오른손을 쓰지 못하니 도저히 일도 못하겠는걸요."
"그러냐. 난 반대 상황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조금도 곤란하게 들리지 않는 오키타의 평탄한 목소리에 히지카타도 자포자기한 투로 대꾸했다. 만약 지금과 정반대의 상황──히지카타가 오른손을 쓰지 못하고 오키타의 오른손이 자유로운 상황이었다면 일이고 뭐고 없었으리라. 하긴, 그렇다고 위안이 되느냐 하면 저언혀 아니지만.
담배를 짓씹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히지카타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손을 보았다. 수갑이 구속에 쓰이는 것은 고리 두 개를 짧은 쇠사슬이 잇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쇠사슬만 없으면 행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셈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턱을 괴고 망연히 중얼거렸다.
"……사슬, 팍 끊어버려?"
"헤에, 입이 마르고 닳도록 비품을 소중히 하라고 악악거리던 히지카타 씨가 솔선해서 수갑을 부수겠다고요?"
"큭, 근본적으로 다 니놈 잘못이잖아!!"
귀신 목이라도 딴 양 고약한 미소를 만면에 띠우는 오키타에게 히지카타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덤으로 서탁을 주먹으로 쾅 내려치자 수북하게 쌓인 재떨이에서 꽁초와 재가 후드득 떨어진다.
분명 이 수갑은 진선조의 비품이긴 하지만, 열쇠가 없어서야 어차피 아무 데도 써먹지 못하니 고이 둬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포함해 히지카타가 설교를 늘어놓자, 따분한 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오키타가 앞으로 몇 시간만 더 참아요, 라고 말대답을 했다.
"엉? 왜 몇 시간이야?"
"새 스페어키가 오늘 저녁에 배달올 예정이라구요."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제법 진지한 얼굴로 지껄이는 오키타를 앞에 두고 히지카타는 한숨을 금할 수 없었다. 암만 그럴싸한 얼굴을 지어봤자 정말로 비품을 아껴서 이러는 게 아닌 줄 보나마나 뻔했기 때문이다.
행동을 제한받는 건 저도 싫을 텐데, 히지카타를 조금이라도 더 볶는 쪽을 선택하는 그 기개는 아예 상찬마저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3)
수갑을 나란히 차고 순찰만은 죽어도 싫다는 히지카타의 주장에 따라 ─ 오키타도 동감이었다 ─ 열쇠가 올 때까지 히지카타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 손을 못 써도 오른손만 비어 있으면 서류 작업쯤은 할 수 있다며 히지카타는 계속 서탁과 마주앉아 눈씨름 중이다. 그리고 히지카타에게서 30센티미터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등에 기대고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낮잠이나 잘까 하고 히지카타 왈 꼴같잖은 무늬라는 아이마스크를 꺼내봤지만, 또 이럴 때는 졸음이라고는 오지 않는지라 별 수 없이 포기하고 주머니에 도로 쑤셔넣었다.
오후의 둔영은 대부분이 자리를 비우고 있어 몹시 조용했고, 펜이 종이를 사각사각 갉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때때로 장지문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그에 섞여든다. 찌를 듯이 차디찬 겨울의 공기에 회색 연기가 은은하게 떠돌며 천장에 닿았다.
그 와중에 등만이 따스한 게 기분 나빴다. 마치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만 같아서.
장난질이 그다지 성과를 보지 못한 데 내심 혀를 칫 차면서, 오키타는 쉴새없이 이어지는 등 뒤의 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을 보낼 만한 물건을 찾아보려 상의 안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보니, 맨 밑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찔렀다. 가느다랗고 뾰족한 금속재질.
히지카타 주살용 5촌정이다.
딱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이 사내와 만났을 때 뒤집어진 복장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절찬 지속 중이었다.
단순히 싫다는 한 마디로 뭉뚱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증오와 그 밖의 여러 가지가 뒤섞일대로 뒤섞여 엉망진창이 된 감정이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던, 만나지 않았으면 영원히 알 일이 없었을 이 감정이 오키타는 때때로 불쾌했다. 휘둘리고 있다고, 느껴지니까.
그게 견딜 수 없도록 싫어서, 차라리 이 사내가 죽어버리면 편하리라고, 오키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숨통을 끊어주려고 획책한다.
마주 닿은 등을 떼어내 히지카타에게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었다. 히지카타는 아는지 모르는지 손만을 바지런히 놀리고 있다. 쇠사슬이 쓸리는 금속음만이 찰강찰강 울렸다. 오키타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재미도 없는 다다미를 응시했다.
히지카타 토시로라는 사내는 자각 한 톨 없이 주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한 번이라도 길이 교차하면, 이후의 길은 이 사내로 인해 좋든 싫든 간에 일그러지고 만다. 곤도와 같이 주변 사람들을 독려해 이끌어가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틀어지게 하는 인력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오키타의 세계도 그러했다.
오키타 자신과 누이와 곤도와 그 밖의 몇 명으로 파문 하나 없는 원형을 이루었던 관계는, 이 남자가 뒤늦게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여지없이 뒤틀렸다.
그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는데, 히지카타는 더더욱 오키타의 신경을 할퀴었다.
──내가 알 바 아냐.
제가 끼치는 영향을 알지도 못한 채, 이 남자는 뻔뻔하게 지껄인다.
마음에 들지 않아. 그것뿐이다. 결론은 언제고 여기로 귀결한다.
그렇게 부풀어오른 격한 감정은 ─ 아마도 살의이리라 ─ 제어를 벗어나 폭주했다.
수갑이 채워진 손을 있는 힘껏 휘저었다. 사슬에 끌려 팔이 위치를 벗어나자 놀란 히지카타가 뒤를 돌아본다. 히지카타를 잡아당겨 바닥에 냅다 쓰러뜨렸다. 수갑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에 의표를 찔린 것도 도와, 남자는 너무나 쉽게 나뒹굴었다. 위를 보고 자빠진 히지카타에게 신속하게 올라탄 오키타는, 자유로운 왼손을 한껏 휘둘러 올렸다. 손에 쥔 물건이 형광등 빛에 섬뜩하게 빛났다. 히지카타의 눈이 크게 뜨인다. 동공이 열려 칠흑빛을 띤 사내의 눈동자를 오키타는 내려다보았다.
움켜쥔 5촌정의 뾰족한 끝을 내리쳤다.
안구 바로 앞에 흉기가 쇄도해도 히지카타는 눈을 감지 않았다. 경악에 찬 표정을 띤 것도 잠시뿐, 금세 가라앉고 말았다. 저를 타고 앉은 남자가 이 순간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조차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런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쑤셔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진심으로, 당신만 없어지면 만사형통이지 싶을 때가 있어요."
"……새삼스럽게 뭘."
"지금 막 재확인했거든요."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 나쁘지도 않다는 그놈의 낯짝을 보노라니 뱃속이 뒤집힐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인력으로 주위를 마구 휘저어놓고, 정작 자신은 차가운 눈으로 모든 걸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내는.
히지카타의 입술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다다미를 그을리는 담배가 시야 한 끄트머리에 머물렀음에도 오키타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대로 시선을 아래에 깔린 남자에게 돌린다.
농락당하는 쪽이 멍청하다고 확신하는 듯한 그 맨질맨질한 얼굴이 죽도록 싫었다. 이쪽이 겪는 것의 반분만이라도 니놈 역시 겪어보라는 원망의 말이 쉼없이 쏟아져나온다. 나는 이토록이나 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흔들리고 있는데, 이 사내에게 나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분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진심으로 이쪽을 보게 할 수 없음에 오키타는 절망한다.
부르쥔 정을 안구에서 목젖으로 옮겨가며 오키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슴속에서 시커멓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으로, 내뱉는 목소리마저 거칠게 갈라졌다.
"당신도,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휘둘려 버리라지."
으르렁대듯 토해내는 오키타의 말에, 직전까지 험상궂던 히지카타의 표정이 단숨에 무너지고 어이없는 빛을 띠웠다. 덤으로 보란 듯이 한숨까지 거창하게 내쉰다. 바보 취급을 당한 기분에 발끈한 오키타는 양눈에 살의를 담고 정 끄트머리로 목덜미의 피부를 눌렀다.
호흡으로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따끔하게 찔러오는 정을 손으로 내치고, 히지카타는 어이를 상실했다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야 임마……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굴려대는 주제에 아직도 모자란 거냐."
엣. 오키타는 눈을 깜박였다. 그 반응에 히지카타는 또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오키타는 단박에 전의를 상실하고 당혹했다. 히지카타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그 자리를 땜빵하려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도 아님을 알았으므로.
"히지카타 씨, 휘둘리고 있어요? 나한테?"
"그렇다 이놈아. 평소 니 소행을 돌이켜봐라."
오키타가 반문하자, 히지카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내버려두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닐지 모르니 항상 눈을 붙박고 있어야 한다. 사실은, 단지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라고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벌레 씹은 표정이 된 히지카타를 똑바로 굽어보며, 오키타의 입술 끝이 천천히 위로 치켜올라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울 만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다.
"그럼 히지카타 씨는, 계속 나만 지켜보면 돼요."
"하아?"
"딴 쪽에 눈을 돌릴 여가도 없을 만큼 갖고 놀아줄게요."
상반신을 수그리고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치면서 속삭인다. 마치 협박하는 양 정을 다시금 부드러운 피부에 눌러대고, 오키타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것이 연모라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을 치졸한 독점욕임을 깨닫는 일 없이, 오키타는 수갑으로 이어진 히지카타의 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나 좀 살려주라……."
도망치듯이 눈을 감은 히지카타는, 길게 길게 탄식하고 얽힌 손가락을 마주 잡아주었다.
부장이 어쩐지 멀쩡해 보이는 건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의 필터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