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뒤늦은 탄신일 축하 시리즈 - 3월 3일편 by 류겐

Banishing from Heaven | 2009/04/10 18:20

생신 축하합니다 세느님!!
사흘 늦은 대신 건담님의 마음을 흡족히 하고자 최선을 다하겠으니 너그러이 봐주시길 넙죽넙죽. 최근의 다크호스 류겐(流元, 사이트명 doll) 씨의 생일빵 SS 3월 3일편으로 시작합니다.
디란디즈는 형놈이고 동생놈이고 다 건담님 것이라능. 이건 대우주의 진리라능.


생일의 의미를 안 것은, 알렐루야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였다.
──물론 개념은 진작부터 이해하고 있었으나, 그날에 뭐가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축하해」
그런 말을 듣고, 모두에게 둘러싸여, 쑥스럽게 웃어도 되는 날인 줄, 처음으로 알았다.
설령 암울한 전시 중이라도 해도, 누구나가 미소를 짓는 날임을.

함내가 묘하게 들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츠나는 마음을 쓰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에는 은근히 안절부절 못하며 옆을 지나치는 펠트를 불러세워 묻고야 말았다.
대답은, 극히 간단했다.
「내일은, 록온의 생일……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기쁜지, 펠트는 얼굴을 붉혔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둥실둥실 떠오른 소녀를 똑바로 보기가 영 어색해, 그 이상은 별다른 말도 없이 소녀의 뒷모습을 전송했다.
「……록온, 의」
무기질의 복도 한가운데 선 채, 세츠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생일. 펠트를 봐서는, 필경 알렐루야와 마찬가지로 여성진의 주도 하에 파티라도 열릴 터였다. 티에리아는 냉정하게 일축하고 방에 틀어박히고, 역시 기타 방면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세츠나는 그러나, 십에 팔구 주위의 끈덕진 꼬드김을 배겨내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다시피 참가하게 되리라──.
(……생일)
자발적으로 참여할 마음은 없지만, 하찮다고도 여기지 않았다.
미소를 보는 것은, 싫지 않다.
「세츠나?」
낯익은 목소리가 불현듯 날아와, 몸을 돌렸다. 시선은 먼저 목 언저리에 머물렀다, 이윽고 조금 위를 향해 선명한 녹색 눈과 마주쳤다. 갈색 고수머리를 부드럽게 찰랑이면서, 남자는──록온은 웃었다.
「이런 데서 뭐해?」
「……별로」
웅얼거리다시피 대꾸하고, 록온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내일은 이 청년의 생일이고, 파티라고 할 만큼 거창하지도 않은, 조촐한 연회가 열린다.
참석할 의향이 있기는 있었다. 다들 흑백을 분간할 이성이 있는 만큼 정도를 넘어 폭주하지는 않을 터였고, 사람이라면 즐거운 시간을 가져서 나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세츠나에게는, 참석해서──그 다음이 아리송하기만 했다.
<축하하는 날>이라곤 하지만, 무엇을 <축하>하는지, 무엇이 <축하받을>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렐루야의 생일 때는, 록온이 세츠나를 챙긴답시고 설쳐대는 통에, 차분히 곱씹어 볼 여유는 애초에 없었고.
「──록온」
「응?」
응시를 당하는 게 기분 좋을 리도 없건만, 청년은 딱히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반문했다. 날서지 않은 온화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세츠나는 양눈을 가늘게 좁혔다.
「……생일이란, 뭐지?」
목소리가 반향하고, 잦아들었다. 세츠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록온은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가, 이윽고 미간을 모았다. 아마 자신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으리라고, 세츠나는 두연히 생각했다.
「……아, 어려운 질문」
심각한 얼굴로 록온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동안 그러고 있더니, 마침내는 웅크리고 앉아 밑에서 세츠나를 빤히 들여다본다.
「그야, 옛날에는 평균 수명도 짧았고, 병이다 기근이다 뭐다 해서 사람 죽기가 부지기수였으니, 한 해 더 무사히 살아남은 걸 감사하는 의미가 컸겠지만」
세츠나가 기대한 대답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얌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록온이 살며시 웃어보였다. 불안정한 자세로도 용케 턱을 괴고, 부드럽게 휘어올라간 입술이 노래하듯이 말을 이어나간다.
「지금은──좀 상투적이지만──태어나줘서 고맙단 거지」
거기서 말을 끊고, 본디부터 온화했던 얼굴로 한층 더 상냥하게 웃었다. 무척이나, 행복하게.
「그리고, 만나줘서 고맙다고도」
「……만나줘서」
국어책을 암송하듯 기계적으로 반복하자, 상대는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싯구를 읊조리는 마냥, 자그맣게 속삭인다.
「지금 이 순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 네가 태어나서, 나를 만나주었기 때문이야」
말에는 표현만큼 절실한 감정이 깃들어 있지는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록온의 목소리.
하지만,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미소와 곧기 그지 없는 눈동자에, 세츠나는 덩달아 묘한 감촉을 맛보았다.
록온에게서, 따스한 공기가 흘러오는 것 같았다. 온 몸을 감싸안는 거창한 무언가는 아닐지언정, 안심하고 내맡길 수 있는 안온한 온기가.
「……이게, 생일」
무의식 중에 중얼거렸다. 납득한 가슴이 가벼워진다.
축하를 받는 이들은, 이 공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설명이 쬐끔 부족했나?」
쓰게 웃는 록온을 다시금 마주했다. 익숙한 모습. 남 챙기기를 좋아하고, 보호자연하며 세츠나의 앞에 서는가 하면, 전장에서는 반드시 등을 지켜준다. 보기보다 희노애락의 기복이 크고, 다소 종잡을 수 없기도 해서, 언젠가는 붙잡아 보고 싶기도 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만나줘서 고마워』
세츠나의 마음속에서, 온기가 조용히 고동쳤다.
「──록온」
「응?」

「생일 축하한다」

어안이벙벙해진 얼굴로, 잠시간 눈을 깜박거리고, 이윽고 녹아내릴 듯이 미소한다.
「하루 이르지만 말야」
하얀 뺨이 슬몃 물들었다. 남자는 바로 팔을 뻗어 가볍게 세츠나를 끌어안았다. 록온의 코끝이 세츠나의 가슴팍에 파묻혔다. 세츠나에게는 가르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가 온 얼굴로 한껏 웃고 있으리란 것은, 보지 않아도 알았다.
「고마워, 세츠나」


「생일 축하한다」
그 말에, 라일이 경멸 흡사한 태도를 보일 줄은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별 무사태평한 조직도 다 보겠다, 내지는 이 자식 나사가 풀렸나, 대강 그쯤이리라.
실제로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생일? 널널하기도 하셔라」
「착각하지 마라」
세츠나도 단박에 응수했다.
「네 피를 축하하고 있을 뿐이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라일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씁쓸한 표정으로 시선을 팩 외면하고, 입술 끝만을 비틀어 올린다.
「……흥, 형이구먼」
「신경에 거슬리나」
「누가」
「라일」
탄식을 내뱉자, 라일이 사납게 세츠나를 노려보았다. 그래봤자 세츠나의 눈에는 실쭉해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당연스럽게도 대응 역시 똑같은 수준이 되었다.
「축하를 받고 싶은 건지, 받고 싶지 않은 건지, 어느 쪽인가」
침묵만이 돌아왔다. 양쪽 모두 미동조차 하지 않는 채로 시간만이 속절없이 흘렀다.
(……어쩔 수 없는 녀석)
날 상대할 때도 그리 여겼었나? 록온.
세츠나는 한달음에 라일에게 접근해, 이쪽을 돌아보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다」
녹색 눈동자가, 서서히 크게 벌어졌다.
「네가 오늘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널 만날 수 있었다. 닐 디란디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너를 만난 걸 기쁘게 생각해」
자신은 지금, 제대로 웃고 있을까. 그게 마음에 걸렸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기를 바란다」
「───!!」
라일의 안면이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나 싶더니, 다음 순간 남자는 온 힘을 다해 세츠나를 떠다밀고 전력으로 후퇴했다.
난데없이 무력행사를 당한 세츠나가 어이가 없어 항의도 못하고 있자, 목까지 새빨개진 라일이 울화통을 터뜨렸다.
「바보냐! 생일 축하가 아니라 프로포즈잖아, 순!」
「하아?」
「그런 말은 형한테나 해, 형한테나!」
무슨 이유로 거기서 닐을 들먹이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했지만.
세츠나는 눈을 수 차례 깜박이고, 덤덤하게 대꾸했다.
「닐 디란디는 내 안에 살아 있다. 프로포즈를 할 필요는 없어」
「……이젠 염장질까지!!」
더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라 당장이라도 길길이 날뛸 듯한 라일이 세츠나에게는 의아스럽기만 했으나, 일단은 그냥 흘려 넘기기로 했다. 정 불만이라면 그쪽에서 말하겠지.
대신, 다시 한 번, 라일에게, 그 피에게──닐에게, 선사했다.

「생일──축하한다」

라일은 웃어주지는 않았지만, 쑥스럼 비슷한 무언가를 언뜻 보였으므로, 세츠나는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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