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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번역] 현시창에는 호노보노가 제일 - 무제 by 다카미야 (2)


[번역] 현시창에는 호노보노가 제일 - 무제 by 다카미야

Banishing from Heaven | 2008/11/19 09:33

어제는 지벨 님과 '누가누가 더 무덤 파나' 경쟁에 미친듯이 열을 올리다 결국은 둘 다 머리와 빵구난 위장을 싸안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님... 우리는 서로의 치부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이젠 결혼할 수밖에 없어요....! (엉?)
무엇보다 어제의 가장 치욕적인 수치 플레이는 교보문고 라이트노벨 코너에 남은 더블오 노벨라이즈 3편 Falling Angel 두 권을 사이좋게 하나씩 집어 나란히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덕이라서 죄송합니다 욕망에 충실해서 죄송합니다 세상 모든 이에게 죄송합니다....!! OTL

발동 걸리신 지벨 님이 신나게 <두근두근☆그이와의 첫경험>(...) 시리즈를 연성하고 계시는 것에 덩달아 자극을 받아 - 내가 원래 그렇죠 뭐 - 어제 수다를 실컷 떨다 머릿속을 강타한 영감을 좀 더 곱씹어서 발효를 시킬 때까지는 세츠나와 록횽의 호노보노한 일상을 연타로 올려보고자 작심했다. 안 그래도 거의 제 6감에 의지한 헛소리인데 앞뒤 전개까지 어설프면 민망해서 어찌 감당하라고? ;
그런 의미에서 아래는 사랑해 마지 않는 다카미야(高宮, 사이트명 idiom) 씨의 이번에도 제목이 없는 단편. 문제 될 성 싶으면 박박박박 문질러 지워버립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질은.... 설마 믿는단 말입니까!? <- 야

아라비아의 스트라토스 3편은...에 또, 나름 열심히 쓰고 있으니까 기다려 주시면 기쁘겠....;;;


소년은 웃지 않는다.
소년은 그곳에 있다.
붉은색을 띤 갈색의 커다란 눈동자가 깜박였다. 앳된 얼굴이었다. 앳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록온의 눈높이에서의 표현이었고, 아이가 열 여섯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표현이 적합할지 몰랐다. 최소한 발육부진인 것은 확실했다. 16세 소년의 표준 체격에 비하면 키도 작고 체중도 가볍다. 보기보다 체력도 근력도 한참 충실한 줄은 알고 있지만, 여전히 가냘프다 단언해 버려도 지장은 전혀 없을 체구였다.
아이는 다소 어설픈 동작으로 눈앞의 작은 상자에 손을 뻗었다.
상자를 집어들어 흔들어본다. 표정은 무섭도록 심각했다. 아이는 상자의 내용물을 모른다. 모르기는 하되, 아이에게 해를 입힐 종류의 물건이 아님은 정황만 보아도 바로 판단이 가능할 터였고, 아이는 그만한 상황판단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아이는 상자를 위험요소로 여기고 있지는 않았다.
위해를 가하지 않을 줄 빤히 알 텐데도, 지켜보는 이쪽이 쓰게 웃어버릴 만큼 진지한 얼굴로 얇은 종이에 감싸인 작은 상자를 집어들어 흔들고 있다.
흔들어봤자 소리는 나지 않는다. 록온은 내용물을 알고 있었다.
「뭐야?」
몇 번이고 상자를 흔들어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소년은 고개를 갸웃하며 록온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눈동자가 두어 번 깜박거렸다. 속눈썹이 길었다. 자세히 뜯어보면, 이 아이는 무척이나 귀여운 생김새이다.
여직 아이다운 곡선을 간직한 손이, 상자를 조심조심 탁자에 내려놓았다. 마치 그 이상 붙들고 있으면 상자와 내용물에 무언가 나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듯이.
「열어 봐」
가볍게 재촉하자, 소년은 갸우뚱한 고개 그대로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얼핏 불만이 꽉 낀 얼굴로도 보였지만, 아이는 정말로 불만스러워서 그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아이는, 단지 불안한 것이다. 아주 조금.
「그래도 되나」
소년의 목소리에는 억양이 거의 없었다. 의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항상 그랬다. 처음 대면했을 무렵에는 감정 자체가 희박하지는 않은지 의심도 했었지만, 실상은 별반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되고 자시고, 내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냐 너」
「들었다. 넌 주겠다고 했어. 내게, 이걸 주겠다고」
소년은 조그만 상자를 가리켰다. 가리킬 뿐 손을 내밀려 하지 않는 것에 록온은 쓴웃음을 짓고, 상자를 집어 다시 한 번 소년에게 내밀었다.
「열어 보래도」
아이는 록온의 말을 더는 거스르지 않고, 받아든 상자에 묶인 리본을 손끝으로 당겼다. 검은 리본의 끄트머리에는 동그라미 속에 떨군 물방울처럼 모서리가 둥그런 육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면 그 문양만 보고도 내용물을 짐작했으리라.
새틴 리본은 소리도 없이 풀려 떨어졌고, 소년은 당황한 듯 황급히 허공에서 리본을 나꿔챘다.
풀어낸 리본을 탁자의 가장자리에 걸치고, 소년은 이번에는 상자를 감싼 종이에 손을 가져갔다. 손놀림은 여전히 뭔지 모르게 미덥지 못했다. 이번에는 조금 서둘러서 벗겨낸 포장지를 리본 위에 떨구고, 아이는 주의깊게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펜?」
작은 상자 속에 얌전히 웅크린 물건은, 까맣고 매끄러운 윤곽을 그리는, 한 자루의.
「만년필이야. 이게 의외로 편리하다구」
검은색과 은색. 소재는 수지와 백금. 웬만한 사람은 이름이나마 들어봤을 유명한 상표. 400여 년 전부터 제조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유지하는 데만도 잔손이 많이 가는 복고풍의 필기구다.
「내게, 주는 건가」
붉은 빛을 짙게 띤 시선을 받은 만년필의 검은 외피가 화사하게 빛났다.
「줄게. 있어서 손해 볼 일은 없잖겠어」
록온이 웃어보이자, 소년은 입을 다물고 조심스런 몸짓으로 문제의 필기구를 집어올렸다.
텅 빈 상자를, 상자에서 벗겨낸 포장지 위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만년필」
소년은 손에 쥔 필기구를 굽어보며 낮게 뇌까렸다.
소년은 웃지 않았다. 않았지만,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충만한, 천진하면서도 엄숙한 눈동자로, 제 손에 쥐어진 만년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로지 문자를 그려내기 위해 존재하는 투박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필기구를.
록온은 웃고, 손을 뻗어 소년의 머리를 다독였다.
소년은 반짝이는 눈을 딱 한순간만 록온에게 향했을 뿐, 금세 만년필에게 재차 시선을 떨구었다.
소년은 웃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곳에 있다.
그곳에 서서, 만년필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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