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러게, 진짜 세츠나면 어떡하냐고....!! 세츠라일 망상하다 죽어버리란 얘긴가 그런 건가 쿠로링!! 우워어어어억! <-
더블오의 다섯 번째 CM과 킬러래빗 님의 사막전기의 더블 크리를 맞고 감동으로 몸을 떨다가 그간 일 핑계로 줄창 미뤄왔던 치유계 번역을 기를 쓰고 완료했다. 세상은 시궁창이지만 동인녀는 지지 않는다. 오늘의 타겟은 개그에는 촘 일가견이 있으신, 제목부터 조낸 쪽팔리는 Lockon-Japan의 마스터 렌치(レンチ) 님의 로드 그레이엄의 생신(9월 10일) 축하 단편. 하지만 승리는 세츠나의 것(.....).
늘 그렇지만 번역 질 따지시면 울 겁니다 췟췟췟.
...and less.
한 줄 감상 : ☆★승리의 세이에이사마★☆
나는 이제 우리 꼬꼬마를 감히 꼬꼬마라 할 수가 없어요....!! (감루)
로드의 생신인데 왜 세츠나가 득을 보는지는 따지지 말자. 예언자는 넷까지 허락하셨고 녹색 눈의 미인은 천하의 보배인지라(....)
어쨌든 치유는 되었음. 역시 우울할 때는 개그가 최고라능. 그렇다능.
하워드 메이슨과 대릴 댓지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때는 9월 모일, 경애해 마지 않는 대장님의 생일을 목전에 앞둔, 기지에서의 은밀한 대화였다.
「대장님은 무어라 대답하시던가?」
「욕심이 없으신 분이야. 축하를 빙자하면서까지 얻고 싶은 것은 무엇 하나 없다고 한 마디로 일축하셨네.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손에 넣겠다고도 하셨어」
「과연 플래그 파이터의 정점에 서신 분……!」
양주먹을 부르쥔 대릴은 감동의 도가니에 휩싸여 오열하였다. 하워드 역시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 된 이상, 비록 주제넘은 행위라도 대장님의 조력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으음」
「9월 10일은 대장님이 태어나신 날. 우리는 우리대로 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자」
「으음!」
이리하여 겁나게 진지한 두 사람은 역시 겁나게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어떤 작전을 결행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9월 10일은 저격기념일! 당신도 그이를 저격해보지 않겠는가!!』
「사소한 일에서도 그 한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자세는 실로 완벽주의의 귀감이라 하겠네만, 극론이 도를 넘으면 배제해야 마땅한 이단으로 전락함을 기억토록 하게나」
머리에 왕따시만한 혹을 매달고 힘없이 고개를 떨군 대릴과 하워드에게 번갈아 눈길을 주며, 책상에 팔꿈치를 얹고 깍지낀 손으로 모양 좋은 턱을 받친 그레이엄은 상냥하게 말을 이었다.
「문제의 캐치프레이즈로는 살육행위를 조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저격수를 유도할 만한 프레이즈로, 저격 이외의 단어를 생각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워드는 한심함과 분함이 뒤섞인 어조로 뇌까렸고, 대릴의 책망하는 시선을 깨닫고야 아차 싶어 황급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과 뱉어낸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라, 당연하게도 그레이엄은 눈치를 챘다.
「저격수를 유도한다고?」
「……아, 에 또, 그것이 저……군에서 조금, 독특한 이벤트를……개최하고자」
수상쩍어 하는 빛이 역력한 그레이엄에게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 한다고 내심 쩔쩔매면서, 대릴은 경찰에게 추궁당하는 유괴범과도 흡사한 꼬락서니로 허겁지겁 설명을 시도했다.
「저격한 쪽이, 저격당한 상대가 마련한 상품을 획득하는 게임입니다만……」
「상품이라면……목숨 말인가?」
「아, 아닙니다! 특수한 레이저를 발사하는 모형 총을 사용하므로, 부상을 입을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경례를 쩔거덕 붙이면서 더 이상의 언급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뚝 잘라먹은 대릴의 태도가 못내 이상한지 한동안 눈을 깜박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레이엄은, 대책없이 폭주하는 행위를 엄벌하고자 서로를 오지게 후려갈긴 결과물인 부하들의 거대한 혹을 바라보고는, 마침내는 어깨에서 힘을 뺐다.
「그 이벤트에 나도 참가해 달라, 이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알았네. 모처럼 자네들이 내놓은 기획이 아닌가. 기꺼이 응하지. 허나, 나는 대체 무얼 상품으로 마련하면……」
「플래그입니다!」
「응?」
「대장님께서 탑승하시는 플래그가 상품입니다!」
「……」
어지간한 그레이엄도 말을 잃고 굳은 사이, 직립부동으로 경례를 붙인 부하 둘은 45도 각도의 허공에 눈길을 붙박고 진지하게,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단언했다.
「저희들은 대장님께서 저격당하시리라고는 꿈에도 여기지 않습니다! 간판 상품으로, 대장님을 저격한 장본인에게는 플래그를 증정한다는 취지를 이미 공표하였습니다!」
「……」
세상은 그것을 도발이라 부른다.
단숨에 굶주린 육식동물의 눈을 형형히 빛내는 그레이엄의 기백에 질려 내심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두 사람은 우선은 1단계의 성공을 순수히 기뻐하며 흉중에서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함정이네요」
일동이 집합한 브리핑 룸. 매우, 너무나, 지극히, 응당, 보나마나라는 뉘앙스를 담아,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한 손을 들어올린 록온이 발언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일이라구요. 선량한 일반시민이 플래그를 어따 써먹습니까. 목줄을 쥐고 산책할 수가 있나, 집안에 둘 수가 있나, 그렇다고 대형 쓰레기로 분류해서 내놓을 수나 있나……!」
「분명, 플래그를 눈독 들이고 그레이엄 에이커를 노릴 별종은 세상에서 우리 셀레스티얼 비잉뿐이겠죠. 전술예보관의 관점에서 볼 때, 그를 노리는 인물을 포획하기 위한 작전으로 여겨집니다」
「일개 피해자의 관점에서도 그렇게 보입니다」
「……록온」
스메라기는 늘어뜨린 머리칼을 살포시 떨면서, 요염한 미모에 그늘진 미소를 띠우고 록온에게 다가와 양팔을 뻗어 목에 부드럽게 감겨들었다.
「가르쳐 줘요. 당신의 고국에서는, 작별의 인사를 어떻게 하죠……?」
「뭐뭐뭐뭐뭡니까 그 의미심장하다 못해 불길한 질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뜬금없이 굿바이부터 당할 뻔한 록온이 빼액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스메라기는 애절한 미소를 띄운 채 일동에게 눈길을 향했다.
「그럼, 다수결로 결정합니다」
「전술예보는!?」
급기야는 직업을 돌돌 말아 휘떡 내팽개친 스메라기한테 기겁하여 비명을 한 옥타브 올린 록온에게 티에리아가 냉혹한 일별을 던졌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사회의 규범에 따르기를 거부하다니 자기가 뭐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라 티에리아……근데 우리 테러리스트 맞잖아?」
「다수결에 붙인 결과, 록온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스메라기 씨이이이이……!」
이놈 저놈에게 악 쓰는 사이 이야기는 지멋대로 일사천리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손을 번쩍 들어 찬성을 표한 자세 그대로 알렐루야가 실실 웃었다.
「그레이엄 에이커를 사살하는 거죠? 록온은 스나이퍼잖아요. 성공 못하면 왕따당해도 할 말 없겠네요?」
「야 임마,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실탄을 쓸 리가 있어!」
뭐가 그리 좋아 헤죽거리는 알렐루야를 째려보다, 그를 빠안히 올려다보는 다른 시선을 깨달았다.
「록온이 거부한다면 내가 가겠어」
「세츠나……」
「내가 저격하겠다」
「……」
내가 기억하기로 네 명중률은 바닥이었다만. 일일이 딴지를 걸 기력도 잃은 록온은 항복의 의미로 양손을 치켜들었고, 여태 지속 중이던 다수결에 찬성 두 표를 추가하는 꼴이 되었다.
그리하여 정신이 들고 보니 록온은 혼자 저격대회의 접수처 앞에 머쓱하게 서 있었다.
「콕온 스트로토스 씨입니까」
접수를 담당하는 인텔리 풍의 안경남이 신청서를 받아들고 읽어내려갔다. 옆에 버티고 선 등빨 좋은 드레드헤어의 사내가 유독 노골적으로 흘금흘금대는 폼이 내심 무진장 무서웠다.
「두어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먼저, 저격 경험은 있으십니까?」
「에엣!? 저, 전혀, 총을 잡아본 적도 없어요!」
「그럼, 건담에 탑승한 경험은」
「……어, 없는데요……」
뭐여 이 질문. 얼결에 YES라 대답했다간 드레드헤어에게 콱 물어뜯기는 걸까. 전전긍긍하고 있자니 그제야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얼굴을 보인 인텔리가 안경을 번쩍 빛냈다.
「마지막입니다. 당신은 그레이엄 에이커를 좋아하십니까?」
「하아?! 내가 미쳤다고 그딴 변태를! 총 쏘면 다 피해, 입만 열면 헛소리야, 목청은 더럽게 커, 진득진득 들러붙기까지, 아주 징글징글해 죽겠다! 당신들도 부하라면 손 놓고 구경만 말고 어찌 좀 해봐!」
「……」
눈을 더럭 뜬 인텔리와 드레드헤어가 각자를 마주보며 음침하게 씨이이이익 웃었다. 다시금 신청서에 시선을 못박은 인텔리가, 선을 두 줄 그어 <제공 상품>란에 기입한 <감자 한 상자>를 지웠다.
「귀하께서 제공하시는 상품은, 귀하 본인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뭐시라!?」
「결정 사항입니다」
드레드헤어가 반발하는 즉각 물어뜯을 기세와 안광으로 확인사살을 가했다.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다음 신청자에게 등을 떠밀리고 역시 등빨 좋은 안내역에게 뒤에서 양팔을 붙들린 록온은, 저격장을 향해 짐짝처럼 질질 끌려갔다.
저격총의 특수 레이저가 머리, 목, 왼쪽 가슴에 붙은 스티커 중 하나를 맞추면, 전광게시판에 승자와 패자의 이름이 표시된다. 탄환은 3발. 한 번 히트한 시점에서 게임은 종료.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티에리아 아데가 정정당당하게도 전장 한복판에 떠억 버티고 서자, 어디선가 광속으로 튀어나온 알렐루야 합티즘이 번개같이 티에리아를 나꿔채 옆구리에 끼고 풀숲을 향해 내달려 힘차게 다이빙했다.
「제정신이야 티에리아, 그래서야 쏴달라고 부탁하기나 마찬가지잖아!」
「여기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나는 티에리안 안데 명의로 등록했단 말이다! 은닉의무를 망각한 거냐, 알렐루야 합티즘!」
「와─와─와─────!! 티에리아야말로 풀네임을 막 부르면 어떡해, 나도 알렐루야 합티즘 명의로 등록했는걸!」
「토씨 하나 안 틀리지 않나, 이 알렐루야 합티즘 같은 어리석은 놈……!」
모르는 사이에 신종 욕설이 된 알렐루야가 발끈하고, 티에리아가 더더욱 버럭하여, 풀숲에 숨어 투닥거리는 와중에 레이저 광선이 불과 몇 cm 옆을 스쳤다. 뒤늦게 현재의 위치를 자각하고 허둥지둥 총을 고쳐쥐었다.
「세츠나 F. 세이에이는 건=담 명의로 등록한 건가……」
적의 동태를 엿보는 한편 티에리아가 낮게 중얼거리자, 총신을 낮춘 알렐루야가 덩달아 한숨을 쉬었다.
「록온은 무려 콕온이야 콕온. 게다가 상품은 자기 자신. 자만심이 하늘을 찔러도 유분수지」
「명색이 스나이퍼인 그 남자가 저격당해서야 마이스터의 자격을 논할 수조차 없어. 이 기회에 실력을 가늠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것도 그렇네. 뭐 우리도 기왕 참전한 이상은 성과를 올리도록 노력하자고!」
말을 다 삼키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방아쇠를 당긴 알렐루야의 레이저는 타겟을 간발의 차로 빗겨나갔다. 혀를 차는 알렐루야를 티에리아가 경악의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네놈, 그레이엄 에이커는 어쩌고!?」
「내 타겟은 63번! 상품이 미니 콜리시랜다! 내가 걍 두고 볼 줄 알았냐, 찌질이 샛갸!!」
「……」
흥분이 극에 달해 가르마까지 비뚤어진 알렐루야를 한동안 아연히 바라보던 티에리아는, 마침내는 짜증스럽게 시선을 외면하고, 관여하기를 깨끗이 포기한 후 포복으로 전진하여 자리를 벗어났다.
스나이퍼의 기본은 졸랑졸랑 돌아다니지 않는 것. 이래뵈도 프로인 록온은 신중하게 장소를 선택해 2층의 사각에 잠복하였다. 이곳에서라면 뻥 뚫린 1층의 널찍한 엔트랜스 홀이 한 눈에 보인다. 침착성이 부족하고 척 봐도 숨바꼭질은 질색일 게 빤한 그레이엄이 모습을 보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플래그 받아봤자 쓸데도 없구먼)
말 그대로 무용장물일 뿐이다. 그에게는 애기(愛機) 뒤나메스가 있지 않은가.
「!」
바로 그때, 고대하고 고대했던 그레이엄 에이커의 화사한 금발이 홀에 출현했다. 그 즉시 저격의 집중호우가 퍼부어졌지만, 발군의 감각을 지녔는지, 운이 끝발나게 좋은지, 아니면 단지 레이저도 그레이엄만은 싫을 뿐인지, 맞기는커녕 스치지조차 않은 채 장본인은 당당한 폼새로 홀을 누비고 있었다.
(대체 뭐야 저놈……)
괴물을 보는 기분으로 안면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록온은 스코프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였다. 놈을 저격한다. 플래그는 거저 줘도 싫었지만, 실패하면 톨레미에서 왕따가 될 판이었다.
(친구 모집 중)
마음속으로 처량맞게 중얼거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을 때, 타겟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아한 몸짓으로 이쪽을 돌아보고, 얼굴을 들어, 록온을 향해 사내다운 영맹한 미소를 지어보이지 않는가.
「!?」
얼결에 저격총을 떨구고 말았다. 그레이엄이 눈치를 챘다. 어째서.
의문과 공포가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헝크는 사이, 그레이엄은 시선을 살짝 틀어 다른 방향을 향해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좀 있다가, 또다시 각도를 틀어 미소를 날리고, 뒤이어 또다시 각도를 틀어 미소를…….
「……」
무슨 지랄이냐 저 색히. 모양만은 미소 짓는 귀공자였지만 그래봤자 록온의 바닥까지 떨어진 턱은 올라오지 않았다.
소위 <무턱대고 쏴갈기면 한두 발은 맞는다> 전법일 뿐 이쪽의 기척을 감지한 결과가 아님을 알고, 록온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편 뜬금없이 미소 세례부터 받은 저격수 여러분 역시 여러 의미로 무서워진 듯 그레이엄의 주변에서 레이저의 빗발이 뚝 그쳤다. 발군의 파괴력이었다.
「바보짓에도 정도가 있지……」
잠시 흩어진 집중력을 가다듬고, 겨냥했다. 정신을 다잡고 입가를 긴장시켰을 때, 난데없는 돌풍이 정수리를 덮쳤다.
「위험합니다, 록온 스트라토스!!」
「!!」
웅크린 몸에 격돌하고 심지어 사정없이 깔아뭉갠 물체는 티에리아였다. 록온이야 충격과 통증으로 비명조차 못 지르고 우거지상으로 뻗어버리건 말건, 티에리아는 별다른 데미지도 입지 않았는지 매정하게 살았군요 한 마디만 툭 내뱉고 옆자리에 앉았다.
「고, 고마……운 건가 이거? 에 또, 하여간, 덕분에 살았다, 티에리아」
근처에서 살기 내지 적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거짓말이나 농담을 널어놓을 성격도 아닌 이상 티에리아가 위험하다 했으면 정말로 위험했던 것이리라. 순순히 감사의 인사를 하자, 티에리아는 여전히 썰렁썰렁한 눈길로 록온을 흘겨보았다.
「위험했던 사람은 접니다. 따라서, 목숨 건진 사람도 접니다」
「……」
「함정에 빠졌습니다. 정확한 위치에서 쿠션 구실을 충실히 수행한 것에는 예를 표하지요. ……이런」
그리고 티에리아는 아름다운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들통났군요」
「히에에에에에에엑!」
사방팔방에서 일제히 레이저 광선이 쏟아졌다.
안경을 인질로 잡힌 티에리아는 몰라도 제 몸을 내놓아야 할 처지의 록온은, 필사적으로 바닥을 굴러 광선을 이리저리 피했다.
「쥐며느리입니까」
대놓고 조소하는 티에리아는, 양반다리를 하고 편하게 앉은 주제에 레이저 한 방 맞지 않고 있었다. 반박을 하고 싶어도 반박할 여유가 없는 록온은, 눈물로 흐려진 시야 저편에서 회심의 웃음을 띄운 그레이엄의 얼굴을 보았다.
「!!」
그레이엄이 총을 겨누었다. 록온의 숨이 멎었다. 티에리아가 엉덩이를 긁었다.
다음 순간. 록온의 이마에 레이저 광선이 명중했다.
「……위기일발이었네」
기뻐해 주기는커녕 노골적으로 실망한 티가 역력한 스메라기가 술병을 기울이며 시큰둥하게 툴툴거렸다.
「그레이엄 에이커보다 먼저 세츠나가 록온을 명중시킬 줄이야……당신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 말에 정녕 한 치의 거짓도 없다면 우선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씀하시죠, 스메라기 씨」
「어머어머, 지금 내 성의를 의심하는 것?」
레이저 광선을 뿜을 듯한 스메라기의 열렬한 눈동자를 록온은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먼저 눈길을 외면했다. 등 뒤에서 알렐루야가 헤실헤실 웃었다.
「결국 그레이엄의 명줄을 끊어놓지 못했으니까, 록온은 왕따 결정이네요?」
「저번부터 뭐가 좋다고 실실 웃고 있어? 너야말로 미니 콜리는 어쨌냐」
「그게 말이죠……반칙패 판정을 받아버렸어요. 두들겨패고 짓밟고 갈구고 협박해서 이마를 쐈다고」
「세상 누가 봐도 그건 저격이 아냐」
탄식을 내뱉고, 이번에도 빠안히 바라보는 시선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인사도 못했다 싶어, 얼른 평소의 웃는 얼굴을 회복한 록온은 최연소 마이스터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세츠나,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 그치만 그레이엄 에이커를 노리려다 날 맞추게, 저격의 신도 깜짝 놀랄 기행일세」
「이 세계에 신은 없어」
「그래그래」
싱글거리며 세츠나의 머리칼을 토닥여준 록온은, 이 까다로운 소년이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기색을 보임을 알아채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래, 세츠나」
「내가 너를 저격했다」
「응. 그랬지. 고마워」
「네가 상품이다」
「응, 그랬지. 원래는 감자 한 상자였는데 말야」
「네가 상품이다」
「에, 어, 응, 그러, 게」
「네가 상품이다」
「……」
하로의 흉내는 아닌 것 같다. 망가진 라디오는 더더욱 아닐 터.
「……」
「네가 상품이다」
잠자코 백스텝을 밟는 것에 비례하여 세츠나가 스스스스슥 다가들었다. 딱히 빠른 속도도 아니고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래서 더욱 살떨리게 무서웠다.
현실을 직시하기도 괴로워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 직전, 겨우 볼만한 전개가 됐답시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스메라기의 아름다운 얼굴이 시야의 한켠을 스쳤다.
결국 저격을 하지도 당하지도 않은 그레이엄은, 어쩔 줄 몰라하며 손이 발이 되게 비는 부하들을 피해 애기 플래그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공주님임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청년을, 바로 코앞에서 엉뚱한 놈에게 빼앗긴 것은 부하들의 잘못은커녕 그의 역량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분한 마음은 필설로도 다할 수 없었다.
「나도 아직 수련이 부족하군, 플래그……」
제 생일에 뭐가 아쉬워서 모빌 수트 상대로 우울하게 노가리를 까야 하는가. 보통은 그리 여길 일이었으나 그레이엄은 보통이 아니었던지라 이건 이것 나름대로 즐거웠다.
옆에 사랑하는 이가 있어준다면 더욱 즐거웠겠지만.
「……」
그 광경을 상상해보려 시도했다 오히려 더 허무해진 그레이엄은 애기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플래그의 발치에 붙어 있는 무언가의 종이조각을 알아보았고, 놀람에 녹색 눈동자를 둥글게 떴다.
「메모인가?」
급하게 갈겨쓴 쪽지였다.
『쓰잘데없는 수작으로 사람을 유인하려 들지 마. 민폐라구』
「……」
보아하니 메모의 작성자는, 그레이엄이 이벤트를 계획한 줄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중차대한 오해였으나 굳이 변명할 마음은 없었다. 밑에 덧붙여진 한 줄을 읽고, 그레이엄은 기분좋게 미소지었다.
『플래그에는 당신이나 타. 나는 필요없어. 그리고……』
그레이엄, 생일 축하해
「대장님은 무어라 대답하시던가?」
「욕심이 없으신 분이야. 축하를 빙자하면서까지 얻고 싶은 것은 무엇 하나 없다고 한 마디로 일축하셨네.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손에 넣겠다고도 하셨어」
「과연 플래그 파이터의 정점에 서신 분……!」
양주먹을 부르쥔 대릴은 감동의 도가니에 휩싸여 오열하였다. 하워드 역시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 된 이상, 비록 주제넘은 행위라도 대장님의 조력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으음」
「9월 10일은 대장님이 태어나신 날. 우리는 우리대로 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자」
「으음!」
이리하여 겁나게 진지한 두 사람은 역시 겁나게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어떤 작전을 결행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9월 10일은 저격기념일! 당신도 그이를 저격해보지 않겠는가!!』
「사소한 일에서도 그 한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자세는 실로 완벽주의의 귀감이라 하겠네만, 극론이 도를 넘으면 배제해야 마땅한 이단으로 전락함을 기억토록 하게나」
머리에 왕따시만한 혹을 매달고 힘없이 고개를 떨군 대릴과 하워드에게 번갈아 눈길을 주며, 책상에 팔꿈치를 얹고 깍지낀 손으로 모양 좋은 턱을 받친 그레이엄은 상냥하게 말을 이었다.
「문제의 캐치프레이즈로는 살육행위를 조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저격수를 유도할 만한 프레이즈로, 저격 이외의 단어를 생각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워드는 한심함과 분함이 뒤섞인 어조로 뇌까렸고, 대릴의 책망하는 시선을 깨닫고야 아차 싶어 황급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과 뱉어낸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라, 당연하게도 그레이엄은 눈치를 챘다.
「저격수를 유도한다고?」
「……아, 에 또, 그것이 저……군에서 조금, 독특한 이벤트를……개최하고자」
수상쩍어 하는 빛이 역력한 그레이엄에게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 한다고 내심 쩔쩔매면서, 대릴은 경찰에게 추궁당하는 유괴범과도 흡사한 꼬락서니로 허겁지겁 설명을 시도했다.
「저격한 쪽이, 저격당한 상대가 마련한 상품을 획득하는 게임입니다만……」
「상품이라면……목숨 말인가?」
「아, 아닙니다! 특수한 레이저를 발사하는 모형 총을 사용하므로, 부상을 입을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경례를 쩔거덕 붙이면서 더 이상의 언급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뚝 잘라먹은 대릴의 태도가 못내 이상한지 한동안 눈을 깜박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레이엄은, 대책없이 폭주하는 행위를 엄벌하고자 서로를 오지게 후려갈긴 결과물인 부하들의 거대한 혹을 바라보고는, 마침내는 어깨에서 힘을 뺐다.
「그 이벤트에 나도 참가해 달라, 이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알았네. 모처럼 자네들이 내놓은 기획이 아닌가. 기꺼이 응하지. 허나, 나는 대체 무얼 상품으로 마련하면……」
「플래그입니다!」
「응?」
「대장님께서 탑승하시는 플래그가 상품입니다!」
「……」
어지간한 그레이엄도 말을 잃고 굳은 사이, 직립부동으로 경례를 붙인 부하 둘은 45도 각도의 허공에 눈길을 붙박고 진지하게,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단언했다.
「저희들은 대장님께서 저격당하시리라고는 꿈에도 여기지 않습니다! 간판 상품으로, 대장님을 저격한 장본인에게는 플래그를 증정한다는 취지를 이미 공표하였습니다!」
「……」
세상은 그것을 도발이라 부른다.
단숨에 굶주린 육식동물의 눈을 형형히 빛내는 그레이엄의 기백에 질려 내심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두 사람은 우선은 1단계의 성공을 순수히 기뻐하며 흉중에서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함정이네요」
일동이 집합한 브리핑 룸. 매우, 너무나, 지극히, 응당, 보나마나라는 뉘앙스를 담아,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한 손을 들어올린 록온이 발언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일이라구요. 선량한 일반시민이 플래그를 어따 써먹습니까. 목줄을 쥐고 산책할 수가 있나, 집안에 둘 수가 있나, 그렇다고 대형 쓰레기로 분류해서 내놓을 수나 있나……!」
「분명, 플래그를 눈독 들이고 그레이엄 에이커를 노릴 별종은 세상에서 우리 셀레스티얼 비잉뿐이겠죠. 전술예보관의 관점에서 볼 때, 그를 노리는 인물을 포획하기 위한 작전으로 여겨집니다」
「일개 피해자의 관점에서도 그렇게 보입니다」
「……록온」
스메라기는 늘어뜨린 머리칼을 살포시 떨면서, 요염한 미모에 그늘진 미소를 띠우고 록온에게 다가와 양팔을 뻗어 목에 부드럽게 감겨들었다.
「가르쳐 줘요. 당신의 고국에서는, 작별의 인사를 어떻게 하죠……?」
「뭐뭐뭐뭐뭡니까 그 의미심장하다 못해 불길한 질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뜬금없이 굿바이부터 당할 뻔한 록온이 빼액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스메라기는 애절한 미소를 띄운 채 일동에게 눈길을 향했다.
「그럼, 다수결로 결정합니다」
「전술예보는!?」
급기야는 직업을 돌돌 말아 휘떡 내팽개친 스메라기한테 기겁하여 비명을 한 옥타브 올린 록온에게 티에리아가 냉혹한 일별을 던졌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사회의 규범에 따르기를 거부하다니 자기가 뭐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라 티에리아……근데 우리 테러리스트 맞잖아?」
「다수결에 붙인 결과, 록온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스메라기 씨이이이이……!」
이놈 저놈에게 악 쓰는 사이 이야기는 지멋대로 일사천리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손을 번쩍 들어 찬성을 표한 자세 그대로 알렐루야가 실실 웃었다.
「그레이엄 에이커를 사살하는 거죠? 록온은 스나이퍼잖아요. 성공 못하면 왕따당해도 할 말 없겠네요?」
「야 임마,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실탄을 쓸 리가 있어!」
뭐가 그리 좋아 헤죽거리는 알렐루야를 째려보다, 그를 빠안히 올려다보는 다른 시선을 깨달았다.
「록온이 거부한다면 내가 가겠어」
「세츠나……」
「내가 저격하겠다」
「……」
내가 기억하기로 네 명중률은 바닥이었다만. 일일이 딴지를 걸 기력도 잃은 록온은 항복의 의미로 양손을 치켜들었고, 여태 지속 중이던 다수결에 찬성 두 표를 추가하는 꼴이 되었다.
그리하여 정신이 들고 보니 록온은 혼자 저격대회의 접수처 앞에 머쓱하게 서 있었다.
「콕온 스트로토스 씨입니까」
접수를 담당하는 인텔리 풍의 안경남이 신청서를 받아들고 읽어내려갔다. 옆에 버티고 선 등빨 좋은 드레드헤어의 사내가 유독 노골적으로 흘금흘금대는 폼이 내심 무진장 무서웠다.
「두어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먼저, 저격 경험은 있으십니까?」
「에엣!? 저, 전혀, 총을 잡아본 적도 없어요!」
「그럼, 건담에 탑승한 경험은」
「……어, 없는데요……」
뭐여 이 질문. 얼결에 YES라 대답했다간 드레드헤어에게 콱 물어뜯기는 걸까. 전전긍긍하고 있자니 그제야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얼굴을 보인 인텔리가 안경을 번쩍 빛냈다.
「마지막입니다. 당신은 그레이엄 에이커를 좋아하십니까?」
「하아?! 내가 미쳤다고 그딴 변태를! 총 쏘면 다 피해, 입만 열면 헛소리야, 목청은 더럽게 커, 진득진득 들러붙기까지, 아주 징글징글해 죽겠다! 당신들도 부하라면 손 놓고 구경만 말고 어찌 좀 해봐!」
「……」
눈을 더럭 뜬 인텔리와 드레드헤어가 각자를 마주보며 음침하게 씨이이이익 웃었다. 다시금 신청서에 시선을 못박은 인텔리가, 선을 두 줄 그어 <제공 상품>란에 기입한 <감자 한 상자>를 지웠다.
「귀하께서 제공하시는 상품은, 귀하 본인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뭐시라!?」
「결정 사항입니다」
드레드헤어가 반발하는 즉각 물어뜯을 기세와 안광으로 확인사살을 가했다.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다음 신청자에게 등을 떠밀리고 역시 등빨 좋은 안내역에게 뒤에서 양팔을 붙들린 록온은, 저격장을 향해 짐짝처럼 질질 끌려갔다.
저격총의 특수 레이저가 머리, 목, 왼쪽 가슴에 붙은 스티커 중 하나를 맞추면, 전광게시판에 승자와 패자의 이름이 표시된다. 탄환은 3발. 한 번 히트한 시점에서 게임은 종료.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티에리아 아데가 정정당당하게도 전장 한복판에 떠억 버티고 서자, 어디선가 광속으로 튀어나온 알렐루야 합티즘이 번개같이 티에리아를 나꿔채 옆구리에 끼고 풀숲을 향해 내달려 힘차게 다이빙했다.
「제정신이야 티에리아, 그래서야 쏴달라고 부탁하기나 마찬가지잖아!」
「여기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나는 티에리안 안데 명의로 등록했단 말이다! 은닉의무를 망각한 거냐, 알렐루야 합티즘!」
「와─와─와─────!! 티에리아야말로 풀네임을 막 부르면 어떡해, 나도 알렐루야 합티즘 명의로 등록했는걸!」
「토씨 하나 안 틀리지 않나, 이 알렐루야 합티즘 같은 어리석은 놈……!」
모르는 사이에 신종 욕설이 된 알렐루야가 발끈하고, 티에리아가 더더욱 버럭하여, 풀숲에 숨어 투닥거리는 와중에 레이저 광선이 불과 몇 cm 옆을 스쳤다. 뒤늦게 현재의 위치를 자각하고 허둥지둥 총을 고쳐쥐었다.
「세츠나 F. 세이에이는 건=담 명의로 등록한 건가……」
적의 동태를 엿보는 한편 티에리아가 낮게 중얼거리자, 총신을 낮춘 알렐루야가 덩달아 한숨을 쉬었다.
「록온은 무려 콕온이야 콕온. 게다가 상품은 자기 자신. 자만심이 하늘을 찔러도 유분수지」
「명색이 스나이퍼인 그 남자가 저격당해서야 마이스터의 자격을 논할 수조차 없어. 이 기회에 실력을 가늠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것도 그렇네. 뭐 우리도 기왕 참전한 이상은 성과를 올리도록 노력하자고!」
말을 다 삼키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방아쇠를 당긴 알렐루야의 레이저는 타겟을 간발의 차로 빗겨나갔다. 혀를 차는 알렐루야를 티에리아가 경악의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네놈, 그레이엄 에이커는 어쩌고!?」
「내 타겟은 63번! 상품이 미니 콜리시랜다! 내가 걍 두고 볼 줄 알았냐, 찌질이 샛갸!!」
「……」
흥분이 극에 달해 가르마까지 비뚤어진 알렐루야를 한동안 아연히 바라보던 티에리아는, 마침내는 짜증스럽게 시선을 외면하고, 관여하기를 깨끗이 포기한 후 포복으로 전진하여 자리를 벗어났다.
스나이퍼의 기본은 졸랑졸랑 돌아다니지 않는 것. 이래뵈도 프로인 록온은 신중하게 장소를 선택해 2층의 사각에 잠복하였다. 이곳에서라면 뻥 뚫린 1층의 널찍한 엔트랜스 홀이 한 눈에 보인다. 침착성이 부족하고 척 봐도 숨바꼭질은 질색일 게 빤한 그레이엄이 모습을 보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플래그 받아봤자 쓸데도 없구먼)
말 그대로 무용장물일 뿐이다. 그에게는 애기(愛機) 뒤나메스가 있지 않은가.
「!」
바로 그때, 고대하고 고대했던 그레이엄 에이커의 화사한 금발이 홀에 출현했다. 그 즉시 저격의 집중호우가 퍼부어졌지만, 발군의 감각을 지녔는지, 운이 끝발나게 좋은지, 아니면 단지 레이저도 그레이엄만은 싫을 뿐인지, 맞기는커녕 스치지조차 않은 채 장본인은 당당한 폼새로 홀을 누비고 있었다.
(대체 뭐야 저놈……)
괴물을 보는 기분으로 안면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록온은 스코프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였다. 놈을 저격한다. 플래그는 거저 줘도 싫었지만, 실패하면 톨레미에서 왕따가 될 판이었다.
(친구 모집 중)
마음속으로 처량맞게 중얼거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을 때, 타겟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아한 몸짓으로 이쪽을 돌아보고, 얼굴을 들어, 록온을 향해 사내다운 영맹한 미소를 지어보이지 않는가.
「!?」
얼결에 저격총을 떨구고 말았다. 그레이엄이 눈치를 챘다. 어째서.
의문과 공포가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헝크는 사이, 그레이엄은 시선을 살짝 틀어 다른 방향을 향해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좀 있다가, 또다시 각도를 틀어 미소를 날리고, 뒤이어 또다시 각도를 틀어 미소를…….
「……」
무슨 지랄이냐 저 색히. 모양만은 미소 짓는 귀공자였지만 그래봤자 록온의 바닥까지 떨어진 턱은 올라오지 않았다.
소위 <무턱대고 쏴갈기면 한두 발은 맞는다> 전법일 뿐 이쪽의 기척을 감지한 결과가 아님을 알고, 록온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편 뜬금없이 미소 세례부터 받은 저격수 여러분 역시 여러 의미로 무서워진 듯 그레이엄의 주변에서 레이저의 빗발이 뚝 그쳤다. 발군의 파괴력이었다.
「바보짓에도 정도가 있지……」
잠시 흩어진 집중력을 가다듬고, 겨냥했다. 정신을 다잡고 입가를 긴장시켰을 때, 난데없는 돌풍이 정수리를 덮쳤다.
「위험합니다, 록온 스트라토스!!」
「!!」
웅크린 몸에 격돌하고 심지어 사정없이 깔아뭉갠 물체는 티에리아였다. 록온이야 충격과 통증으로 비명조차 못 지르고 우거지상으로 뻗어버리건 말건, 티에리아는 별다른 데미지도 입지 않았는지 매정하게 살았군요 한 마디만 툭 내뱉고 옆자리에 앉았다.
「고, 고마……운 건가 이거? 에 또, 하여간, 덕분에 살았다, 티에리아」
근처에서 살기 내지 적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거짓말이나 농담을 널어놓을 성격도 아닌 이상 티에리아가 위험하다 했으면 정말로 위험했던 것이리라. 순순히 감사의 인사를 하자, 티에리아는 여전히 썰렁썰렁한 눈길로 록온을 흘겨보았다.
「위험했던 사람은 접니다. 따라서, 목숨 건진 사람도 접니다」
「……」
「함정에 빠졌습니다. 정확한 위치에서 쿠션 구실을 충실히 수행한 것에는 예를 표하지요. ……이런」
그리고 티에리아는 아름다운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들통났군요」
「히에에에에에에엑!」
사방팔방에서 일제히 레이저 광선이 쏟아졌다.
안경을 인질로 잡힌 티에리아는 몰라도 제 몸을 내놓아야 할 처지의 록온은, 필사적으로 바닥을 굴러 광선을 이리저리 피했다.
「쥐며느리입니까」
대놓고 조소하는 티에리아는, 양반다리를 하고 편하게 앉은 주제에 레이저 한 방 맞지 않고 있었다. 반박을 하고 싶어도 반박할 여유가 없는 록온은, 눈물로 흐려진 시야 저편에서 회심의 웃음을 띄운 그레이엄의 얼굴을 보았다.
「!!」
그레이엄이 총을 겨누었다. 록온의 숨이 멎었다. 티에리아가 엉덩이를 긁었다.
다음 순간. 록온의 이마에 레이저 광선이 명중했다.
「……위기일발이었네」
기뻐해 주기는커녕 노골적으로 실망한 티가 역력한 스메라기가 술병을 기울이며 시큰둥하게 툴툴거렸다.
「그레이엄 에이커보다 먼저 세츠나가 록온을 명중시킬 줄이야……당신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 말에 정녕 한 치의 거짓도 없다면 우선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씀하시죠, 스메라기 씨」
「어머어머, 지금 내 성의를 의심하는 것?」
레이저 광선을 뿜을 듯한 스메라기의 열렬한 눈동자를 록온은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먼저 눈길을 외면했다. 등 뒤에서 알렐루야가 헤실헤실 웃었다.
「결국 그레이엄의 명줄을 끊어놓지 못했으니까, 록온은 왕따 결정이네요?」
「저번부터 뭐가 좋다고 실실 웃고 있어? 너야말로 미니 콜리는 어쨌냐」
「그게 말이죠……반칙패 판정을 받아버렸어요. 두들겨패고 짓밟고 갈구고 협박해서 이마를 쐈다고」
「세상 누가 봐도 그건 저격이 아냐」
탄식을 내뱉고, 이번에도 빠안히 바라보는 시선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인사도 못했다 싶어, 얼른 평소의 웃는 얼굴을 회복한 록온은 최연소 마이스터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세츠나,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 그치만 그레이엄 에이커를 노리려다 날 맞추게, 저격의 신도 깜짝 놀랄 기행일세」
「이 세계에 신은 없어」
「그래그래」
싱글거리며 세츠나의 머리칼을 토닥여준 록온은, 이 까다로운 소년이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기색을 보임을 알아채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래, 세츠나」
「내가 너를 저격했다」
「응. 그랬지. 고마워」
「네가 상품이다」
「응, 그랬지. 원래는 감자 한 상자였는데 말야」
「네가 상품이다」
「에, 어, 응, 그러, 게」
「네가 상품이다」
「……」
하로의 흉내는 아닌 것 같다. 망가진 라디오는 더더욱 아닐 터.
「……」
「네가 상품이다」
잠자코 백스텝을 밟는 것에 비례하여 세츠나가 스스스스슥 다가들었다. 딱히 빠른 속도도 아니고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래서 더욱 살떨리게 무서웠다.
현실을 직시하기도 괴로워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 직전, 겨우 볼만한 전개가 됐답시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스메라기의 아름다운 얼굴이 시야의 한켠을 스쳤다.
결국 저격을 하지도 당하지도 않은 그레이엄은, 어쩔 줄 몰라하며 손이 발이 되게 비는 부하들을 피해 애기 플래그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공주님임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청년을, 바로 코앞에서 엉뚱한 놈에게 빼앗긴 것은 부하들의 잘못은커녕 그의 역량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분한 마음은 필설로도 다할 수 없었다.
「나도 아직 수련이 부족하군, 플래그……」
제 생일에 뭐가 아쉬워서 모빌 수트 상대로 우울하게 노가리를 까야 하는가. 보통은 그리 여길 일이었으나 그레이엄은 보통이 아니었던지라 이건 이것 나름대로 즐거웠다.
옆에 사랑하는 이가 있어준다면 더욱 즐거웠겠지만.
「……」
그 광경을 상상해보려 시도했다 오히려 더 허무해진 그레이엄은 애기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플래그의 발치에 붙어 있는 무언가의 종이조각을 알아보았고, 놀람에 녹색 눈동자를 둥글게 떴다.
「메모인가?」
급하게 갈겨쓴 쪽지였다.
『쓰잘데없는 수작으로 사람을 유인하려 들지 마. 민폐라구』
「……」
보아하니 메모의 작성자는, 그레이엄이 이벤트를 계획한 줄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중차대한 오해였으나 굳이 변명할 마음은 없었다. 밑에 덧붙여진 한 줄을 읽고, 그레이엄은 기분좋게 미소지었다.
『플래그에는 당신이나 타. 나는 필요없어. 그리고……』
그레이엄, 생일 축하해
한 줄 감상 : ☆★승리의 세이에이사마★☆
나는 이제 우리 꼬꼬마를 감히 꼬꼬마라 할 수가 없어요....!! (감루)
로드의 생신인데 왜 세츠나가 득을 보는지는 따지지 말자. 예언자는 넷까지 허락하셨고 녹색 눈의 미인은 천하의 보배인지라(....)
어쨌든 치유는 되었음. 역시 우울할 때는 개그가 최고라능. 그렇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