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록온도 이런 세계를 원하지 않았어."
세츠나에게 록온은 지키지 못한 것과 이루어야 할 것들의 상징. 스스로를 좁은 길로 내모는 표상. 지주이자 지표.
진짜 죽은 첫사랑 크리 에어리스 놀음이 차라리 나을 후덜덜함이다. 대체 디란디로 뭘 하고 싶은 거냐 쿠로미즈....!!!
네가 록온 스트라토스다. 이 대사를 다른 누구도 아닌 세이에이사마께서 치는 것이 왜 충격과 공포다 거지깽깽이들....어험!! 왜 공포와 전율의 도가니인지 아직 감이 안 오시는 분들께 쉽고 빠른 30초 비유를 제공하겠습니다. 히치콕의 그 많고 많은 변태놀음(※주인장은 히치콕 영감태기의 팬입니다) 중에서 최강 변태의 극을 달리는 <현기증>의 건담 버전이라 보시면 된다능. (더블오의 세븐소드에 썰린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킬러래빗 님이 연성하신 '피아노'의 (보기에만) 온건한 버전이랄까...? (케루딤의 GN 라이플에 쳐맞는다)
난 틀린 말 하나도 한 거 없어! 다 쿠로미즈 탓이야! 내가 나쁜 거 아냐!!! (벌헉)
덕분에 오밤중에 정줄 놓고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닐의 분풀이를 하고 물어뜯고 할퀴고 헤집는 정신적초강력귀축근친증오모드의 세츠라일을 한바닥 망상하다가 겨우 복귀했다. 어허 안되지 안돼. 아.직.은. 쬐애끔 이르지.
그래서 정신을 정화한답시고 RURUTIA의 환혹의 바람幻惑の風을 무한 리피트로 걸어놓고 알렐록/사셰록을 주로 파면서 실은 세츠나↔록온 사이의 교류를 후덜덜하도록 잘 소화하는 몹쓸 사람 아이자와 케이(相澤 桂, 사이트명 밤이 밝아오다夜が明ける) 씨의 신작 <산 자(空蝉)>를 홧김에, 진짜로 홧김에 두르륵 해치워 버린 나님은 좀 멋지다고 생각했읍니다. 반어법의 용례입니다. 시험에 나옵니다. 록온이 세츠나에게 남긴 것들에 관한 이야기. 적당히 '산 자'로 번역했지만 우쯔세미(空蝉)는 엄밀히는 현세와 현세에 사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근데 이거 정신정화용이 아니라 오히려 확인사살용 아냐?
문제 되면 확 지워버립니다. 쓰잘데없이 넘쳐흐르는 의욕에 대한 태클은 사절하겠다능. 최소 두 명의 피에 쩔은 감상을 연성 중이신 리린 님께 공물로 바칩니다. 토호호호.
록온 스트라토스라는 사내는 조금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안 먹냐. 싫어해?」
눈앞에 우유잔이 딸깍 내려앉아 본의 아니게 침묵하고 만 세츠나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했던지 일단은 고개부터 갸웃해 보였다. 약관 14세의 소년이 어린애 같다고 판정을 내렸을 줄은 꿈에도 모를 스물 하고도 두 살의, 몇 번을 들어도 코드네임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름을 당당하게 코드네임이라 밝힌 화려했던 첫 대면 후에 그 점에서는 수비의무를 저촉하지 않는지 산뜻히도 자기소개를, ……실로 산뜻하기 그지 없게도 필경 록온 스트라토스가 아닐 소중한 영역의 사소한 프라이버시를 무심하리만치 후딱 던져준 여하간 여덟 살 연상의 남자는 덮어놓고 세츠나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기본적으로는 개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방에 두 사람을 우겨넣자면 아직 여러가지로 준비가 필요한 듯 우리가 있어도 도움될 일 없으니까 이 틈에 숨이나 돌리자며 세츠나를 재촉하는 수법에는 딱히 이렇다 할 대단한 의욕이나 의도는 엿보이지 않았고, 벌써부터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바로 문제였다.
적어도 그게 이상하다고 여길 만큼은 세츠나는 적극적인 환영을 거의 기대하지 않았고, 사실상 적극적으로 번잡한 행사를 치르리란 예상 자체가 전제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열네 살이 되면 무리 하나를 맡게 된다. 흔히 무력함과 직결되는 아이라는 카테고리는 세츠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통용되는 좁디 좁은 세계가 오래 전에 산산조각났음도 이해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의심할 여지 없이 미숙하다는 사실도 이미 깨닫고 있었고, 최연소임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자신이 주위에게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오히려 어느 정도 당연시했었더랬다.
「……음식 가리면 못 써?」
아니다. 눈살을 설핏 찌푸리며 나무란들 세츠나에게 음식물에 대한 기호는 없었다. 투정이 받아들여지는 환경이 아니었다. 최초에도, 도중에도, 이후로도, 마이스터로 선발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기호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보급량의 과하고 덜한 문제였다. 때문에 눈앞의 우유를 마신다고 문제될 일은 없었으나, 현 상황을 초래한 방법이 다소나마 특별했다. 이 사내는, 록온 스트라토스는 질질 끌고 온 세츠나를 의자에 달랑 내려놓고는 구석에 설치된 드링크 카운터로 성큼성큼 걸어가 음료 디스펜서를 상대로 한참 씨름을 하더니 마침내 세츠나 앞에 우유잔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식당은 이 조직에 소속만 되어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그만큼 포인트를 소비해야 한다. 돈을 받지는 않을지언정 공짜도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사람도 물자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포인트는 반드시 자기부담이고 그걸 효율적으로 쓰는 것도 마이스터에 앞서 스태프로서의 의무라고 설명하면서 입에 바른 침이 마르기도 전에 돌아서자마자 저지른 짓이었다.
「록온 스트라토스. 네가 이걸 내게 주는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다」
굳이 그 말을 입밖으로 낸 것은, 굳이 말하자면 얼마간의 옹고집이었다. 세츠나를 다짜고짜 데리고 와 버린 이 여덟 살 연상인 스물 두 살 청년의 사고 궤적을 트레이스하지도 못할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았다.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런다면 얼마간 체증이 내려갈 성 싶기도 했다. 더불어 지극히 당연한 듯이 행동하는 록온 스트라토스에 비해 스스로의 부족함이 아주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당장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즉시 치워버렸다.
「응. 대충 예상한 대로일세」
때문에 그 미소가 의외라면 의외였다.
남자는 눈을 온화하게 내리깔며 웃었다. 다부지다기에는 천진하고, 쾌활하다 표현하기에는 아주 조금 음습한 미량의 교활함을 내포했고, 스물 두 살, 세츠나에게는 어른이라는 카테고리 하나로 뭉뚱그릴 수 있을 인종이 보이기에는, ……친근한 분위기가 감도는 어딘지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었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뭐, 이유는 간단해. 난 루키에겐 한 턱 내자는 주의야」
이래봬도 여기에 꽤 눌러붙어 있었거든. 그러면서 간단히 웃었다.
대단찮은 이유였다. 특별히 세츠나여야 할 의미도 필요도 없는 이유로서 그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즉 세츠나가 세츠나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록온 스트라토스의 행동원리임을 이해했다.
「근데 어째선지 신입이 하나같이 나보다 어려요. 이러다 내가 사시사철 다 덤태기 쓰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갖다 바칠 만큼 벌지도 않는다구. 하는 말은 불만 비슷했지만 얼굴은 조금도 상관하지 않고 웃었다. 잘 웃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마도 록온 스트라토스에 대해 두 번째로 배운 사실이었다.
「자 문제 없지, 따라서 GO」
자신은 커피잔에 입술을 대면서 길다란 손가락을 곧추세워 보였다. 그 손가락을 감싼 장갑을 세츠나는 보았다. 표정은 풍부하고, 적당히 떠벌이는 한편 적당히 외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세츠나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덕분에 그러한 점에서는 자상하고 섬세한 성격임을 알았다. 행동은 대범하고, 적당하고, 알맞고, 정당했다. 돌이켜 보면 세츠나를 질질 끌고 오는 사이에도 의자에 달랑 내려놓은 그 순간에도 록온 스트라토스 자신은 결코 세츠나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아마도 신중하게. 그에게 허락된 행위가 아니라는 전제를 기초에 깔고.
간격을 두고 있다. 정당하고, 예의 바르기만 한 적절한 거리.
「……감사를 표한다」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무엇에 대한 감사인지는 추궁하지 않았다. 세츠나를 의자에 앉혔으면서 정작 자신은 그 옆에 서 있었다. 키가 큰 사내였다. 록온 스트라토스는 음료 디스펜서에서 뽑은 커피를 들고 긴 다리를 적절한 선상에서 편안히 내팽개치고 있었다. 그런 식이었다.
「뭐, 그래봤자 잠깐이겠지만」
달콤한 맛이 은은히 감도는 우유를 마시고 고개를 들어보니 인종이 다양한 이곳에서도 달리 보지 못한 놀랄만치 하얀 얼굴에 아로새겨진 눈동자가 부드럽게 적절한 거리를 둔 그곳 옆자리에서 세츠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같은 방이야. 잘 부탁해, 세츠나」
청명한 하늘과 능선을 넘는 높디 높은 색채가 녹아든, 녹색.
명랑한 어조에 무슨 말로 대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이때 새겨진 가장 강렬한 기억이 록온 스트라토스의 눈동자 색이었다. ……그 이후 필시 이런저런 감정상태를 경험했으며, 세츠나는 왜 하필 우유냐고 따질 기회를 여전히 놓친 채였다.
『바보냐. 쏠 의욕도 안 난다』
정말은 어떠한 심정으로 심판을 내린 끝에 한 말이었는지 따지고 들지 않았다. 하지 못함으로써 행사하는 권리를 아직 얻지 못했을 뿐더러 또한 애써 고하고팠던 감정을 세츠나는 우선하였다.
전황은 또다시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다.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의 긴급통신을 받고 우주로 귀환. 파일럿 수트에 팔을 꿰면서 문득 떠올린 그 속내를 캐물을 날이 올지, 그런 일이 가능할 날이 올지 한순간, 세츠나는 똑똑히 생각했다. 몇 번이고 숙고한 일이기도 했다. 어느 쪽도 깊게는 염려치 않는다. 당장은 때가 아님을 이해하는 동시에 가슴속에 들어앉은 커다란 돌덩이와도 같음을 세츠나는 인식하고 있었다.
웃어넘기고 마지막에는 세츠나의 머리를 반강제로 끌어안아 토닥여 준 록온 스트라토스의 눈이 희미하게 젖었음을 세츠나는 보았다.
결코 웃고 넘길 것이 아닌 무언가를 갈무리하고 만 하늘과 능선의 높디 높은 녹색.
기지의 각 구획은 기본적으로 톨레미와 흡사하다. 결국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로 주어진 도쿄의 주거지를 별도로 친다면. 사실 그래봤자 엄청난 차이가 있지도 않았다. 일정한 틀 안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는 동일하므로. 그렇다고 무슨 불평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라 재빠르게 갈아입고 테이블을 확인했다. 대체적으로 통상의 범위 내에 드는 일련의 행동에는 해치를 여는 역할을 티에리아가 떠맡은 딱 그만큼만 유예가 있었다.
「다 끝났어, 세츠나?」
가벼운 공기마찰음을 일으키며 문이 열렸다. 그로는 문젯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현재 메인으로 쓰고 있는 톨레미와 기지 내 이곳의 패스워드를 세츠나가 그에게 알려주었으므로. 딱히 이유는 없었다. 이곳의 구획은 한 시기, 그들이 같은 방에서 먹고 자고 일어나며 생활했던 시절 거주했던 구획과 비슷하고 룸메이트에게 숨길 일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을 뿐. 그뿐이었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세츠나도 패스워드를 알고 있었으니까.
「록온」
거울이 붙은 옷장에서 시선을 록온에게 돌리자 에너지 팩이 날아왔다. 손안에 떨어진 것은 흔히 보아온 사과 패키지였다.
「보급. 미묘하게 밥 먹을 틈도 없었잖아. 티에리아도 하나 가져간 모양이더라. 뭣하면 지금 좀 먹어둬」
그닥 대단찮은 이유였다. 록온다운 이유였다. 넌 보기에만 신경질적이지 실은 무진장 대범하니까 말야. 의외로 대강대강 때우는 세츠나의 몹쓸 버릇은 2년도 더 전에 공략 완료된지 오래였다. 음료는 우유. 에너지 팩은 사과. 될 수 있는 한 손 하나로 들 수 있는 먹거리. 시간과 여유가 있을 때만은 좀 더 호화롭게. 때로는 포장 음식을 내놓는 대신 록온이 직접 주방에 섰다. 나도 기분 전환 좀 하자. 종이책을 읽을 때와 같은 말투로 세츠나 앞에도 이것저것 늘어놓고는 했었다. 록온의 요리에는, 마찬가지로 록온 스트라토스가 아닌 그의 섬세한 프라이버시를 은밀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내보이는 아마도 흔해빠진 가정요리에 세츠나는 익숙해지지 못했지만 맛이 없다고는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더랬다.
「이럴 땐 까닭없이 초조해진대니까」
하여간 받은 에너지 팩을 우선시하고 좁다란 흡입구로 단숨에 들이마셨다. 차가운 인공감미료는 그럭저럭 먹을 만한 새콤달콤한 맛으로 식도를 부드럽게 통과했다. 옆구리에 낀 헬멧만 쓰면 끝나는 록온의 주위에는 앞세웠는지 드물게도 하로가 없었다. 어느 틈엔가 눈에 익은 외부보조용 독립 AI가 꽤나 마음에 드는 듯 사복일 때조차 끼고 살다시피 하건만 지금은 파일럿 수트임에도 혼자 있는 록온은 무언가 미묘하게 부족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구태여 말하자면 조금쯤은 재미있기도 했다.
눈으로 취득하는 시각 데이터를 불필요한 감상을 품고 해석하는 일은 세츠나에게는 전혀 흔하지 않았다.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해야 할지 가늠하고 있는 사이에 록온이 먼저 들어왔다. 키도 크고 덩치도 제법 있는 남자의 동작은 그럼에도 허공에 살짝 뜬 마냥 가뿐했다. 패키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양손으로 숱 많은 흑발을 쓸어올리자 뒤로 돌아온 록온이 자연스럽게 목 근처의 마지막 패스너를 채웠다.
「응, 끝났다」
그곳에는 세츠나가 추량할 만한 무엇도 이미 당연하게 잔존하지 않았다. 록온의 감정은 분명 움직임이 크고 풍부하고 시원스럽게 드러났으나 그럼에도 실제로는 무서운 노력과 끔찍스런 진력으로 빈틈없이 닫혀 있었다. 2년, 하고도 반년이 흘렀던가. 세츠나는 무수한 미지의 감정과 셀 수 없이 방대한 몸짓을 아마도 보기에는 거의 일방적으로 넘쳐흐를 만큼, 무한하게 느껴질 만큼 받아가며 여기까지 왔지만, 닫힌 것이 마침내 완전히 열리는 순간에는 여즉 조우하지 못했음을 어느 겨를엔가 깨달았었다.
막연하게 알고 싶다고 여기는 마음 같기도 한 것이 때때로 의식 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말수가 적은 세츠나는 헤아릴 만큼의 질문을 물을 타이밍을 줄곧 놓친 채였고 언젠가는 순서에 맞춰 하나하나 공략해 볼 마음이 있는 것도 같았다. 2년. 하고도 약 반년. 계절이 차례로 순환하여 세츠나는 열 일곱이 되었다. 강고하게 지켰어야 할 좁다란 껍질의 일부분을 조금씩, 약간씩, 뒤흔들리면서.
성장, 이라 일컬어지는 마땅한 경과.
여덟 살 연상인 록온 스트라토스는 여전히 모든 일에서 대략 세츠나의 상정을 살짝 상회했고 그것이 8년의 시간이 축척된 결과라면 과연 세월은 공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때때로 은근히 감탄하기도 했다. 상정한 범위에 들지 않음이 곧 이상하다고는 더 이상 치부하지 않았다.
전용 파일럿 수트는 생체운동의 한계를 저해하지 않는다. 전달지수에 만족하고 세츠나는 엑시아로 발길을 돌렸다. 유예가 생겼다 해도 록온의 말대로 휴식을 취할 정도의 유예는 아니었다.
「세츠나」
늘 그렇듯이 먼저 통로로 향할 줄 알았던 록온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에 이끌려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록온의 등을 좇아야 했다. 단순한 기체 성능의 차이에서나마 돌아보는 횟수가 늘었음을 세츠나는 내심 기꺼워했었다.
「……응. 가자」
록온의 손이 세츠나의 흑발을 쓰다듬었다. 정중하고 적절한 거리는 틀림없이 좁혀졌지만 완전히 제로가 되지도 않았다. 제로가 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터라고 아마도 양쪽 모두 그렇게 여겼다. 그러므로 너무나도 쉽게 그리하는 양 보이되 변함없이 신중하고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장갑 너머 상대의 손가락이 마치 언제고 어느 때고 그리하기가 익숙한 양 흑발을 헝크러뜨렸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물어볼 타이밍을 놓쳤다. 록온은 처연하도록 곱게 미소지었다.
「……」
그때 물으려고 했던 일을 세츠나는 끝끝내 묻지 못했다.
「……아아」
결코 웃고 넘길 것이 아닌 무언가를 갈무리하고 만 하늘과 능선의 높디 높은 녹색.
크고 풍부하면서 또한 섬세한 그것을 여즉 숨기고 있는 여덟 살 연상의 상대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을 때로 어렴풋하게 인식했다.
말수가 적은 세츠나가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몇 번이나 타이밍을 놓친 수많은 질문을 언젠가는 공략해 볼 요량이 있었던 듯도 했었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을 잃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어리석었다고는 하지 않으리라. 그 당시 세츠나가 무엇 하나 전혀 각오하지 못했음은 누구보다도 이미 세츠나 자신이 알고 있었다. 위험하고도 길었던 시간 동안 자연스러이 앞장섰던 연상의 남자에게 속속들이 익숙해진 나머지. 불길한 징조를 상기시키는 무엇 하나 당연스럽게 보이지 않았던 명료하고도 투명했던 아름다운 푸른색.
선명하도록 높디 높은 푸른 빛깔.
금세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소간 빨라진 발걸음으로 비운 불꺼진 거주구의 바깥은 눈부신 황금빛으로 넘실거려 세츠나의 갈색 눈동자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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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닐이 죽일 놈 나쁜 놈인 게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