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POSE를 읽다가 더럭 발심한 결과인 카자미 마야 네타 3탄. (크윽;) 여전히 한 주의 시작은 항례의 50*2제로 열고 있는 S;;;
어젯밤에 이쪽 세계관으로 장편 네타가 하나 떠올라 버려서 식은땀 흘리면서 고뇌하고 있다. 기분은 다구리당하고 있는 카가 씨. (爆)
SIDE B-14. 모처럼(せっかく)
딸 엿먹이는 하야토가 너무 재미있고 이지메당하는 카가 씨가 너무 즐겁고 마야짱 쓰기가 너무 앗쌀해서 곤란하다;;; 기이하고 기묘하고 괴상망측한 의사 부모 삼각관계는 여전히 건재함.
카가 씨와 란돌 왕자님은 프라이빗에서는 무지하게 사이가 나쁠 거라고 생각함. 이유야 말할 필요도 없고. 란돌 왕자님은 어딘가의 백마 왕자님이 아니므로 누구 씨 내버리고 달아나서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인간을 결코,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으시다. 카가 씨는 지은 죄가 있어서 비교적 알아서 기는 편.
저 동생 운운 발언은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짓이었음. 이번에 소원 풀었다 (웃음)
올해 16세의 파릇파릇한 청춘. 미모도 몸매도 두뇌도 집안도 인간 관계도 흠잡을 데 없이 뻑적지근한 완벽한 스펙. 세상에 내 한 몸 거칠 것 없고 천상천하에 유아독존하고 기고만장하며 앗싸라비야한 놈이 카자미 마야의 인생이었다.
따악 두 가지, 여러 의미로 인간의 틀을 초월해 버린 정신 나간 웬수 같은 아빠와 처음 본 순간부터 운명을 느낀 남자가 하필 아빠와 대략 20년째 눈만 마주쳐도 유정이 폭발하고 용암이 콸콸 흘러넘치는 끈적질척화끈열렬에헷웃흥민망(...)한 관계라는 사실만 제외한다면야.
─그 두 가지가 나머지를 몽땅 깎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스물스물 치밀어오르지만 일단 무시하자.
남자친구가 어쩌고 시험이 어쩌고 학원이 어쩌고 어젯밤 드라마가 어쩌고 다이어트가 어쩌고, 강산이 몇 번 뒤집어져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여고생의 화제로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친구들에게 에워싸여, 질풍노도의 시기에 쌓는 인간관계는 중히 여기라는 주위의 압박을 못 이겨 꼬박꼬박 다니고 있는 학교의 정문을 빠져나왔을 때, 마야는 그를 발견했다.
"안녕, 늦었네?"
까만색의 헐렁한 카디건과 화이트 진, 앙증맞은 동글동글 미니 선글라스와 모자라는 간편한 차림에 말만한 딸을 뒀다는 게 이미 범죄급인 살인적 동안의 겉보기 연령을 가속도 걸어 폭락시키는 맥도널드 미소와 열심히 짤짤짤 흔들어대는 손이 거창무쌍한 타이틀을 수십 몰고 다니는 CF의 살아 있는 신화란 그의 위치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지독한 두통을 유발하는 국지성초대형민폐인간, 그리고 열 여섯 새파란 청춘의 피부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악성 스트레스의 최대 원인이자 전문용어로는 마야의 아버지라고도 하는, 바로 카자미 하야토 그 사람이었다.
마야는 뒤꿈치로 스핀을 걸어 화려한 180도 턴을 시도했다.
그러나 반사신경이 극한의 극한까지 정제된 아빠 쪽이 좀 더 빨랐다.
"어디 가."
"꺄─이거 놔!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못 본 셈 칠래─!"
"그렇다고 얼굴 보자마자 꽁지빠지게 내빼? 해도 해도 너무한다. 나 상처받았어."
"지금 나더러 그 맨들맨들한 면상을 상처입은 얼굴로 여기라고! 그보다 왜 여기 존재하고 있는 거얏!!"
"마야가 보고 싶어서♡"
"뽀샤시 필터 저리 못 치우냐─!! 캬악!"
"...저 있지, 지금 꼭 유괴범 된 기분이거든. 그만 날뛰고 좀 얌전히 있어주지 않을래? 벌건 대낮에 이게 무슨 꼴이야."
"그럼 이 손 놔 인간아!"
"싫네요. 놓으면 내뺄 거잖아."
"말이라고 하냐."
"......너 말야, 아무리 나라도 정말 상처입는다?"
"웃기지 마! 뭘 갖다 긁어도 그놈의 듀랄루민 합금 신경에 흠집 하나 날까 보냐─!"
한 판에 박아낸 닮은 꼴의 소년(일단 보기엔)과 소녀가 백주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엉겨붙어 바둥바둥 승강이를 벌이는 광경은 그 나름대로 제법 흐뭇하고 사랑스러운 정경이었다.
어디까지나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민폐성으로는 좋은 승부가 될 아빠와 딸은 대략 3분쯤 제멋대로 둘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투닥투닥 법석을 떨다 여지껏 멈춰서서 이쪽을 어안이벙벙한 눈길로 바라봐주고 있는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에 가까스로 사회성을 회복하고 수습에 나섰다.
"아─미안해 얘들아! 이 인간은──"
"아하하,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멋대로 마야 빌려서. 난──"
아빠도 딸도 말을 끝까지 맺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한끝 차로 말허리를 분질러먹으며 튀어나온 누군가의 중얼거림은 양측을 단숨에 냉동시키는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마야짱한테 동생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 말을 신호로 눈을 부담스럽게 반짝반짝 빛내며 여고생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일명 귀여운 것엔 사족 못 쓰는 소녀 심리)
"저기저기, 몇 살이야?"
"꺄아─진짜 마야랑 꼭 닮았어!"
"세트 같아! 귀여워─!"
"혹시 쌍둥이니? 쌍둥이구나!"
"둘이 사이 참 좋네─"
"이름이 뭐야?"
"어느 학교 다녀?"
마야에게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꽁꽁 얼어붙은 카자미 하야토라는 근래의 초 레어 영상을 배를 움켜쥐고 마음껏 비웃었겠으나 상황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호라 애재라 통재로다.
그리고 정확히 콤마 2초 후.
허리를 꺾으며 그 자리에 풀썩 무너져 대폭소를 터뜨리는 아빠와 이를 뿌득 갈며 빌어먹을 등짝을 향해 분연히 정의의 응징을 날리는 딸이 있었다던가 없었다던가.
아무래도 좋지만 통행 방해다, 카자미 부녀.
가까스로 상황을 교통정리하고 오해를 푼 건 좋았지만 덤으로 정체까지 들통나버려 - 순전히 아무 생각없이 예의바르게 자기 소개까지 해 버린 하야토의 책임이다 - 그 즉시 눈에 불을 켜고 손에 손에 펜과 노트를 쥐고 덤벼드는 파워풀한 여고생의 공세에 사람좋게 전부 응하려 하는 아빠의 목을 휘어잡고 아무렇게나 작별인사를 내뱉고 한달음에 근처의 풀숲으로 뛰어들었다.
"아빠! 이 인간아,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저기, 아픈데."
"전교생의 절반한테 사인을 해줄 작정이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라!"
"에? 왜 그렇게 많이?"
"......당신, 자기가 일본에서 대체 어떤 위친지 전혀 모르지."
".....?"
기네스북감의 아방철벽을 둘러쓰고 어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빠에게 뭔가를 설명하려는 깜냥은 진작에 포기했다.
"아무튼, 바쁘신 몸이 여긴 뭐하러 행차하셨어?"
"마야 보러 왔다니까."
"숨은 의도를 불엇!"
"숨은 의도고 뭐고... 오늘 아빠랑 데이트해주지 않을,"
"VITO."
".....콤마 1초만에."
"카가 씨라면 또 몰라, 내가 미쳤다고 당신이랑 데이트를 해! 핫! 어림반푼어치도 없네요!"
"정말 싫어?"
"차라리 보자기를 둘러쓰고 코에 젓가락을 꽂고 키질하며 춤을 추겠어."
"......그거 꽤 볼만하겠는걸."
"죽고 잡냐?"
"쳇, 할 수 없네."
웬일로 미련없이 털고 일어난다 싶더니, 하야토는 빙글 돌아서면서 툭 던지듯이 중얼거렸다.
"──모처럼 카가 씨까지 불러왔는데."
"!!!"
"아~아, 카가 씨랑 마야랑 셋이서 놀러가려고 했었는데... 저리 죽어도 싫다고 팔팔 뛰는 걸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고... 이렇게 되면 카가 씨하고 둘.이.서. 나름대로 좋은 시간 보낼 도리밖에 없나... 아 정말 유감이네...."
"!!!!"
"음... 아니지. 뭐든지 삼세판이라고, 한 번 더 물어나 봐야겠다. 이번에는 마야도 고집 꺾어줄지 모르고. 응."
매우 높은 성량으로 천연덕스럽게 혼잣말을 종알대는 망할 놈의 등짝에 식칼을 꽂고 싶은 욕망에 몸부림치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나 오늘은 유독 무방비하게 노출된 목도 덤으로 졸라주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
"─그러니까 마야, 한 번 더 생각해 봐주지 않겠어?"
뽀샤시 필터를 두 배로 깔고 빛을 반짝반짝 뿌리며 생글 웃는 아빠의 발을 전체중을 실어 있는 힘껏 짓밟는 것으로 조금은 속이 후련해졌다.
"여어~마야짱."
과연, 차에 비스듬히 기대서 엄청 무료한 얼굴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던 카가가 이쪽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보인다.
지옥에서 부처 본 죄인의 기분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마야는 사랑하는 님♥의 품에 몸을 던졌다. (= 일방적으로 덥석 끌어안았다)
"카가 씨─! 이런 구제할 길 없는 바보는 길 위에 내버리고 저랑 이 세상의 끝까지 함께 달아나지 않으실래요~!"
"이, 이봐이봐;;;"
식은땀을 삐질대며 허둥대는 폼이 즐거워 미칠 것 같다. 아빠보다 5살이나 연상인 아저씨한테 귀엽다고 깨물어주고 싶다 하면 혼날까나. 꺄아.
그러나 지복의 한순간도 하야토가 총총히 반대편으로 우회해서 조수석의 문을 열어젖힐 때까지였다.
"두 사람 다, 사랑의 도피는 좀 있다 하고 우선 차에 타죠? 시간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할까 보냐! ;;;"
"좀 동요해 봐 인간앗!!"
아무래도 오래 갈 팔자가 못 되는 모양이다.
하여간 올라타고 나서야 마야는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잠깐 스톱."
"응?"
"왜 아주 당연한 듯이 당신이 조수석이고 내가 뒷자리야."
"글쎄... 습관?"
"캬악 재수없어 그 여유만땅한 미소! 하나뿐인 딸의 두근두근청춘의메모리얼★을 방해할 셈이냐! 양보해! 그 자리 나한테 넘겨!"
뒤에서 아빠의 목을 양손으로 거머쥐고 덜걱덜걱 흔들어대는 마야에게 하야토는 조용히 제안했다.
"자아 자, 그러지 말고 진정해. 알아두면 유용한 카가 씨의 약점 그 첫 번째를 가르쳐줄 테니까."
"아빠."
"응?"
"사랑해요."
"응."
"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 하야토 이 자식, 날 팔아넘길 셈이냐!"
"참고로 밝히자면 시리즈로 108번까지 있습니다."
"많아!! ;;;;"
"근데 말이다 하야토."
"네?"
"갑자기 웬일이냐?"
"아하하, 왠지 더블 데이트가 하고 싶은 기분이라서."
"아빠가 빠지면 더 완벽할 텐데 말야!"
"응, 그건 그렇네~"
"당신이 긍정해서 어떡해!!"
"겸사겸사해서, 선물 고르는 데 도움도 좀 받으려고요."
"선물?"
"곧 란돌 생일이잖아요."
"에, 정말."
"...........윽."
"뭘 사줘도 소용없을 성 싶긴 하지만, 올해따라 유난히 빈정이 심해서... 뭔가 안 주면 큰일날 분위기고. 그렇다고 뭐 이거다 싶은 게 있지도 않고 해서요, 명품이라면야 알아서 쟁여놓고 있을 테고. 그런고로 이 자리에서 아이디어 모집합니다─"
".....아빠를 리본으로 잘 포장해서 넘겨주면 되는 거 아냐?"
"─응? 마야, 지금 뭐라고 했니?"
"됐네요. 혼잣말이야! ....하여간 카가 씨도 그 사람도 이 인간의 뭐가 그리 예쁘다고...."
"에?"
"됐다니까! 앞이나 봐!"
"내 참, 이상한 녀석. ...응? 카가 씨, 운전 안 하고 뭐하세요? 카가 씨?"
"....후후후후후.... 훗... 후후후후... 그랬지, 그 왕자님의 생일이었지....!"
".......엣."
"저, 저기 카가 씨?"
"명의는 하야토겠다, 이거 설마 천재일우의 찬스? 아 물론 협력하고 말고. 내가 성~심성의껏 끝.내.주.는. 선물을 고르는데 협조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 후, 후후후후후후후......"
"아~아."
"......카가 씨, 좀 치사해지셨어요.....?"
"시끄러. 스폰서라는 이유 하나로 그놈의 다구리를 전부 이 갈면서 삭혀야 한 내 심정을 니가 아냐!"
"하여튼 정말... 카가 씨 란돌이랑 왜 이렇게 사이가 나쁘신 거예요? 알 만큼 알고 지낸 사이잖아요."
"관둬라 임마. 그건 알아서 뭐할래."
"........"
"........"
".....있잖아 마야."
"왜?"
"─카가 씨가 필사적으로 잊고 싶어하는 창피한 과거를 이야기해 줄게."
"이봐앗! 왜 거기서 화내는 건데 야 하야토!!"
"와─이 어떤 이야기일까─?"
"우왓───────!!!!"
카자미 하야토와 카자미 마야 부녀.
사이가 그럭저럭 좋은 건지 죽도록 나쁜 건지 참으로 미묘한 이 2인조가 의기투합하는 때가 있다면, 바로 카가 죠타로를 이지메할 때.
그러나 순전히 보복심에서 집중포화로 다구리하는 칼 리히터 폰 란돌 왕자님의 철두철미한 악랄함에 비하면 이놈의 문제아 부녀는 오로지 재미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아직은 한참 귀여운 수준이다. (그런가?)
'용케 목숨 건졌군. 한 발만 더 늦었어도 내 손으로 사살해 버리려 했었다.'
병실에서 스쳐지나갈 때 싸늘하게 내뱉은 그 말에는 속속들이 진심이 박혀 있어, 무지막지하게 험난할 앞날을 예감하고 한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 그 예감대로 되었다.
지은 죄질이 하도 고약해 대놓고 불평할 주제도 못 된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뭐, 그것도 팔자려니.
따악 두 가지, 여러 의미로 인간의 틀을 초월해 버린 정신 나간 웬수 같은 아빠와 처음 본 순간부터 운명을 느낀 남자가 하필 아빠와 대략 20년째 눈만 마주쳐도 유정이 폭발하고 용암이 콸콸 흘러넘치는 끈적질척화끈열렬에헷웃흥민망(...)한 관계라는 사실만 제외한다면야.
─그 두 가지가 나머지를 몽땅 깎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스물스물 치밀어오르지만 일단 무시하자.
남자친구가 어쩌고 시험이 어쩌고 학원이 어쩌고 어젯밤 드라마가 어쩌고 다이어트가 어쩌고, 강산이 몇 번 뒤집어져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여고생의 화제로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친구들에게 에워싸여, 질풍노도의 시기에 쌓는 인간관계는 중히 여기라는 주위의 압박을 못 이겨 꼬박꼬박 다니고 있는 학교의 정문을 빠져나왔을 때, 마야는 그를 발견했다.
"안녕, 늦었네?"
까만색의 헐렁한 카디건과 화이트 진, 앙증맞은 동글동글 미니 선글라스와 모자라는 간편한 차림에 말만한 딸을 뒀다는 게 이미 범죄급인 살인적 동안의 겉보기 연령을 가속도 걸어 폭락시키는 맥도널드 미소와 열심히 짤짤짤 흔들어대는 손이 거창무쌍한 타이틀을 수십 몰고 다니는 CF의 살아 있는 신화란 그의 위치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지독한 두통을 유발하는 국지성초대형민폐인간, 그리고 열 여섯 새파란 청춘의 피부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악성 스트레스의 최대 원인이자 전문용어로는 마야의 아버지라고도 하는, 바로 카자미 하야토 그 사람이었다.
마야는 뒤꿈치로 스핀을 걸어 화려한 180도 턴을 시도했다.
그러나 반사신경이 극한의 극한까지 정제된 아빠 쪽이 좀 더 빨랐다.
"어디 가."
"꺄─이거 놔!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못 본 셈 칠래─!"
"그렇다고 얼굴 보자마자 꽁지빠지게 내빼? 해도 해도 너무한다. 나 상처받았어."
"지금 나더러 그 맨들맨들한 면상을 상처입은 얼굴로 여기라고! 그보다 왜 여기 존재하고 있는 거얏!!"
"마야가 보고 싶어서♡"
"뽀샤시 필터 저리 못 치우냐─!! 캬악!"
"...저 있지, 지금 꼭 유괴범 된 기분이거든. 그만 날뛰고 좀 얌전히 있어주지 않을래? 벌건 대낮에 이게 무슨 꼴이야."
"그럼 이 손 놔 인간아!"
"싫네요. 놓으면 내뺄 거잖아."
"말이라고 하냐."
"......너 말야, 아무리 나라도 정말 상처입는다?"
"웃기지 마! 뭘 갖다 긁어도 그놈의 듀랄루민 합금 신경에 흠집 하나 날까 보냐─!"
한 판에 박아낸 닮은 꼴의 소년(일단 보기엔)과 소녀가 백주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엉겨붙어 바둥바둥 승강이를 벌이는 광경은 그 나름대로 제법 흐뭇하고 사랑스러운 정경이었다.
어디까지나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민폐성으로는 좋은 승부가 될 아빠와 딸은 대략 3분쯤 제멋대로 둘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투닥투닥 법석을 떨다 여지껏 멈춰서서 이쪽을 어안이벙벙한 눈길로 바라봐주고 있는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에 가까스로 사회성을 회복하고 수습에 나섰다.
"아─미안해 얘들아! 이 인간은──"
"아하하,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멋대로 마야 빌려서. 난──"
아빠도 딸도 말을 끝까지 맺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한끝 차로 말허리를 분질러먹으며 튀어나온 누군가의 중얼거림은 양측을 단숨에 냉동시키는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마야짱한테 동생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 말을 신호로 눈을 부담스럽게 반짝반짝 빛내며 여고생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일명 귀여운 것엔 사족 못 쓰는 소녀 심리)
"저기저기, 몇 살이야?"
"꺄아─진짜 마야랑 꼭 닮았어!"
"세트 같아! 귀여워─!"
"혹시 쌍둥이니? 쌍둥이구나!"
"둘이 사이 참 좋네─"
"이름이 뭐야?"
"어느 학교 다녀?"
마야에게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꽁꽁 얼어붙은 카자미 하야토라는 근래의 초 레어 영상을 배를 움켜쥐고 마음껏 비웃었겠으나 상황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호라 애재라 통재로다.
그리고 정확히 콤마 2초 후.
허리를 꺾으며 그 자리에 풀썩 무너져 대폭소를 터뜨리는 아빠와 이를 뿌득 갈며 빌어먹을 등짝을 향해 분연히 정의의 응징을 날리는 딸이 있었다던가 없었다던가.
아무래도 좋지만 통행 방해다, 카자미 부녀.
가까스로 상황을 교통정리하고 오해를 푼 건 좋았지만 덤으로 정체까지 들통나버려 - 순전히 아무 생각없이 예의바르게 자기 소개까지 해 버린 하야토의 책임이다 - 그 즉시 눈에 불을 켜고 손에 손에 펜과 노트를 쥐고 덤벼드는 파워풀한 여고생의 공세에 사람좋게 전부 응하려 하는 아빠의 목을 휘어잡고 아무렇게나 작별인사를 내뱉고 한달음에 근처의 풀숲으로 뛰어들었다.
"아빠! 이 인간아,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저기, 아픈데."
"전교생의 절반한테 사인을 해줄 작정이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라!"
"에? 왜 그렇게 많이?"
"......당신, 자기가 일본에서 대체 어떤 위친지 전혀 모르지."
".....?"
기네스북감의 아방철벽을 둘러쓰고 어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빠에게 뭔가를 설명하려는 깜냥은 진작에 포기했다.
"아무튼, 바쁘신 몸이 여긴 뭐하러 행차하셨어?"
"마야 보러 왔다니까."
"숨은 의도를 불엇!"
"숨은 의도고 뭐고... 오늘 아빠랑 데이트해주지 않을,"
"VITO."
".....콤마 1초만에."
"카가 씨라면 또 몰라, 내가 미쳤다고 당신이랑 데이트를 해! 핫! 어림반푼어치도 없네요!"
"정말 싫어?"
"차라리 보자기를 둘러쓰고 코에 젓가락을 꽂고 키질하며 춤을 추겠어."
"......그거 꽤 볼만하겠는걸."
"죽고 잡냐?"
"쳇, 할 수 없네."
웬일로 미련없이 털고 일어난다 싶더니, 하야토는 빙글 돌아서면서 툭 던지듯이 중얼거렸다.
"──모처럼 카가 씨까지 불러왔는데."
"!!!"
"아~아, 카가 씨랑 마야랑 셋이서 놀러가려고 했었는데... 저리 죽어도 싫다고 팔팔 뛰는 걸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고... 이렇게 되면 카가 씨하고 둘.이.서. 나름대로 좋은 시간 보낼 도리밖에 없나... 아 정말 유감이네...."
"!!!!"
"음... 아니지. 뭐든지 삼세판이라고, 한 번 더 물어나 봐야겠다. 이번에는 마야도 고집 꺾어줄지 모르고. 응."
매우 높은 성량으로 천연덕스럽게 혼잣말을 종알대는 망할 놈의 등짝에 식칼을 꽂고 싶은 욕망에 몸부림치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나 오늘은 유독 무방비하게 노출된 목도 덤으로 졸라주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
"─그러니까 마야, 한 번 더 생각해 봐주지 않겠어?"
뽀샤시 필터를 두 배로 깔고 빛을 반짝반짝 뿌리며 생글 웃는 아빠의 발을 전체중을 실어 있는 힘껏 짓밟는 것으로 조금은 속이 후련해졌다.
"여어~마야짱."
과연, 차에 비스듬히 기대서 엄청 무료한 얼굴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던 카가가 이쪽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보인다.
지옥에서 부처 본 죄인의 기분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마야는 사랑하는 님♥의 품에 몸을 던졌다. (= 일방적으로 덥석 끌어안았다)
"카가 씨─! 이런 구제할 길 없는 바보는 길 위에 내버리고 저랑 이 세상의 끝까지 함께 달아나지 않으실래요~!"
"이, 이봐이봐;;;"
식은땀을 삐질대며 허둥대는 폼이 즐거워 미칠 것 같다. 아빠보다 5살이나 연상인 아저씨한테 귀엽다고 깨물어주고 싶다 하면 혼날까나. 꺄아.
그러나 지복의 한순간도 하야토가 총총히 반대편으로 우회해서 조수석의 문을 열어젖힐 때까지였다.
"두 사람 다, 사랑의 도피는 좀 있다 하고 우선 차에 타죠? 시간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할까 보냐! ;;;"
"좀 동요해 봐 인간앗!!"
아무래도 오래 갈 팔자가 못 되는 모양이다.
하여간 올라타고 나서야 마야는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잠깐 스톱."
"응?"
"왜 아주 당연한 듯이 당신이 조수석이고 내가 뒷자리야."
"글쎄... 습관?"
"캬악 재수없어 그 여유만땅한 미소! 하나뿐인 딸의 두근두근청춘의메모리얼★을 방해할 셈이냐! 양보해! 그 자리 나한테 넘겨!"
뒤에서 아빠의 목을 양손으로 거머쥐고 덜걱덜걱 흔들어대는 마야에게 하야토는 조용히 제안했다.
"자아 자, 그러지 말고 진정해. 알아두면 유용한 카가 씨의 약점 그 첫 번째를 가르쳐줄 테니까."
"아빠."
"응?"
"사랑해요."
"응."
"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어이!!! 하야토 이 자식, 날 팔아넘길 셈이냐!"
"참고로 밝히자면 시리즈로 108번까지 있습니다."
"많아!! ;;;;"
"근데 말이다 하야토."
"네?"
"갑자기 웬일이냐?"
"아하하, 왠지 더블 데이트가 하고 싶은 기분이라서."
"아빠가 빠지면 더 완벽할 텐데 말야!"
"응, 그건 그렇네~"
"당신이 긍정해서 어떡해!!"
"겸사겸사해서, 선물 고르는 데 도움도 좀 받으려고요."
"선물?"
"곧 란돌 생일이잖아요."
"에, 정말."
"...........윽."
"뭘 사줘도 소용없을 성 싶긴 하지만, 올해따라 유난히 빈정이 심해서... 뭔가 안 주면 큰일날 분위기고. 그렇다고 뭐 이거다 싶은 게 있지도 않고 해서요, 명품이라면야 알아서 쟁여놓고 있을 테고. 그런고로 이 자리에서 아이디어 모집합니다─"
".....아빠를 리본으로 잘 포장해서 넘겨주면 되는 거 아냐?"
"─응? 마야, 지금 뭐라고 했니?"
"됐네요. 혼잣말이야! ....하여간 카가 씨도 그 사람도 이 인간의 뭐가 그리 예쁘다고...."
"에?"
"됐다니까! 앞이나 봐!"
"내 참, 이상한 녀석. ...응? 카가 씨, 운전 안 하고 뭐하세요? 카가 씨?"
"....후후후후후.... 훗... 후후후후... 그랬지, 그 왕자님의 생일이었지....!"
".......엣."
"저, 저기 카가 씨?"
"명의는 하야토겠다, 이거 설마 천재일우의 찬스? 아 물론 협력하고 말고. 내가 성~심성의껏 끝.내.주.는. 선물을 고르는데 협조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 후, 후후후후후후후......"
"아~아."
"......카가 씨, 좀 치사해지셨어요.....?"
"시끄러. 스폰서라는 이유 하나로 그놈의 다구리를 전부 이 갈면서 삭혀야 한 내 심정을 니가 아냐!"
"하여튼 정말... 카가 씨 란돌이랑 왜 이렇게 사이가 나쁘신 거예요? 알 만큼 알고 지낸 사이잖아요."
"관둬라 임마. 그건 알아서 뭐할래."
"........"
"........"
".....있잖아 마야."
"왜?"
"─카가 씨가 필사적으로 잊고 싶어하는 창피한 과거를 이야기해 줄게."
"이봐앗! 왜 거기서 화내는 건데 야 하야토!!"
"와─이 어떤 이야기일까─?"
"우왓───────!!!!"
카자미 하야토와 카자미 마야 부녀.
사이가 그럭저럭 좋은 건지 죽도록 나쁜 건지 참으로 미묘한 이 2인조가 의기투합하는 때가 있다면, 바로 카가 죠타로를 이지메할 때.
그러나 순전히 보복심에서 집중포화로 다구리하는 칼 리히터 폰 란돌 왕자님의 철두철미한 악랄함에 비하면 이놈의 문제아 부녀는 오로지 재미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아직은 한참 귀여운 수준이다. (그런가?)
'용케 목숨 건졌군. 한 발만 더 늦었어도 내 손으로 사살해 버리려 했었다.'
병실에서 스쳐지나갈 때 싸늘하게 내뱉은 그 말에는 속속들이 진심이 박혀 있어, 무지막지하게 험난할 앞날을 예감하고 한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 그 예감대로 되었다.
지은 죄질이 하도 고약해 대놓고 불평할 주제도 못 된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뭐, 그것도 팔자려니.
딸 엿먹이는 하야토가 너무 재미있고 이지메당하는 카가 씨가 너무 즐겁고 마야짱 쓰기가 너무 앗쌀해서 곤란하다;;; 기이하고 기묘하고 괴상망측한 의사 부모 삼각관계는 여전히 건재함.
카가 씨와 란돌 왕자님은 프라이빗에서는 무지하게 사이가 나쁠 거라고 생각함. 이유야 말할 필요도 없고. 란돌 왕자님은 어딘가의 백마 왕자님이 아니므로 누구 씨 내버리고 달아나서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인간을 결코,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으시다. 카가 씨는 지은 죄가 있어서 비교적 알아서 기는 편.
저 동생 운운 발언은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짓이었음. 이번에 소원 풀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