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의 새 OP ED에 뼛골까지 발렸다.
하지만 남자의 질투에 굴하지 않으련다. 긴히지와는 분야가 다르다고 완전히 다르단 말야 (툴툴툴툴툴툴)
다른 이들이 세츠나를 '아이'로 먼저 인식하고 이후 '동지'로 받아들인 데 비해 큰형님은 세츠나를 처음부터 '동지'로 인식하고 그럼에도 '아이'인 걸로 봤다고 하셨던 분이 누구셨던가. 진짜로 그 말에 뻑 갔었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 그러나 내가 챙기고 아껴줘야 할 <아이>. 이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가 대립항이 아닌 공존항으로 존재했던, 애가 죽어라 냉랭하게 굴어도 뻗대도 노골적으로 귀찮아 해도 결코 꺾이지 않고 꼬꼬마를 애지중지하며 돌봤을 큰형님을 생각하면 테스토스테론아드레날린 수치가 불끈 치솟는다. 그런 가벼운 눈송이 같은 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 23화 마지막 이후의 세츠나가 되었으니, 더더욱.
기실 내 즘생같은 로망 중의 하나는 자청해서 츠나의 가정교사질까지 떠맡는 록형인데 다만 구현하기에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일고여덟 살 때부터 전장에서, 더구나 무려 테러조직 일원으로 진진하게 굴렀던 꼬꼬마가 의무 교육 무시기와는 천만 광년쯤 동떨어진 삶을 살았을 건 불보듯 뻔하지만 그렇다고 설마 완전히 깜깜한 상태로 마이스터즈에 합류하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아니 사실 그러면 안되지; 셀레스티얼 비잉에 귀의한 시기와 베다에게 건담 마이스터로 간택선택된 시기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기준치를 클리어했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고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의 총집결인 건담을 맡길 애를 고르는 과정에서 CB가 좀 심하게 괴상한 조직이기로서니 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을 리는 없는 노릇이다. 미스릴에도 훈련 캠프가 있는데 말이지. 따라서 공용어(영어)와 MS 조종 기술, 수학 물리학 기계공학 등등의 MS 이론, 기타 비밀결사 에이전트에게 필요한 잡다한 지식은 총망라해서 머릿속에 우겨넣고 왔을 것이다. 이퀄 츠나가 가정교사를 용인할 만큼 기쓰고 배워야 할 일은 합류 시점 이후로는 더 이상 없다는 얘기가 된다. 역시 세상 만만치 않다.
하지만 조개처럼 입 다물고 무심 내지 심드렁한 얼굴로 그러나 진지하게 교재와 격투하고 있는 꼬꼬마와 그 옆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며 때때로 이것저것 참견하는 큰형님이란 구도가 죽도록 아까우므로 동인신께서 하사하옵신 부패한 뇌세포를 360도 데굴데굴 굴려본 결과 엑시아와 상관없는 분야에는 털끝만한 관심도 보이지 않는 츠나에게, 남들은 숙제로 낑낑댈 나이에 학교는커녕 손에 본격적으로 피 묻힐 일 예비하고 있는 애가 안쓰러워서 아는 것이 힘이란 말도 있잖아 알아둬서 손해 볼 일은 없대도 두고 봐라 언젠가는 예기치 못한 데서 도움이 된다니까 내기할래? 어쩌고저쩌고 심지어는 스메라기 씨 원조 받아 엑시아로 꼬셔가면서 또래들이 학교에서 배울 과정을 줄줄이 주입하는 록선생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대책없이 얼굴이 풀렸다. 어차피 냅둬도 2기에선 뒤지게 굴려질 텐데 동인녀 망상질에서만이라도 좀 훈훈따땃하면 어떠랴.
오늘도 '성불구와 불감증의 애정에 바보가 붙인 그 이름'(from 비어스 영감탱. 원문 봤더니 성별 명기가 없더라. 번역자아아아아아아!! 애정이라면 무조건 남녀간이냐 이 파시스트 이성애자 같으니!!!) 플라토닉의 길을 충실히 가고 있다. 네놈들이 조낸 금욕적으로 굴어도 행복 운운 말만 들어도 천리만리 밖으로 도망가더라도 발기부전이라 해도 내 꺾일 것 같으냐 흥 쳇 핏 <- 비뚤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쯔우 님의 <잊지 말라 살육자여(忘れるな殺戮者よ)>를 잠시 미뤄두고 몹시 사모하는 쿠즈우(葛生, 사이트 명 thuas sa spéir) 님의 훈훈한 SS를 잽싸게 납치하였다. 배째고 등딸 각오와 문제 되면 싹싹 지워버릴 의사만은 여전히 확고하다.
번역 질에 대한 태클? 1만 2천 년 전부터 안 받습니다.
...and less.
「록온」
「우와앗……!?」
말을 걸자마자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 두 발짝 가량 후퇴한 최연장 마이스터를 세츠나는 미심쩍게 올려다보았다.
「뭐야」
「아니……」
록온은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 반쪽을 가리고, 신음하다시피 한숨을 내뱉었다. 곧 길다란 손가락 틈새로 세츠나를 굽어보고,
「너, 말이다…」
말끝을 흐렸다.
「질문에 대답해」
「…………」
「록온」
다소 강경한 어조로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포기했는지, 완전히 질렸다고 콱 박힌 얼굴로 손을 치웠다. 세츠나를 뚫어져라 주시하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척 지웠지, 방금」
그랬었나. 세츠나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의도적으로 지울 작정은 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물론 내력이 내력인 만큼 일반인에 비하면 다소 특수기술이 발달하긴 했으나 그 점에서는 눈앞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설령 등뒤에서 말을 걸어도, 평상시의 록온이라면 세츠나가 방에 들어온 순간에――혹은 그보다 앞질러――세츠나의 존재를 알아챌 터였고, 이런 과잉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즉, 자신이 굳이 기척을 지우지 않은 이상, 알아채지 못했다면 록온의 과실이다. 후딱 결론을 짓고, 세츠나는 결과만을 고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당신이 넋놓고 있었을 뿐이야」
록온이 눈을 스윽 좁혔다.
언뜻 보아 늘 보는 표표하기 그지없는 태도였으나, 전장에서 실전으로 단련된 세츠나의 예리한 오감은 껍데기 밑에 숨은 본능적인 경계를 필사적으로 제어하려는 노력을 포착했다. 이성이란 이성을 총동원해 <평소대로>를 가장하려 기를 쓰고 있다.
타자가 영역을 침범했을 때, 털을 빳빳이 곤두세우면서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상대를 관찰하는 야생의 맹수처럼.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싸우는 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세츠나가 록온의 입장이었다면 필경 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아니, 알고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묵묵히 시선을 주자, 록온은 혀를 차면서 한숨을 푹푹 쉬는 신기를 구사하고는 시선을 외면했다. 길게 자란 앞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쓸어올리며 한다는 불평이,
「넌 간격이 너무 짧다구」
어쩌고였으므로 세츠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날이면 날마다 개인공간이니 거리니 깔끔히 무시하고 세츠나에게 들러붙어 필요도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남자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당신이 할 말이 아닐 텐데」
생각한 바를 숨김없이 말해주자, 록온의 옆얼굴이 바퀴벌레라도 씹은 듯이 마구 구겨졌다.
「그게 아니라아…」
기실 록온이 하려는 말의 속뜻은 알고 있었다. 제 발로 접근하는 것과 상대편에서 접근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그들과 같은 인간에게는.
허를 찔리면 바로 목을 내놓을 수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그것도, 당신이 늘 하는 일이다)
아아, 그런가. 세츠나는 불현듯 수긍했다. 이건 일종의 <앙갚음>이다.
아마도 세츠나는 무의식 어딘가에서, 록온이 평소 자신을 대할 때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때문에 방금 전 예의 AI도 옆에 없이 혼자서 등을 돌리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를 보았을 때, 최적의 기회가 도래했다 판단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세츠나는 희박하게 웃었다. 걸핏하면 장남 노릇을 하려 드는 남자가 진심으로 난처해 하는 모양은 보기드문 구경거리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불러온 결과임에 한결 만족했다.
아~인지 우~인지 애매모호하게 신음하는――아마 제 부주의를 책망하고 있으리라――록온의 한순간의 허점을 노려,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움찔하며 이쪽을 돌아보고,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는 상대의 뺨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눈이 마주쳤다. 입술에 닿았다.
차츰 침착성을 되찾아가던 록온의 기척이 경련했다.
「나는, 적이 아니야」
세츠나는 분명히 말해주었다. 확고한 의사를 담아서.
「적이 아니야」
당신을 상처입힐 존재가 아니야.
록온은 숨을 훅 들이키고, 크게 뜬 녹색 눈동자를 한 번 깜박였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숨을 토해내며 어깨의 긴장을 벗어던졌다.
뒤이어 떠오른 표정은, 희미한 쓴웃음. 익숙한.
「나도 알아…」
―――세츠나. 상냥하게 이름을 발음하는 호흡이 세츠나의 손끝을 한순간 덥히고, 싸늘히 식었다.
――territory - a distance between you an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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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잡이의 간격과 총잡이의 간격. 총은 지나치게 근접하면 오히려 제 성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죠. 록온은 자기 쪽에서 접근하는 건 괜찮아도 상대가 별안간 거리를 좁히면 당황해서 쩔쩔매지 않을까요. 재미있으니 그 설정으로 오케이.
그나저나 여기 주인장은 록온한테서 한숨만 뽑아내면 다 해결된다고 믿는 건가. 믿는 게 틀림없어 (자문자답)
칼을 쓰는 (근거리형) 세츠나와 스나이퍼인 (장거리형) 록온의 심리적 간격의 차이. 접근해야 비로소 치명타가 되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도, 혹은 거리가 있어서 치명타가 되는 사람. 이 문제만 제대로 파도 글 한 바닥은 족히 나오겠군.
그나저나 슬슬 이 콤비 보기만 해도 귀여워 미치겠는 꼴이 좀 위험한걸...(식은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