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바다를 헤매다가 보배로운 사이트를 또 하나 수확하고 (내가 좀 서핑 운만은 하늘을 찌르게 좋지요 토호호호호) 리린 님이 죽여주게 발리는 물건을 연성하시고 아닌 밤중에 555페스 신규 영상의 테러 - 쿠로미즈가 록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만 재차 확인한 듯한 느낌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 를 당한 기념으로, 금번의 다크호스이자 센스가 좀 지나치게 훈늉한 코다마(コダマ, 사이트명 0-dama) 씨가 뉴타입의 가윤담 테러에 뼛골까지 발리고 그래봤자 오피셜은 세츠마리겠지, 란 생각이고 나발이고 다 후들겨 쫓아버린 후 총알같이 연성했다는(...) 세츠록 전제의 세츠라일을 뚝딱 번역해서 올리는 나님은 촘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네타는 이제 지겹다 임마.
언제나처럼 문제가 되면 싹싹 지워 없앨 예정. 제목은 상큼발랄한 BL삘이거늘 내용은 꽤나 침침하고 숭악하므로 안 그래도 험한 세상 동인만이라도 달콤하길 원하는 심장 약하신 분들은 피해 주십시오.
자, 리린 님, 약조드린 번역 1편 나갑니다... 후후후후후후.
...and less.
일명 '네 염통은 네 염통이 아니니라'(by 리린 님) 세츠나-닐-라일 노선은 정말로 파도 파도 나오는 노다지에 흉악하기는 또 좀 흉악해야 말이죠. 이제 겨우 두 화 봤을 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한겨...
이후의 2편은 나름 18금인 관계로 한 6여 년만의 떡치기(...) 번역이 되겠습니다. 이번에도 심술궂은 암호를 각오하시길. 세츠록세츠는 내게서 너무 많은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
세츠나×「록온」
대책도 구원도 없는 관계입니다. 후편은 18금이니 면역이 없으신 분은 피하세요.
(2화를 보기 전에 썼기 때문에 다소 설정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LOVE SONG (전편)
식당의 자동문이 희미한 전자음과 함께 열리자, 그때까지 애기(愛機)의 사양서에 빽빽하게 늘어선 문자를 일념으로 좇고 있던 세츠나의 시선은 맞은편에 앉은 이안 바스티의 가슴께까지 올라왔다.
「하긴 뭐, 일이 그리 쉽게 풀리겠냐」
그 몸짓을 불만의 표현이라 받아들였던지, 나이 지긋한 치프 메카닉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안경 뒤의 눈은 피로로 쩔어 있었다. 두 개의 태양로를 탑재한 더블오 건담──이 획기적인 기체를 이론상의 스펙으로 완성시키는 일이야말로, 목하 그의 우수한 두뇌를 괴롭히는 최대의 과제이다.
세츠나가 침묵만을 지키고 있노라니, 이안은 짧게 깎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일어났다.
「내일까지라도 좋으니까, 우선은 전부 훑어봐라. 필요한 사항을 다 기입하거든, 그 뭐냐, 밀레이나나 하로한테 송신하고」
「……알았어」
이번에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탁자에 둔 단말의 전원을 끄고 스크린을 닫고는, 방금 막 들어온 인물과 엇갈려 식당을 나갔다.
이안이 정말로 나가는지, 새로이 들어온 남자가 누구인지, 일부러 고개를 돌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보지 않아도, 기척으로 알았다.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을 함께 지내왔다.
록온 스트라토스가 그곳에 있다.
그 사실을 고막으로 감지한 순간부터, 정체 모를 감정이 세츠나의 뱃속을 할퀴었다. 등뒤의 인물이 내는 침착한 발소리. 똑같았다. 그 무렵과.
한없이 명랑하지도 않고, 항시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 인간적인 무수한 갈등을 내면에 품은 채 그는 그래도 웃고 있었다. 세츠나는 그를 숭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이기 때문에 선연히 드러나는 그 위태로움을, 그 연약함을 부정했었더랬다.
그러나, 그의 단단한 신념의 증거──어떠한 절박한 상황에서조차 옅은 입술이 그리는 든든한 미소만은, 뇌리에 아로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 또한, 지금의 세츠나를 형성하고 있다.
『안되잖아, 우유 마셔두지 않으면 자랄 키도 못 자란다구』
탁자 위의 생수병을 발견한 남자가, 당장이라도 그리 핀잔하지는 않을까. 세츠나의 예감과는 달리, 등뒤의 남자는 식당 가장자리의 좁은 통로를 말없이 가로질렀다. 세츠나에 대한 일말의 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스물을 넘기고도 아직 소년의 면영이 남은 세츠나의 붉은 눈동자 속에서 GN 입자의 푸른 빛이 날아올랐다가, 속절없이 사라졌다.
(그래, 나는 제때 대지 못했어)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는, 결코 그가 될 수 없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확인을 흉중에 묻어두고, 세츠나는 이안이 남겨두고 간 단말을 집어 다시금 스크린을 켜들었다.
이 세상의 어떠한 구조물보다도 아름다운, 오로지 전투만을 위한 포름. 싸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모빌 수트. 그 성능을 이끌어내는 무수한 수식.
스크린에 맺히는 영상에 골몰하면서도, 세츠나의 청각은 상대의 동작을 무의식적에 좇고 있었다. 지독한 모순이다. 드물게도 쓴웃음에 가까운 감정(사실 그는, 씁쓸하게 웃는다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방법을 완전히는 익히지 못했다)이 입가로 배어나왔지만, 결국 미소까지는 되지 못하고, 심사가 언짢은 듯이 입술 끝을 비트는 것에 그쳤다.
상실과는 동떨어진 삶이었다. 부모를 제 손으로 죽인 그날 이후, 무언가를 잃는다는 느낌을 오랜 세월 망각했었더랬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모래먼지와 피와 초연으로 뒤범벅된 매일매일을, 세츠나는 필사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방아쇠를 당기며 살았다. 사고를 타인에게 지배당한 소년병들이 사는 세계에는 영광도 좌절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달리고, 단지 숨을 쉬고, 단지 싸운다. 그곳에서는 누구보다도 둔감하고,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그들의 지도자에게 의문을 품지 않는──다시 말해 지극히 동물적인 인간만이 살아남았다.
건담이라는 존재와 운명적으로 해후하고, 마침내는 조직의 일원으로써 받아들여졌을 때, 세츠나는 <소란 이브라힘>이라는 이름을 버렸다. 동시에, 스스로의 생존만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삶의 방식도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 한 번 망각한 감각은 그닥 쉽사리 되찾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근절이라는 목적을 얻은 후로도, 세츠나의 마음은 견고한 벽에 갇혀,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였다.
무언가를 잃기 위해서는 먼저 무언가를 얻어야만 한다. 그 사실을, 스물 하나가 된 세츠나는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상실의 공포가 희미하게 되살아났던 것은, 건담이라는 힘을 얻고, 그 압도적인 힘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고, 그리고, 이룰 수 없음에 절망했을 때였다.
『나는 건담이 될 수 없어』
사막을 정처없이 헤매던 어린 시절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다. 자신은 여전히 무력했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탈의실의 라커를 주먹으로 후려치는 세츠나의 뒷모습을 록온이 잠자코 지켜보던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항상 그랬다.
생각보다는 말수가 많지 않았다. 아니, 나름 이곳저곳에 머리를 들이미는 성질이기는 했다. 다만, 언제 하고 언제 말아야 할지 정확히 가릴 줄 알았다.
세상의 왜곡을 단절할 힘을 원했다. 그래서 건담과 더불어 싸우는 길을 택했다. 정식으로 마이스터가 되었던 열네 살의 그날, 동료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그는 세츠나의 결의를 누구보다도 한 발 앞서 긍정했었다.
그랬다. 그날도 그 남자는 웃고 있었다.
각인이라면 각인이리라. 록온이 그렇게 힘 있는 눈으로 웃어줄 때마다, 세츠나는 조종간을 쥔 자신의 손에 깃든 분명한 힘을 실감했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건담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때도, 세츠나는 정말로 아자디스탄 왕국에서의 미션을 완수했고, 거의 잃을 뻔했던 힘을 다시 한 번 거머쥐었다.
그의 미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부질없이 믿었더랬다. 4년 전의 결전에서 진정한 상실감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까지. 싸우는 의미를 찾아오라며 자신을 배웅하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그를──<록온 스트라토스>를 잃을 때까지는.
딸그랑. 가벼운 물체가 부딪는 소리가 울렸다.
시야 한켠으로 피콕 그린의 제복을 걸친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남자는, 간소한 선내식을 담은 트레이를, 세츠나를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자리에 놓고, 천천히 의자를 당겨 앉았다.
어느 쪽의 시선도 밑을 향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으나, 서로가 기묘한 경계심을 품고 상대를 의식하고 있음은 명백하였다. 그것이 세츠나에게는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어째서 다른 크루들과 있을 때처럼 태연자약하게 행동하지 못해. 어째서 날 의식시키나. 어째서 의식하도록 부채질하지?)
세츠나의 신경을 내리긁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내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반발심을 내심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 또한 결국은 오십보백보, 상대의 도발을 평정심을 갖고 받아넘기지 못하는 스스로가, 무엇보다도 미칠듯이 불쾌했다.
(나를 뒤흔들지 마, 록온──)
이 남자를, <그>와 같은 수정란에서 태어난 존재를, 또다시 <록온 스트라토스>라 부르겠노라 결심한 것은 세츠나 자신이었다. 결단을 후회한 일도 없으려니와, 하물며, 마이스터로서의 그의 능력에 불만이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탁자의 건너편을 흘끗 바라보았다. 남자는 뻔한 메뉴가 다소 지긋지긋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모양 좋은 입술을 열어 식사를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짙은 밤색 머리칼이 제복의 옷깃에 얽혀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떠오르는 하얀 목덜미가 뇌리를 자극했다. 악다문 입술 틈새로 간간이 새어나오는 비명같은 소리가 귓전에 되살아났다.
환영을 떨쳐버리려 되는 대로 단말의 키를 두드렸다. 스크린의 영상이 차례차례로 바뀌고, 마침내는 다채로운 색깔의 섬네일로 뒤덮인 화면에 이르렀다.
「아, 영화다─」
느닷없이 소녀의 명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세츠나는 희미한 놀라움을 품고 돌아보았다. 어느 틈엔가 식당에 나타난 오퍼레이터 밀레이나 바스티가, 흥미진진하게 상반신을 내밀고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영화두 보세요?」
「아니……」
반사적으로 부정의 말을 뱉고 나서야 비로소 확인한 화면에는, 자그마한 섬네일과, 짧은 해설을 동반한 연대도 장르도 뒤죽박죽인 영화 리스트가 떠 있었다. 단말의 본디 주인인 이안 바스티가 작업 중의 피로와 무료함을 달래고자 쓰던 것이리라.
짤막하게 사정을 설명하자, 밀레이나는 어쩐지, 라며 납득한 얼굴로 까닥거렸다.
「어쩐지 저두 본 영화가 많다 했어요. 아, 이것도, 이것도예요」
소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섬네일을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가리켜 보였다. 아버지와 함께 보았다고 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항목을 손끝으로 훑어내려간 밀레이나는, 맨 마지막의 제목에 손을 댄 채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에~또, 이건 무슨 내용이었더라. 분명히 봤지 싶은데……아!」
내용을 기억해냈는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반짝 들었다.
「이 영화, 진짜 멋져요.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손톱만큼의 흥미도 보이는 기미가 없는 세츠나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본래부터 높은 목소리를 흥분으로 한 옥타브 올리고, 소녀는 빠르게 말을 쏟아부었다.
「벌써 한 세기 전의 영화지만요, 풍경도 멋지고 음악도 근사하구, 배우들 연기도 너무 좋아요」
소녀의 이야기는, 서두의 구릉지대의 묘사가 얼마나 로맨틱한지를 역설하는 해설부터 시작해, 어떤 장면에 어떤 음악이 쓰이며 등장인물의 대사가 얼마나 인상적인지에 이르기까지 연연히 이어졌다.
세츠나는 가능한 한 밀레이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으려 살짝 몸을 비틀어 자세를 바꾸었다. 빨리도 식사를 끝낸 건너편의 남자가, 입속으로 쿡쿡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으로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푸른색과 녹색의 중간쯤의 빛깔을 띤 눈동자가, 무척이나 부드러운 빛을 띠고 가늘어졌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얼굴 구기지 마라, 세츠나』
목소리는 단순한 환각에 지나지 않았으나, 자칫하였던들 세츠나는 시야를 절반쯤 가린 소녀를 난폭하게 떠다밀고 그에게 손을 뻗었으리라. 록온. 눈앞의 그가 아닌 남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러나 세츠나가 팔을 뻗기보다 한 발 앞서, 남자는 소스라친 듯 표정을 흐리더니, 트레이를 난폭하게 슈트에 밀어넣고 몸을 홱 돌려 자동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런데 말이죠, 클라이맥스에 가서두 주인공은 전혀 눈치를 못 채지 뭐예요」
남자가 자리를 뜨고, 묘하게 한산해진 식당 안에는 즐겁게 재잘대는 밀레이나의 목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세츠나는 무릎 위에 둔 오른손을 그러쥐었다.
(날 어지럽히지 마)
눈을 내리깔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꺼풀을 재차 열었을 때, 세츠나의 눈은 이미 냉정한 빛을 회복하였다. 몸에 속속들이 밴, 병사로 훈련받은 자 특유의 훈련된 냉철함을 이때만은 감사하고 싶었다.
「계속 그런 식이에요. 보구 있는 이쪽이 답답해서 미치겠다니까요. 뭐 그래서 라스트는 더 감동적이지만요. 아─아, 환생이란 게 정말로 있을까나……」
「환생……」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보내던 밀레이나의 말에 무심코 반응했다. 새삼 흥미가 동하지도 않았으나, 익숙치 않은 단어에 성대가 절로 반응했을 뿐이었다.
「예, 환생 말예요. 다시 태어나두 같은 사람이랑 다시 사랑에 빠지다니, 정말 로맨틱하죠!」
러브스토리로는 최고잖아요, 라며 만족스럽게 덧붙이고, 소녀는 그제야 세츠나의 존재를 깨달은 것처럼 옆자리의 의자에 폴싹 내려앉았다.
「참 신기하지 않으세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몇천 년도 더 옛날에 살았던 사람의 기억이 남아 있게요」
꾸밈없이 마냥 감동하고 있는 밀레이나에게, 세츠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꾸며낸 이야기다」
리인카네이션. 환생이란 개념은 세츠나도 지식으로서 알고 있었다. 생물의 <영혼>은 죽어서도 불멸하며, 때로 별개의 생물이 되어 다시금 태어난다는 미신.
신조차 없는 이 세계에 하물며 <영혼>이 존재하겠는가. 인류가 콜로니에서도 살게 된 이 시대에, 설마 진심으로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는단 말인가.
「에에엣~하지만, 혹시 또 모르구」
「없어」
「그치만요, 우주는 이렇게나 넓은걸요. 시간축까지 고려하면 가능성은 거의 무한이라구요. 그렇담 어디선가는, 진짜진짜 기적적인 확률로 해후하는 운명 같은 만남이 정말 있을지두 모르잖아요」
세츠나의 매정하기까지 한 대답에 어깨를 푹 떨구면서도, 밀레이나는 여전히 포기가 안 되는지 계속해서 종알거렸다.
아마도 소녀라고 해서 진정으로 믿고 있지는 않으리라. 세츠나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만은 빤히 알면서도 도저히 그냥저냥 흘려넘길 수 없는 심경임을, 세츠나는 마치 남의 일처럼 냉정하게 자각했다.
그 남자의 눈이──.
때때로, 그리운 누군가를 보듯이 자신의 뒷모습을 쫓는다.
그럴 때다. 세츠나가 <록온 스트라토스>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그리고 발작적으로 그 남자를 상처입히고 싶어지는 것은.
「설령」
무심결에 말이 나왔다.
「설령 완전히 동일한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클론에 지나지 않아. 그런 게 운명이라면 생명공학이 만들어낸 쥐는 전부 기적이 된다」
「아,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구요……클론도, 유전자를 재조정하고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완벽하게 동일하지는 않잖아요……그러니까, 유전자가 같은 게 아니라, 조금도 닮지 않았는데 기억만은 남아 있구──」
「있을 수 없어」
하나의 수정란에서 태어난 두 사람마저도 이토록 다른데. 무슨 수로 영영 잃어버린 것을 되찾겠는가.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어버린 세츠나에게서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밀레이나는 손으로 치맛자락을 누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떠들어서 죄송해요」
저 그만 일하러 가볼게요. 그렇게 덧붙이고, 소녀는 중력이 낮은 통로에 가냘픈 몸을 둥실 띄워 자리를 떴다.
4년 전과는 다른 수송함은 침묵 속에 가동하고 있었다.
이곳은 이미, 크리스와 리히티와 모레노와……<그>와 더불어 시간을 보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아니었다. 시선을 들어보면, 여전히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식당의 내부조차, 기억 속의 그 함선과는 딴판으로 달라져 있었다.
(알고 있어)
한 번 상실한 것은 결코 되돌아오지 못한다. 차라리 상쾌하기까지 한 속도로 한순간에 스쳐지나갈 뿐, 돌아오는 일은 결코 없다.
(알고 있어. 알면서, 어째서 난 손을 뻗는 거지)
수천 번을 되풀이한 닳고 닳은 의문은, 창백한 인공조명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2008/10/10)
대책도 구원도 없는 관계입니다. 후편은 18금이니 면역이 없으신 분은 피하세요.
(2화를 보기 전에 썼기 때문에 다소 설정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LOVE SONG (전편)
식당의 자동문이 희미한 전자음과 함께 열리자, 그때까지 애기(愛機)의 사양서에 빽빽하게 늘어선 문자를 일념으로 좇고 있던 세츠나의 시선은 맞은편에 앉은 이안 바스티의 가슴께까지 올라왔다.
「하긴 뭐, 일이 그리 쉽게 풀리겠냐」
그 몸짓을 불만의 표현이라 받아들였던지, 나이 지긋한 치프 메카닉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안경 뒤의 눈은 피로로 쩔어 있었다. 두 개의 태양로를 탑재한 더블오 건담──이 획기적인 기체를 이론상의 스펙으로 완성시키는 일이야말로, 목하 그의 우수한 두뇌를 괴롭히는 최대의 과제이다.
세츠나가 침묵만을 지키고 있노라니, 이안은 짧게 깎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일어났다.
「내일까지라도 좋으니까, 우선은 전부 훑어봐라. 필요한 사항을 다 기입하거든, 그 뭐냐, 밀레이나나 하로한테 송신하고」
「……알았어」
이번에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탁자에 둔 단말의 전원을 끄고 스크린을 닫고는, 방금 막 들어온 인물과 엇갈려 식당을 나갔다.
이안이 정말로 나가는지, 새로이 들어온 남자가 누구인지, 일부러 고개를 돌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보지 않아도, 기척으로 알았다.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을 함께 지내왔다.
록온 스트라토스가 그곳에 있다.
그 사실을 고막으로 감지한 순간부터, 정체 모를 감정이 세츠나의 뱃속을 할퀴었다. 등뒤의 인물이 내는 침착한 발소리. 똑같았다. 그 무렵과.
한없이 명랑하지도 않고, 항시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 인간적인 무수한 갈등을 내면에 품은 채 그는 그래도 웃고 있었다. 세츠나는 그를 숭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이기 때문에 선연히 드러나는 그 위태로움을, 그 연약함을 부정했었더랬다.
그러나, 그의 단단한 신념의 증거──어떠한 절박한 상황에서조차 옅은 입술이 그리는 든든한 미소만은, 뇌리에 아로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 또한, 지금의 세츠나를 형성하고 있다.
『안되잖아, 우유 마셔두지 않으면 자랄 키도 못 자란다구』
탁자 위의 생수병을 발견한 남자가, 당장이라도 그리 핀잔하지는 않을까. 세츠나의 예감과는 달리, 등뒤의 남자는 식당 가장자리의 좁은 통로를 말없이 가로질렀다. 세츠나에 대한 일말의 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스물을 넘기고도 아직 소년의 면영이 남은 세츠나의 붉은 눈동자 속에서 GN 입자의 푸른 빛이 날아올랐다가, 속절없이 사라졌다.
(그래, 나는 제때 대지 못했어)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는, 결코 그가 될 수 없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확인을 흉중에 묻어두고, 세츠나는 이안이 남겨두고 간 단말을 집어 다시금 스크린을 켜들었다.
이 세상의 어떠한 구조물보다도 아름다운, 오로지 전투만을 위한 포름. 싸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모빌 수트. 그 성능을 이끌어내는 무수한 수식.
스크린에 맺히는 영상에 골몰하면서도, 세츠나의 청각은 상대의 동작을 무의식적에 좇고 있었다. 지독한 모순이다. 드물게도 쓴웃음에 가까운 감정(사실 그는, 씁쓸하게 웃는다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방법을 완전히는 익히지 못했다)이 입가로 배어나왔지만, 결국 미소까지는 되지 못하고, 심사가 언짢은 듯이 입술 끝을 비트는 것에 그쳤다.
상실과는 동떨어진 삶이었다. 부모를 제 손으로 죽인 그날 이후, 무언가를 잃는다는 느낌을 오랜 세월 망각했었더랬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모래먼지와 피와 초연으로 뒤범벅된 매일매일을, 세츠나는 필사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방아쇠를 당기며 살았다. 사고를 타인에게 지배당한 소년병들이 사는 세계에는 영광도 좌절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달리고, 단지 숨을 쉬고, 단지 싸운다. 그곳에서는 누구보다도 둔감하고,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그들의 지도자에게 의문을 품지 않는──다시 말해 지극히 동물적인 인간만이 살아남았다.
건담이라는 존재와 운명적으로 해후하고, 마침내는 조직의 일원으로써 받아들여졌을 때, 세츠나는 <소란 이브라힘>이라는 이름을 버렸다. 동시에, 스스로의 생존만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삶의 방식도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 한 번 망각한 감각은 그닥 쉽사리 되찾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근절이라는 목적을 얻은 후로도, 세츠나의 마음은 견고한 벽에 갇혀,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였다.
무언가를 잃기 위해서는 먼저 무언가를 얻어야만 한다. 그 사실을, 스물 하나가 된 세츠나는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상실의 공포가 희미하게 되살아났던 것은, 건담이라는 힘을 얻고, 그 압도적인 힘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고, 그리고, 이룰 수 없음에 절망했을 때였다.
『나는 건담이 될 수 없어』
사막을 정처없이 헤매던 어린 시절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다. 자신은 여전히 무력했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탈의실의 라커를 주먹으로 후려치는 세츠나의 뒷모습을 록온이 잠자코 지켜보던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항상 그랬다.
생각보다는 말수가 많지 않았다. 아니, 나름 이곳저곳에 머리를 들이미는 성질이기는 했다. 다만, 언제 하고 언제 말아야 할지 정확히 가릴 줄 알았다.
세상의 왜곡을 단절할 힘을 원했다. 그래서 건담과 더불어 싸우는 길을 택했다. 정식으로 마이스터가 되었던 열네 살의 그날, 동료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그는 세츠나의 결의를 누구보다도 한 발 앞서 긍정했었다.
그랬다. 그날도 그 남자는 웃고 있었다.
각인이라면 각인이리라. 록온이 그렇게 힘 있는 눈으로 웃어줄 때마다, 세츠나는 조종간을 쥔 자신의 손에 깃든 분명한 힘을 실감했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건담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때도, 세츠나는 정말로 아자디스탄 왕국에서의 미션을 완수했고, 거의 잃을 뻔했던 힘을 다시 한 번 거머쥐었다.
그의 미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부질없이 믿었더랬다. 4년 전의 결전에서 진정한 상실감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까지. 싸우는 의미를 찾아오라며 자신을 배웅하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그를──<록온 스트라토스>를 잃을 때까지는.
딸그랑. 가벼운 물체가 부딪는 소리가 울렸다.
시야 한켠으로 피콕 그린의 제복을 걸친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남자는, 간소한 선내식을 담은 트레이를, 세츠나를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자리에 놓고, 천천히 의자를 당겨 앉았다.
어느 쪽의 시선도 밑을 향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으나, 서로가 기묘한 경계심을 품고 상대를 의식하고 있음은 명백하였다. 그것이 세츠나에게는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어째서 다른 크루들과 있을 때처럼 태연자약하게 행동하지 못해. 어째서 날 의식시키나. 어째서 의식하도록 부채질하지?)
세츠나의 신경을 내리긁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내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반발심을 내심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 또한 결국은 오십보백보, 상대의 도발을 평정심을 갖고 받아넘기지 못하는 스스로가, 무엇보다도 미칠듯이 불쾌했다.
(나를 뒤흔들지 마, 록온──)
이 남자를, <그>와 같은 수정란에서 태어난 존재를, 또다시 <록온 스트라토스>라 부르겠노라 결심한 것은 세츠나 자신이었다. 결단을 후회한 일도 없으려니와, 하물며, 마이스터로서의 그의 능력에 불만이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탁자의 건너편을 흘끗 바라보았다. 남자는 뻔한 메뉴가 다소 지긋지긋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모양 좋은 입술을 열어 식사를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짙은 밤색 머리칼이 제복의 옷깃에 얽혀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떠오르는 하얀 목덜미가 뇌리를 자극했다. 악다문 입술 틈새로 간간이 새어나오는 비명같은 소리가 귓전에 되살아났다.
환영을 떨쳐버리려 되는 대로 단말의 키를 두드렸다. 스크린의 영상이 차례차례로 바뀌고, 마침내는 다채로운 색깔의 섬네일로 뒤덮인 화면에 이르렀다.
「아, 영화다─」
느닷없이 소녀의 명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세츠나는 희미한 놀라움을 품고 돌아보았다. 어느 틈엔가 식당에 나타난 오퍼레이터 밀레이나 바스티가, 흥미진진하게 상반신을 내밀고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영화두 보세요?」
「아니……」
반사적으로 부정의 말을 뱉고 나서야 비로소 확인한 화면에는, 자그마한 섬네일과, 짧은 해설을 동반한 연대도 장르도 뒤죽박죽인 영화 리스트가 떠 있었다. 단말의 본디 주인인 이안 바스티가 작업 중의 피로와 무료함을 달래고자 쓰던 것이리라.
짤막하게 사정을 설명하자, 밀레이나는 어쩐지, 라며 납득한 얼굴로 까닥거렸다.
「어쩐지 저두 본 영화가 많다 했어요. 아, 이것도, 이것도예요」
소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섬네일을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가리켜 보였다. 아버지와 함께 보았다고 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항목을 손끝으로 훑어내려간 밀레이나는, 맨 마지막의 제목에 손을 댄 채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에~또, 이건 무슨 내용이었더라. 분명히 봤지 싶은데……아!」
내용을 기억해냈는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반짝 들었다.
「이 영화, 진짜 멋져요.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손톱만큼의 흥미도 보이는 기미가 없는 세츠나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본래부터 높은 목소리를 흥분으로 한 옥타브 올리고, 소녀는 빠르게 말을 쏟아부었다.
「벌써 한 세기 전의 영화지만요, 풍경도 멋지고 음악도 근사하구, 배우들 연기도 너무 좋아요」
소녀의 이야기는, 서두의 구릉지대의 묘사가 얼마나 로맨틱한지를 역설하는 해설부터 시작해, 어떤 장면에 어떤 음악이 쓰이며 등장인물의 대사가 얼마나 인상적인지에 이르기까지 연연히 이어졌다.
세츠나는 가능한 한 밀레이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으려 살짝 몸을 비틀어 자세를 바꾸었다. 빨리도 식사를 끝낸 건너편의 남자가, 입속으로 쿡쿡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으로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푸른색과 녹색의 중간쯤의 빛깔을 띤 눈동자가, 무척이나 부드러운 빛을 띠고 가늘어졌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얼굴 구기지 마라, 세츠나』
목소리는 단순한 환각에 지나지 않았으나, 자칫하였던들 세츠나는 시야를 절반쯤 가린 소녀를 난폭하게 떠다밀고 그에게 손을 뻗었으리라. 록온. 눈앞의 그가 아닌 남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러나 세츠나가 팔을 뻗기보다 한 발 앞서, 남자는 소스라친 듯 표정을 흐리더니, 트레이를 난폭하게 슈트에 밀어넣고 몸을 홱 돌려 자동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런데 말이죠, 클라이맥스에 가서두 주인공은 전혀 눈치를 못 채지 뭐예요」
남자가 자리를 뜨고, 묘하게 한산해진 식당 안에는 즐겁게 재잘대는 밀레이나의 목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세츠나는 무릎 위에 둔 오른손을 그러쥐었다.
(날 어지럽히지 마)
눈을 내리깔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꺼풀을 재차 열었을 때, 세츠나의 눈은 이미 냉정한 빛을 회복하였다. 몸에 속속들이 밴, 병사로 훈련받은 자 특유의 훈련된 냉철함을 이때만은 감사하고 싶었다.
「계속 그런 식이에요. 보구 있는 이쪽이 답답해서 미치겠다니까요. 뭐 그래서 라스트는 더 감동적이지만요. 아─아, 환생이란 게 정말로 있을까나……」
「환생……」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보내던 밀레이나의 말에 무심코 반응했다. 새삼 흥미가 동하지도 않았으나, 익숙치 않은 단어에 성대가 절로 반응했을 뿐이었다.
「예, 환생 말예요. 다시 태어나두 같은 사람이랑 다시 사랑에 빠지다니, 정말 로맨틱하죠!」
러브스토리로는 최고잖아요, 라며 만족스럽게 덧붙이고, 소녀는 그제야 세츠나의 존재를 깨달은 것처럼 옆자리의 의자에 폴싹 내려앉았다.
「참 신기하지 않으세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몇천 년도 더 옛날에 살았던 사람의 기억이 남아 있게요」
꾸밈없이 마냥 감동하고 있는 밀레이나에게, 세츠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꾸며낸 이야기다」
리인카네이션. 환생이란 개념은 세츠나도 지식으로서 알고 있었다. 생물의 <영혼>은 죽어서도 불멸하며, 때로 별개의 생물이 되어 다시금 태어난다는 미신.
신조차 없는 이 세계에 하물며 <영혼>이 존재하겠는가. 인류가 콜로니에서도 살게 된 이 시대에, 설마 진심으로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는단 말인가.
「에에엣~하지만, 혹시 또 모르구」
「없어」
「그치만요, 우주는 이렇게나 넓은걸요. 시간축까지 고려하면 가능성은 거의 무한이라구요. 그렇담 어디선가는, 진짜진짜 기적적인 확률로 해후하는 운명 같은 만남이 정말 있을지두 모르잖아요」
세츠나의 매정하기까지 한 대답에 어깨를 푹 떨구면서도, 밀레이나는 여전히 포기가 안 되는지 계속해서 종알거렸다.
아마도 소녀라고 해서 진정으로 믿고 있지는 않으리라. 세츠나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만은 빤히 알면서도 도저히 그냥저냥 흘려넘길 수 없는 심경임을, 세츠나는 마치 남의 일처럼 냉정하게 자각했다.
그 남자의 눈이──.
때때로, 그리운 누군가를 보듯이 자신의 뒷모습을 쫓는다.
그럴 때다. 세츠나가 <록온 스트라토스>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그리고 발작적으로 그 남자를 상처입히고 싶어지는 것은.
「설령」
무심결에 말이 나왔다.
「설령 완전히 동일한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클론에 지나지 않아. 그런 게 운명이라면 생명공학이 만들어낸 쥐는 전부 기적이 된다」
「아,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구요……클론도, 유전자를 재조정하고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완벽하게 동일하지는 않잖아요……그러니까, 유전자가 같은 게 아니라, 조금도 닮지 않았는데 기억만은 남아 있구──」
「있을 수 없어」
하나의 수정란에서 태어난 두 사람마저도 이토록 다른데. 무슨 수로 영영 잃어버린 것을 되찾겠는가.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어버린 세츠나에게서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밀레이나는 손으로 치맛자락을 누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떠들어서 죄송해요」
저 그만 일하러 가볼게요. 그렇게 덧붙이고, 소녀는 중력이 낮은 통로에 가냘픈 몸을 둥실 띄워 자리를 떴다.
4년 전과는 다른 수송함은 침묵 속에 가동하고 있었다.
이곳은 이미, 크리스와 리히티와 모레노와……<그>와 더불어 시간을 보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아니었다. 시선을 들어보면, 여전히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식당의 내부조차, 기억 속의 그 함선과는 딴판으로 달라져 있었다.
(알고 있어)
한 번 상실한 것은 결코 되돌아오지 못한다. 차라리 상쾌하기까지 한 속도로 한순간에 스쳐지나갈 뿐, 돌아오는 일은 결코 없다.
(알고 있어. 알면서, 어째서 난 손을 뻗는 거지)
수천 번을 되풀이한 닳고 닳은 의문은, 창백한 인공조명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2008/10/10)
일명 '네 염통은 네 염통이 아니니라'(by 리린 님) 세츠나-닐-라일 노선은 정말로 파도 파도 나오는 노다지에 흉악하기는 또 좀 흉악해야 말이죠. 이제 겨우 두 화 봤을 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한겨...
이후의 2편은 나름 18금인 관계로 한 6여 년만의 떡치기(...) 번역이 되겠습니다. 이번에도 심술궂은 암호를 각오하시길. 세츠록세츠는 내게서 너무 많은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