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세츠나의 전방위지각영역 돌입 연출이 너무나도 제로의 영역스러운 데서 시작되었다.
목소리는 들리지만 의사소통은 되지 않는 것도 제로스럽다 → 웃 이러다 막판에 가서 8편에서마냥 누구누구 씨와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대화씬 난무하면 어떡하죠 → 헉 혹시 록횽이 환영으로 출연한다던가!? ...뭐 여기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건담 내지는 선라이즈스러운 범위의 잡담이었으나(그런가? ;;) 앵스트 신의 축복을 받고 나신 L모 님이 엉뚱한 방향에 불을 지르고 앵스트의 별 밑에서 태어난 S가 얼씨구나 편승하여 언젠가 오리지널에서 써먹겠다 벼르고 있던 장면을 추가함으로써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으니...
이하는 '본편이-저지르기-전에-터뜨려보자' 막한 망상입니다. 머리에 얼핏 떠오른 이미지를 문재와는 날 때부터 담 쌓은 인간이 즉석에서 두다다다 찍어내려간 SS이므로 질 같은 건 애초부터 보장 못합니다. 어쩌다 일이 저렇게 됐는지는 며느리도 모르니 묻지 마세요. 자비로우신 분은 열어보시길. 하지만 항의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제목은 관리인 혼자 세츠록이라고 줄창 우겨대는 RURUTIA의 노래에서.
less..
이것이 마지막이다. 세츠나는 예감했다.
피탄당해 너덜너덜해진 태양로에서 쥐어짜낼 수 있는 트랜잠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세츠나는 조종간을 비틀어 연홍색 섬광을 피했다. 전투가 개시된 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얼마나 싸웠는지는 몰랐다. 시간과 공간은 한데 뒤엉켜 의미를 잃었다. 톨레미는? 세라비는? 아리오스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체력의 한계에 달한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지만 그럼에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 무언가를 처절하게 외쳐댔던 것 같기도 했다. 무의미한 일이었다.
서로 물러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뿐이었다.
트랜잠의 가동 한계시간까지 앞으로 3초. 코드명에 걸맞게 빗발처럼 퍼부어대는 초정밀 전방위 사격을 일일이 피해낼 생각은 애초에 버렸다. 트윈 드라이브의 한쪽이 파괴되고, 팔이 끊어지고, 다리가 부서졌고, ──그러나 빔이 콕핏을 직격하기보다 한순간 앞서 더블오가 사정거리에 뛰어들었다.
콤마 몇 초의 차이가 승부의 향방을 갈랐고, 더블오는 암록색의 지천사───케루딤의 한가운데에 세븐즈 소드 최후의 검을 내리꽂았다.
비명이 들렸던가? 어쩌면 자신의 비명일지도 모른다고, 세츠나는 머릿속 한구석에서 냉정하게 생각했다. 폭발의 눈부신 섬광과, 녹색으로 빛나는 GN 입자의 홍수가 더블오를 덮쳤다.
그리고 정적, 정적, 정적───────.
"……츠나, 어이, 세츠나?"
세츠나 F. 세이에이는 소스라치며 깨어났고, ──제 눈을 의심했다.
희미한 불빛. 채 자라지 못한 작은 손. 두터운 강화 유리. 유리벽 너머의 하얗고 푸른 기체는, 틀림없는 애기(愛機) 엑시아였다. 영문을 모른 채 옆을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투명하도록 하얀 얼굴과 색채에 대한 어휘가 풍부하지 않은 세츠나로서는 녹색이라고밖에 표현 못할 독특한 눈동자에 의아한 빛을 품은 <그>가, 그곳에 있었다.
"……록온, 스트라토스……."
세츠나는 신음했다.
기억해냈다.
프톨레마이오스에 처음 오른 후, 세츠나의 적합성을 의심한 티에리아 아데가 도전장을 던진 날이었다.
"뭐, 뭐야 왜 그래, 나 록온 스트라토스 맞지만! 혹시 어디 아파? 안색이 백짓장인데, 설마 우주 멀미!?"
눈에 뜨이게 당황한 록온이 녹색 눈을 코앞까지 불쑥 들이밀어, 세츠나는 움찔하며 반 발짝 물러났다. 아이의 지독한 접촉혐오증마저 잊었는지 이마를 짚어본다 어쩐다 부산을 떨며 정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미스 스메라기에게 말해서 예정을 변경해야겠다는 둥 혼자서 결론까지 잘도 내달리고 있는 남자의 손을, 한숨을 쉬며 밀어냈다.
"──아무것도,"
세츠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부지불식간에 밀려난 록온은 미심쩍은 얼굴로 세츠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정말이다."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눈길이 살짝 따가웠지만, 세츠나는 끝까지 무덤덤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꺾인 쪽은 늘 그렇듯, 록온이었다. 머리를 긁적이고, 별 수 없다는 투로 혀를 차고, ──이윽고 가늘어진 눈이 언제나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세츠나의 새까만 머리칼에 내려앉은 크고 모양 좋은 손이,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가만가만 다독였다.
"괜찮아."
남자는 말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세츠나.
목소리는 따뜻했고, 서글프도록 다정했다.
세츠나 F. 세이에이는 눈을 떴다.
더블오는 완전히 침묵했다. 세츠나는 지칠대로 지친 머리를 들어 처참하게 부서진 콕핏 밖을 보았다.
눈앞에는 광활하고 무자비한 우주와, 본디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암록색 기체의 잔해만이 펼쳐져 있었다.
갈기갈기 찢겨진 콕핏, 그리고────.
발작적인 웃음소리에 가까운 흐느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세츠나는 손톱이 노말 수트를 찢고 손바닥에 박히도록 그러쥔 양주먹에 머리를 묻었다.
신은 없었다.
환영은, 환영일 뿐이었다.
잘못했습니다. (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