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숨 돌린 김에 한숨에 내달렸다. Last but not least, 주유전 해설 Part 8 나갑니다.
그간 정말 고생 많았어요 미주랑. 내가 당신을 복복 긁어대도 이건 다 사랑... 어험어험.
제 18장. 천하이분계의 뒤편(天下二分の策の裏側)
어휴 마초 냄새 군인 냄새.
주유의 천하이분계를 후세의 우리가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전략적으로 온갖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형주에 있는 유비를 뛰어넘어서 촉을 공략한다는 것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데 무려 관우와 장비를 주유가 부하로 부리겠다지 않습니까. 이게 가능한 얘기입니까? 더구나 주유가 없는 동안 오는 대체 누가 방어하고? 이렇게 보자니 천하이분의 계책은 단순히 탁상공론에 불과한 허튼 소리 같습니다.
허나 이미 여러 번 떠들었다시피 주유는 정확한 상황 분석을 무기로 하는 매우 정석적인 타입의 전략가였어요. 멀리 갈 필요 없이 적벽대전에서도 그랬죠. 강대한 조조군을 불과 수만의 병사로 상대하겠다니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미친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유는 그 틈새에서 틀림없는 승산을 찾아냈고, 찾아냈기 때문에 결사항전을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천하이분계에 과연 승산이 있었을까요?
우선 천하이분계의 구체적 방안을 논하고 있는 주유전의 기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실은 주유의 첫 번째 주장은 유비의 형주 영유를 인정치 말라는 것이었지요. 다시 말해, 지난 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주유가 천하이분계를 제시한 단계에서 아직 유비는 독립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유비는 효웅(梟雄)이고, 남의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먼 앞날을 내다보아 유비를 오에 붙잡아 두고, 궁전을 지어주며 미녀와 호사품을 바쳐 정중히 모시고, 관우와 장비 등 휘하의 장수는 각자 별개의 토지를 주어 장수로서 쓰면, 천하통일의 패업이 멀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유비에게 기반을 주면 못에 얌전히 머무르는 대신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를 터입니다.>
일단 위의 진언을 보십시오. 주유는 유비를 효웅, 즉 야심가로 평가하면서도 오에 얌전히 머무르게 하자는 얼핏 모순에 가득 찬 말을 하고 있어요. 효웅이라면 대접 좀 잘 받는다고 순순히 오에 머무를 턱이 없습니다. 주유가 그런 간단한 사실을 꿰뚫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이고, 그렇다면 혹시 손권에게는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할 좀 더 신랄한 상황을 상정하지는 않았을까요?
여기서 손오의 최대의 약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손오의 최대 약점은 바로 손일문 자체였어요. 가문이 좋지 않아도 정도가 있었죠. 손일문의 형편없는 문벌이 손오에게 갖은 제약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주유가 아닙니다. 전쟁에서 승리해 천하이분을 실현한다 하더라도 정당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손일문은 어마어마한 장애물로 남았을 터입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뭘까요? 주유는 환부에 직접적으로 메스를 들이대고자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손책이 헌제 보호를 목적으로 허도 습격을 계획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서술했습니다. 허나 지금의 손권은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도 없이 수중에 황제에게 직접 조조 주살의 칙서를 받기까지 한 중산정왕의 후손이라는 인물을 두고 있었어요. 그렇습니다. 유비입니다. 헌제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조조의 꼭두각시로 전락한지 오래였어요. 언젠가 조조는 한을 멸하겠지요. 그럴 때 이러쿵저러쿵 말마디 들을 필요 없이 반 조조의 기수로 설 수 있는 인물이 유비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조는 형주를 제압한 후에 유비 한 사람을 사로잡으려 기를 썼고, 훗날의 손권은 치욕을 무릅쓰고 위에 종신해서 관위를 얻고 나서야 황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럼, 손오에게 최선의 한 수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주유가 내놓은 천하이분계의 원점이라 필자는 짐작합니다. 다시 말해 유비를 우두머리로 내세우라는 것이었지요. 유비를 오에 붙잡아 두라는 말은 에두른 표현이었어요. 주유는 유비가 효웅이고 고분고분하게 남 하는 말이나 듣고 있을 인물이 아니라 진언하고도 그를 오에 붙잡아두려 했습니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경위를 보건대 누가 보아도 유비의 충실한 부하인 관우와 장비마저도 <자신이 부릴 수 있다> 합니다. 만일 손권이 유비를 오에 연금이라도 하는 날에는 관우 장비가 분노해서 들고 일어나면 일어났지 이쪽 말을 따를 턱이 없습니다. 허나 연금이 아니라 (황제가 기거할) 궁전을 짓고, (황제에게 어울리는) 미녀와 호사품을 진상하며 모시는 거라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주유가 언급한 <먼 앞날>은 조조 일가가 한을 멸했을 때를 가리키는 것이었겠지요.
주유는 아마도 순수히 전략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천하통일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주유전이 언급하는 천하이분계의 구체적 안을 계속 살펴보지요.
<손유 님과 더불어 촉을 치는 계획을 승인하여 주십시오. 촉과 장로(한중)을 병합하고, 손유 님이 촉에 머무르며 굳건히 지키시는 동안 저는 손권 님과 함께 양양을 거점으로 조조를 몰아붙이고, 동시에 마초와 동맹을 맺으면 북방제패마저도 꿈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는, 주유가 천하이분계를 실행에 옮긴답시고 실은 촉땅을 쥐고 독립할 작정이 아니었겠느냐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위의 진언을 보면 촉에 머무르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손씨 집안의 손유일 예정이었죠. 손권이 같은 의혹을 품을 가능성을 주유도 예상했던 셈이고, 때문에 손유를 대장으로 내세웠습니다. 최대공격거점을 양양으로 잡은 것 또한, 순수한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가장 성공률이 높은 작전이었죠.
주유의 촉 정벌 계획에 현실성이 있기는 했는지의 여부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죠. 허나 여기에는 단순명쾌한 답이 존재합니다. 현실성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비가 실제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한 발 더 나가자면, 주유는 유비보다도 한결 신속하게 촉을 탈취할 자신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촉 제압 전략을 세운 사람은 방통이었는데, 그가 제시한 세 가지 계책 중에서 유비는 중책(中策)을 선택했습니다. 그럼 최선책은 뭐였을까요? <정예를 선발하여 성도(成都)로 직행해 급습을 가하는 것>, 즉 <본거점 직격>이었습니다. 성도의 방어태세는 완전하다고는 못할 상태였으니까요. 주유가 이를 놓칠 리가 없는 이상, 주유 역시 촉 제압 전략으로 비슷한 계책을 취했을 터입니다. 단기간에 성도를 제압할 승산이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럼 주유가 촉을 병합하는 사이 오는 누가 방어하는지의 문제가 남았군요. 이 또한 역사가 어느 정도의 답을 제시해 줍니다. 양주/형주의 장강유역을 손오가 이미 점거한 만큼 방어선 돌파는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격에 나서지 않고 방어에만 전념하면 주유가 없어도 손오를 굳게 지킬 수 있죠. 여몽이 남아 있으면 거점 방어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터입니다. 나아가,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단기간 내에 촉을 제압할 예정이었다면 양주/형주 방어에 무게를 두어야 할 필요도 그닥 크지 않습니다. 주유는 촉을 제압하면 형주로 돌아와 양양을 공격할 작정이었고요. 다시 말해 천하이분계를 실현할 다시 없을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주) 주유의 북방제압전략은 촉에서부터 밀고 올라가는 방안과 양주/합비를 점령하고 중원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채택하는 대신 포인트를 양양에 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유의 지리/상황분석력의 산물이겠지요. 촉의 잔도(桟道)를 통과해 북방으로 나아가거나 양주에서 밀고 올라가 합비/수춘을 점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합비에서 양주를 공격하는 것도, 옹주(雍州)에서 촉을 침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다시 말해 방어지형인 셈입니다. 손권은 물론 제갈량도 여기서 실패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와는 달리 양양 방면은 관우가 거의 성공한 사례도 존재하거니와, 손오에도 양양성을 점령한 경력이 있는 무장이 있었죠. 공략한다면 여기가 제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주유의 천하이분계는 손오의 천하통일 달성에 있어 순수한 군사전략적 견지에서는 더 이상을 바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계책이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다만 이게 천하이분계의 진상이라면, 손권이 주유의 제안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건 지극히 당연합니다. 천하통일은 부차적 문제요 손권을 황제로 옹립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노숙과, 천하통일을 목표하여 명목상의 톱으로 유비를 내세우기를 주장하는 주유. 손권이 어느 쪽의 손을 들겠습니까? 그 다음의 상황을 보면 일목요연합니다. 여기서 군인 주유와 정치가 노숙의 정치감각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요.
허나 이미 여러 번 떠들었다시피 주유는 정확한 상황 분석을 무기로 하는 매우 정석적인 타입의 전략가였어요. 멀리 갈 필요 없이 적벽대전에서도 그랬죠. 강대한 조조군을 불과 수만의 병사로 상대하겠다니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미친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유는 그 틈새에서 틀림없는 승산을 찾아냈고, 찾아냈기 때문에 결사항전을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천하이분계에 과연 승산이 있었을까요?
우선 천하이분계의 구체적 방안을 논하고 있는 주유전의 기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실은 주유의 첫 번째 주장은 유비의 형주 영유를 인정치 말라는 것이었지요. 다시 말해, 지난 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주유가 천하이분계를 제시한 단계에서 아직 유비는 독립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유비는 효웅(梟雄)이고, 남의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먼 앞날을 내다보아 유비를 오에 붙잡아 두고, 궁전을 지어주며 미녀와 호사품을 바쳐 정중히 모시고, 관우와 장비 등 휘하의 장수는 각자 별개의 토지를 주어 장수로서 쓰면, 천하통일의 패업이 멀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유비에게 기반을 주면 못에 얌전히 머무르는 대신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를 터입니다.>
일단 위의 진언을 보십시오. 주유는 유비를 효웅, 즉 야심가로 평가하면서도 오에 얌전히 머무르게 하자는 얼핏 모순에 가득 찬 말을 하고 있어요. 효웅이라면 대접 좀 잘 받는다고 순순히 오에 머무를 턱이 없습니다. 주유가 그런 간단한 사실을 꿰뚫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이고, 그렇다면 혹시 손권에게는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할 좀 더 신랄한 상황을 상정하지는 않았을까요?
여기서 손오의 최대의 약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손오의 최대 약점은 바로 손일문 자체였어요. 가문이 좋지 않아도 정도가 있었죠. 손일문의 형편없는 문벌이 손오에게 갖은 제약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주유가 아닙니다. 전쟁에서 승리해 천하이분을 실현한다 하더라도 정당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손일문은 어마어마한 장애물로 남았을 터입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뭘까요? 주유는 환부에 직접적으로 메스를 들이대고자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손책이 헌제 보호를 목적으로 허도 습격을 계획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서술했습니다. 허나 지금의 손권은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도 없이 수중에 황제에게 직접 조조 주살의 칙서를 받기까지 한 중산정왕의 후손이라는 인물을 두고 있었어요. 그렇습니다. 유비입니다. 헌제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조조의 꼭두각시로 전락한지 오래였어요. 언젠가 조조는 한을 멸하겠지요. 그럴 때 이러쿵저러쿵 말마디 들을 필요 없이 반 조조의 기수로 설 수 있는 인물이 유비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조는 형주를 제압한 후에 유비 한 사람을 사로잡으려 기를 썼고, 훗날의 손권은 치욕을 무릅쓰고 위에 종신해서 관위를 얻고 나서야 황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럼, 손오에게 최선의 한 수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주유가 내놓은 천하이분계의 원점이라 필자는 짐작합니다. 다시 말해 유비를 우두머리로 내세우라는 것이었지요. 유비를 오에 붙잡아 두라는 말은 에두른 표현이었어요. 주유는 유비가 효웅이고 고분고분하게 남 하는 말이나 듣고 있을 인물이 아니라 진언하고도 그를 오에 붙잡아두려 했습니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경위를 보건대 누가 보아도 유비의 충실한 부하인 관우와 장비마저도 <자신이 부릴 수 있다> 합니다. 만일 손권이 유비를 오에 연금이라도 하는 날에는 관우 장비가 분노해서 들고 일어나면 일어났지 이쪽 말을 따를 턱이 없습니다. 허나 연금이 아니라 (황제가 기거할) 궁전을 짓고, (황제에게 어울리는) 미녀와 호사품을 진상하며 모시는 거라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주유가 언급한 <먼 앞날>은 조조 일가가 한을 멸했을 때를 가리키는 것이었겠지요.
주유는 아마도 순수히 전략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천하통일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주유전이 언급하는 천하이분계의 구체적 안을 계속 살펴보지요.
<손유 님과 더불어 촉을 치는 계획을 승인하여 주십시오. 촉과 장로(한중)을 병합하고, 손유 님이 촉에 머무르며 굳건히 지키시는 동안 저는 손권 님과 함께 양양을 거점으로 조조를 몰아붙이고, 동시에 마초와 동맹을 맺으면 북방제패마저도 꿈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는, 주유가 천하이분계를 실행에 옮긴답시고 실은 촉땅을 쥐고 독립할 작정이 아니었겠느냐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위의 진언을 보면 촉에 머무르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손씨 집안의 손유일 예정이었죠. 손권이 같은 의혹을 품을 가능성을 주유도 예상했던 셈이고, 때문에 손유를 대장으로 내세웠습니다. 최대공격거점을 양양으로 잡은 것 또한, 순수한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가장 성공률이 높은 작전이었죠.
주유의 촉 정벌 계획에 현실성이 있기는 했는지의 여부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죠. 허나 여기에는 단순명쾌한 답이 존재합니다. 현실성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비가 실제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한 발 더 나가자면, 주유는 유비보다도 한결 신속하게 촉을 탈취할 자신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촉 제압 전략을 세운 사람은 방통이었는데, 그가 제시한 세 가지 계책 중에서 유비는 중책(中策)을 선택했습니다. 그럼 최선책은 뭐였을까요? <정예를 선발하여 성도(成都)로 직행해 급습을 가하는 것>, 즉 <본거점 직격>이었습니다. 성도의 방어태세는 완전하다고는 못할 상태였으니까요. 주유가 이를 놓칠 리가 없는 이상, 주유 역시 촉 제압 전략으로 비슷한 계책을 취했을 터입니다. 단기간에 성도를 제압할 승산이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럼 주유가 촉을 병합하는 사이 오는 누가 방어하는지의 문제가 남았군요. 이 또한 역사가 어느 정도의 답을 제시해 줍니다. 양주/형주의 장강유역을 손오가 이미 점거한 만큼 방어선 돌파는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격에 나서지 않고 방어에만 전념하면 주유가 없어도 손오를 굳게 지킬 수 있죠. 여몽이 남아 있으면 거점 방어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터입니다. 나아가,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단기간 내에 촉을 제압할 예정이었다면 양주/형주 방어에 무게를 두어야 할 필요도 그닥 크지 않습니다. 주유는 촉을 제압하면 형주로 돌아와 양양을 공격할 작정이었고요. 다시 말해 천하이분계를 실현할 다시 없을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주) 주유의 북방제압전략은 촉에서부터 밀고 올라가는 방안과 양주/합비를 점령하고 중원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채택하는 대신 포인트를 양양에 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유의 지리/상황분석력의 산물이겠지요. 촉의 잔도(桟道)를 통과해 북방으로 나아가거나 양주에서 밀고 올라가 합비/수춘을 점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합비에서 양주를 공격하는 것도, 옹주(雍州)에서 촉을 침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다시 말해 방어지형인 셈입니다. 손권은 물론 제갈량도 여기서 실패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와는 달리 양양 방면은 관우가 거의 성공한 사례도 존재하거니와, 손오에도 양양성을 점령한 경력이 있는 무장이 있었죠. 공략한다면 여기가 제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주유의 천하이분계는 손오의 천하통일 달성에 있어 순수한 군사전략적 견지에서는 더 이상을 바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계책이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다만 이게 천하이분계의 진상이라면, 손권이 주유의 제안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건 지극히 당연합니다. 천하통일은 부차적 문제요 손권을 황제로 옹립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노숙과, 천하통일을 목표하여 명목상의 톱으로 유비를 내세우기를 주장하는 주유. 손권이 어느 쪽의 손을 들겠습니까? 그 다음의 상황을 보면 일목요연합니다. 여기서 군인 주유와 정치가 노숙의 정치감각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요.
어휴 마초 냄새 군인 냄새.
제 19장. 파구에서 죽다(巴丘に死す)
'주유에게 있어 최상의 군주는 젊은 날을 함께 한 친우였습니다. 주유의 천하이분계는 손책에게서 비로소 최대한의 효과를 꽃피웁니다.'
지난 몇 년 결국 저 한 구절을 위해 달려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유가 죽을 때까지 손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 남자의 순정은 짜고 맵고 드럽게 독합니다. 씨바 이젠 숫제 눈물이 나려 그러네.
그리고 당신이 유책 지지자라는 건 뼈가 저리게 잘 알았으니 고만 좀 해!!! 쪽팔려 죽겠어!!!
주유전에 따르면, 주유는 손권에게 촉 병합 계획의 승인을 얻어 원정 준비에 나섰으나 도중에 파구에서 서거했다고 합니다. 주유의 임지는 강릉이므로, 파구에서 세상을 떴다는 것은 강릉에 돌아가 군사를 정비하기 전, 다시 말해 강릉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병사했다는 뜻이 됩니다. 즉 촉 원정은 계획 단계에서 꺾이고 말았습니다.
주유의 천하이분계는 유비를 오에 잡아두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으므로 손권이 유비의 형주 영유를 승인해서야 아무런 전략적 의미가 없어요. 삼척동자라도 알 일입니다. 따라서 손권은 주유 사후에 형주 양도를 결정했을지도 모릅니다.
주유의 사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분분합니다. (【4Zhuges'traces】의 주유 암살설 참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되,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교묘한 함정이라도 테러리즘에 준하는 범죄라면 언젠가는 기록으로 남아 세상에 밝혀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유암살설을 주장하는 문헌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그에 대해 필자는 말을 아끼고자 합니다. 주유는 병사했습니다. 강릉전에서 부상을 입은 이래 죽음이 한 발 한 발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실감한 주유는, 손오의 천하통일을 위해 순수한 전략적 관점에서 최선으로 여겨지는 계책을 한시라도 빨리 실행하고자 했던 거지요. 필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주유가 강릉으로 향하는 도중 발병하여 목숨이 위태로워진 시점에서 천하이분계는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천하이분계의 구체적 안은 주유의 머릿속에 존재했어요. 제 3자가 대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후임은 하나뿐입니다. 오에서 천하삼분의 계책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나이 노숙 외엔 없었습니다. 정세는 변했습니다.
주유는 후임으로 노숙을 천거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향년 36세. 손권은 주유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자 상복을 걸치고 애곡했으며, 오로 돌아온 주유의 관을 무호(撫湖)까지 마중나와 눈물을 지으며 <주유는 왕을 보좌할 재능을 타고났으나 뜻하게 않게 일찍 세상을 떴다. 나는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하고 탄식했다 합니다. 후일 제위에 올랐을 때에도 주유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감회를 토로했지요.
주유전 고찰을 모두 끝냈으니 여기서 감상 한 마디.
주유는 평생을 무관(武官)으로 살다 갔습니다. 의도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길 피한 감마저 있죠. 그는 순수한 군사전략가였어요. 정치적 술수나 외교와는 맞지도 않았고, 주유 자신 관여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국을 읽고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해 전략을 짜내는 것이야말로 주유가 가진 재능이었죠. 다만 주유를 거느리는 입장으로서는, 마찬가지로 군사적 재질을 타고났으면서 주유를 보완해주는 타입이 제일이었습니다. 사령관으로서 주유의 재능이 군주를 웃도는 상황은 주유로서도 그닥 반길 만한 일이 못 되었습니다. 군사행동을 통해 손일문을 보좌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건대, 아마도 주유는 스스로 톱에 설 마음은 없었던 게지요. 허나 만에 하나 주유가 요절하지 않고 천하이분계를 실현했다 하더라도……종국에는 육손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주유에게 있어 최상의 군주는 젊은 날을 함께 한 친우였습니다. 주유의 천하이분계는 손책에게서 비로소 최대한의 효과를 꽃피웁니다. 수세에 능하고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손권은 천하삼분계에 적합한 군주였지요. 그리고 손권의 참모로서는 외교적/정치적 자질이 뛰어난 노숙이나 수세에 강한 군사사령관 육손이 딱이었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주유는 물러날 때가 되어서 물러난 것 같기까지 합니다. 주유가 촉 원정군을 일으켰더라면……낙현(雒県)에서 화살을 맞고 낙명한 사람은 방통 아닌 주유가 되지 않았을까요? 방통 또한 서른 여섯으로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희대의 군사전략가의 어이없는 죽음이 주유의 앞날을 암시하고 있는 듯한 망상에 사로잡혀 봅니다.
주유의 천하이분계는 유비를 오에 잡아두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으므로 손권이 유비의 형주 영유를 승인해서야 아무런 전략적 의미가 없어요. 삼척동자라도 알 일입니다. 따라서 손권은 주유 사후에 형주 양도를 결정했을지도 모릅니다.
주유의 사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분분합니다. (【4Zhuges'traces】의 주유 암살설 참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되,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교묘한 함정이라도 테러리즘에 준하는 범죄라면 언젠가는 기록으로 남아 세상에 밝혀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유암살설을 주장하는 문헌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그에 대해 필자는 말을 아끼고자 합니다. 주유는 병사했습니다. 강릉전에서 부상을 입은 이래 죽음이 한 발 한 발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실감한 주유는, 손오의 천하통일을 위해 순수한 전략적 관점에서 최선으로 여겨지는 계책을 한시라도 빨리 실행하고자 했던 거지요. 필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주유가 강릉으로 향하는 도중 발병하여 목숨이 위태로워진 시점에서 천하이분계는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천하이분계의 구체적 안은 주유의 머릿속에 존재했어요. 제 3자가 대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후임은 하나뿐입니다. 오에서 천하삼분의 계책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나이 노숙 외엔 없었습니다. 정세는 변했습니다.
주유는 후임으로 노숙을 천거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향년 36세. 손권은 주유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자 상복을 걸치고 애곡했으며, 오로 돌아온 주유의 관을 무호(撫湖)까지 마중나와 눈물을 지으며 <주유는 왕을 보좌할 재능을 타고났으나 뜻하게 않게 일찍 세상을 떴다. 나는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하고 탄식했다 합니다. 후일 제위에 올랐을 때에도 주유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감회를 토로했지요.
주유전 고찰을 모두 끝냈으니 여기서 감상 한 마디.
주유는 평생을 무관(武官)으로 살다 갔습니다. 의도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길 피한 감마저 있죠. 그는 순수한 군사전략가였어요. 정치적 술수나 외교와는 맞지도 않았고, 주유 자신 관여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국을 읽고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해 전략을 짜내는 것이야말로 주유가 가진 재능이었죠. 다만 주유를 거느리는 입장으로서는, 마찬가지로 군사적 재질을 타고났으면서 주유를 보완해주는 타입이 제일이었습니다. 사령관으로서 주유의 재능이 군주를 웃도는 상황은 주유로서도 그닥 반길 만한 일이 못 되었습니다. 군사행동을 통해 손일문을 보좌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건대, 아마도 주유는 스스로 톱에 설 마음은 없었던 게지요. 허나 만에 하나 주유가 요절하지 않고 천하이분계를 실현했다 하더라도……종국에는 육손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주유에게 있어 최상의 군주는 젊은 날을 함께 한 친우였습니다. 주유의 천하이분계는 손책에게서 비로소 최대한의 효과를 꽃피웁니다. 수세에 능하고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손권은 천하삼분계에 적합한 군주였지요. 그리고 손권의 참모로서는 외교적/정치적 자질이 뛰어난 노숙이나 수세에 강한 군사사령관 육손이 딱이었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주유는 물러날 때가 되어서 물러난 것 같기까지 합니다. 주유가 촉 원정군을 일으켰더라면……낙현(雒県)에서 화살을 맞고 낙명한 사람은 방통 아닌 주유가 되지 않았을까요? 방통 또한 서른 여섯으로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희대의 군사전략가의 어이없는 죽음이 주유의 앞날을 암시하고 있는 듯한 망상에 사로잡혀 봅니다.
'주유에게 있어 최상의 군주는 젊은 날을 함께 한 친우였습니다. 주유의 천하이분계는 손책에게서 비로소 최대한의 효과를 꽃피웁니다.'
지난 몇 년 결국 저 한 구절을 위해 달려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유가 죽을 때까지 손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 남자의 순정은 짜고 맵고 드럽게 독합니다. 씨바 이젠 숫제 눈물이 나려 그러네.
그리고 당신이 유책 지지자라는 건 뼈가 저리게 잘 알았으니 고만 좀 해!!! 쪽팔려 죽겠어!!!
제 20장. 주유외전(周瑜外伝)
그리고 손등(손권의 장남이자 후계자이고 가장 사랑했던 아들내미)은 제 할아버지 및 삼촌들과 마찬가지로 (손씨 가문 아들내미들 중에 오래 산 건 손권뿐이다. 나머진 손책 필두로 줄줄이 죽어나갔다; 손권이 수명을 다 빨아들였나;) 서른 셋에 요절했습니다(...). 요절상은 큰아들에게 물려주고 과부상은 딸이 받아갔나 보다;;;
역시 주일문 최고의 스타인 주유가 초기에는 손책 쫓아 뛰어다니고 나중에는 유지 받든답시고 손가에 멸사봉공하느라 남은 기까지 다 빨아간 게 틀림없다. 내가 존경과 사랑을 바치는 니시이 케이트 씨의 모 단편에서는 결국 따지고 보면 그놈의 소패왕 때문에 애꿎은 주유네 집안이 아주 풍비박산이 납지요. 이래서 남자 하나 잘못 찍으면 평생이 피곤....쿨럭쿨럭!
마지막으로 주유전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마치겠습니다.
1. 주유와 장간
삼국지연의에서 유명한, 주유를 회유하고자 조조가 동향의 지기인 장간을 사자로 보내는 대목을 정사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만 배경은 적벽이 아니며, 시기는 불명확합니다.
<조조는 주유가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을 알고, 양주의 관청에 지령을 내려 주유와 동향인 장간을 파견하였다. 장간이 주유를 만나러 오자, 주유는 "자익(子翼), 고생이 많으십니다. 조조를 위해 유세(遊説)하러 오셨군요" 라 말했다. 장간은 "나는 당신의 평판을 듣고 찾아왔거늘 말이 지나치십니다" 라 반박하였으나, 주유는 자신에게 현의 소리를 듣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 정통적인 음악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귀가 있다며 말을 돌려버렸다. 주유는 장간에게 군사물자와 시설을 보여주고, "남아로 태어나 나를 알아주시는 군주를 만났으니, 표면적으로는 군신의 관계일지언정 실제로는 육친과도 같은 은의를 입고 일심동체가 된 이상 걸령 소진이나 장의가 살아돌아와 달변을 늘어놓아도 나를 설득할 수 없을 겁니다. 하물며 당신과 같은 사람이 어찌 내 마음을 움직이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이에 장간은 설득을 포기하고 말로는 손권과 주유를 이간질할 수 없으리라 보고하였다. 이를 전해들은 중원의 사인(士人)들은 더욱 주유를 우러러보았다.>
다시 말해 중원의 선비들은 주유의 충의를 유교적 가치관에서 높이 샀다는 이야기입니다. 시기적으로는 아마도 강릉제압전 이후가 아닐까요? 어쩌면 좀 더 일러서 손책이 살아 있을 때일지도 모릅니다. 경성에서 유비 또한 주유는 남 밑에 머무를 인재가 아니라 했었으니, 조조에게도 유비에게도 주유는 위협적인 존재로 비쳤다는 뜻이겠지요. 주유암살설은 본 기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악역 꼴이 난 연의에서도 이 에피소드는 살아남았죠. 나관중 또한 주유의 충의에 감명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2. 주유에게 패배한 것은 치욕이 아니다
적벽에서 패퇴하고 조조가 내뱉었다는 말이죠. 다소 작위적인 냄새가 나서 강표전의 주석인가 했더니 무려 진수가 저술한 본문이 출처입니다. 조조가 손권에게 보낸 편지에서 <적벽에서는 어쩌다 역병이 돌았던 까닭에 배를 태우고 퇴각했으나, 결과적으로 주유에게 이와 같은 허명을 허용하고 말았다>고 쓰고 있어요. 조조가 손권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212년~213년 사이의 합비・유수격돌전 당시가 제일 유력하므로, 만약 그렇다면 주유가 이미 죽은 후입니다.
3. 주유의 음감
이것도 유명한 이야기죠.
주유는 음감이 무척이나 뛰어나 술을 마시는 중에도 누군가가 연주를 실수하면 바로 분간하여 연주자를 쳐다보았다지요. 당시의 사람들은 이를 두고 <곡을 실수하면 주랑이 돌아본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후세에까지 구전할 만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지만요 ^^ 주랑이라는 호칭을 보건대 주유가 팽팽하게 젊었을 무렵의 에피소드입니다. 다시 말해 손랑・주랑 콤비가 강동의 아이돌이었을 무렵의 일이겠죠. 어지간히 인기인이었나 봅니다.
4. 냉대받는 주유의 자손들
자세한 이야기는 오서외전에서 다루겠지만, 주유의 후손들은 손오에서 중히 쓰이지 못했습니다. 주유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딸은 손등의 부인이 되었죠. 아들들은 주순(周循)과 주윤(周胤)이라 하는데, 형인 주순은 주유의 풍모가 있다 하여 주위의 기대를 모았지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요절했습니다. 주윤은 품행이 상당히 나빴던지 노릉군(盧陵郡)에 귀양까지 가게 됩니다. 제갈근과 보질(歩隲)은 주유의 공적을 보아 관대한 처치를 내려주십사 부탁했지만, 손권은 주윤 자신이 부친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개심시키기 위한 조치이니 무를 수는 없다고 반박합니다. 이건 손권의 의견이 이치에 닿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위대했다 한들 그게 품행불량한 아들을 보아넘겨줄 이유는 되지 못하죠. 손권도 한 번은 주윤에게 편장군을 맡긴 만큼 자업자득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정치적 판단의 견지에서 보자면, 호족이 세력을 세습하는 것을 굉장히 꺼려한 감이 있습니다. 선대가 잘났어도 본인에게 문제가 있으면 기용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손권은 일선을 긋고 있는 모양입니다.
1. 주유와 장간
삼국지연의에서 유명한, 주유를 회유하고자 조조가 동향의 지기인 장간을 사자로 보내는 대목을 정사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만 배경은 적벽이 아니며, 시기는 불명확합니다.
<조조는 주유가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을 알고, 양주의 관청에 지령을 내려 주유와 동향인 장간을 파견하였다. 장간이 주유를 만나러 오자, 주유는 "자익(子翼), 고생이 많으십니다. 조조를 위해 유세(遊説)하러 오셨군요" 라 말했다. 장간은 "나는 당신의 평판을 듣고 찾아왔거늘 말이 지나치십니다" 라 반박하였으나, 주유는 자신에게 현의 소리를 듣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 정통적인 음악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귀가 있다며 말을 돌려버렸다. 주유는 장간에게 군사물자와 시설을 보여주고, "남아로 태어나 나를 알아주시는 군주를 만났으니, 표면적으로는 군신의 관계일지언정 실제로는 육친과도 같은 은의를 입고 일심동체가 된 이상 걸령 소진이나 장의가 살아돌아와 달변을 늘어놓아도 나를 설득할 수 없을 겁니다. 하물며 당신과 같은 사람이 어찌 내 마음을 움직이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이에 장간은 설득을 포기하고 말로는 손권과 주유를 이간질할 수 없으리라 보고하였다. 이를 전해들은 중원의 사인(士人)들은 더욱 주유를 우러러보았다.>
다시 말해 중원의 선비들은 주유의 충의를 유교적 가치관에서 높이 샀다는 이야기입니다. 시기적으로는 아마도 강릉제압전 이후가 아닐까요? 어쩌면 좀 더 일러서 손책이 살아 있을 때일지도 모릅니다. 경성에서 유비 또한 주유는 남 밑에 머무를 인재가 아니라 했었으니, 조조에게도 유비에게도 주유는 위협적인 존재로 비쳤다는 뜻이겠지요. 주유암살설은 본 기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악역 꼴이 난 연의에서도 이 에피소드는 살아남았죠. 나관중 또한 주유의 충의에 감명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2. 주유에게 패배한 것은 치욕이 아니다
적벽에서 패퇴하고 조조가 내뱉었다는 말이죠. 다소 작위적인 냄새가 나서 강표전의 주석인가 했더니 무려 진수가 저술한 본문이 출처입니다. 조조가 손권에게 보낸 편지에서 <적벽에서는 어쩌다 역병이 돌았던 까닭에 배를 태우고 퇴각했으나, 결과적으로 주유에게 이와 같은 허명을 허용하고 말았다>고 쓰고 있어요. 조조가 손권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212년~213년 사이의 합비・유수격돌전 당시가 제일 유력하므로, 만약 그렇다면 주유가 이미 죽은 후입니다.
3. 주유의 음감
이것도 유명한 이야기죠.
주유는 음감이 무척이나 뛰어나 술을 마시는 중에도 누군가가 연주를 실수하면 바로 분간하여 연주자를 쳐다보았다지요. 당시의 사람들은 이를 두고 <곡을 실수하면 주랑이 돌아본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후세에까지 구전할 만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지만요 ^^ 주랑이라는 호칭을 보건대 주유가 팽팽하게 젊었을 무렵의 에피소드입니다. 다시 말해 손랑・주랑 콤비가 강동의 아이돌이었을 무렵의 일이겠죠. 어지간히 인기인이었나 봅니다.
4. 냉대받는 주유의 자손들
자세한 이야기는 오서외전에서 다루겠지만, 주유의 후손들은 손오에서 중히 쓰이지 못했습니다. 주유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딸은 손등의 부인이 되었죠. 아들들은 주순(周循)과 주윤(周胤)이라 하는데, 형인 주순은 주유의 풍모가 있다 하여 주위의 기대를 모았지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요절했습니다. 주윤은 품행이 상당히 나빴던지 노릉군(盧陵郡)에 귀양까지 가게 됩니다. 제갈근과 보질(歩隲)은 주유의 공적을 보아 관대한 처치를 내려주십사 부탁했지만, 손권은 주윤 자신이 부친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개심시키기 위한 조치이니 무를 수는 없다고 반박합니다. 이건 손권의 의견이 이치에 닿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위대했다 한들 그게 품행불량한 아들을 보아넘겨줄 이유는 되지 못하죠. 손권도 한 번은 주윤에게 편장군을 맡긴 만큼 자업자득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정치적 판단의 견지에서 보자면, 호족이 세력을 세습하는 것을 굉장히 꺼려한 감이 있습니다. 선대가 잘났어도 본인에게 문제가 있으면 기용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손권은 일선을 긋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손등(손권의 장남이자 후계자이고 가장 사랑했던 아들내미)은 제 할아버지 및 삼촌들과 마찬가지로 (손씨 가문 아들내미들 중에 오래 산 건 손권뿐이다. 나머진 손책 필두로 줄줄이 죽어나갔다; 손권이 수명을 다 빨아들였나;) 서른 셋에 요절했습니다(...). 요절상은 큰아들에게 물려주고 과부상은 딸이 받아갔나 보다;;;
역시 주일문 최고의 스타인 주유가 초기에는 손책 쫓아 뛰어다니고 나중에는 유지 받든답시고 손가에 멸사봉공하느라 남은 기까지 다 빨아간 게 틀림없다. 내가 존경과 사랑을 바치는 니시이 케이트 씨의 모 단편에서는 결국 따지고 보면 그놈의 소패왕 때문에 애꿎은 주유네 집안이 아주 풍비박산이 납지요. 이래서 남자 하나 잘못 찍으면 평생이 피곤....쿨럭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