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딴 이야기도 해야 하므로 생각나는 대로 휘갈긴 결과물.
정리하다가 불끈 열받았으므로 말은 그다지 곱지 않습니다. 뭐 언제는 고왔냐고요? 토호호호호....
1960년대의 한 영화에서는 그동안 환영받아 온 모습과 다르게 여성에게 구애하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바로 「졸업」이었다. 이 영화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한 여성(캐서린 로스 역)을 사귀었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녀는 거절하지만 그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강의실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등 계속해서 결혼하자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신중히 생각해 보았지만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그에게 보낸다. 사실, 그녀는 그 마을을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것은 분명한 메시지로 보였지만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호프만은 그녀를 찾기 위해 스토킹 기법을 사용한다. 그는 신랑의 친구인 척했다가, 가족인 척했다가, 또 목사인 척한다. 결국 그는 결혼식장인 교회를 찾아내어 캐서린 로스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음을 선포한 직후에 쳐들어간다. 그는 신부의 아버지를 때려눕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주먹으로 치고 가족들을 도우려는 하객들에게 큰 나무 십자가를 휘두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는 그 여자를 얻는다. 그녀는 자기 가족과 남편을 뒤로 한 채 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달아나 버린다. 그는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거절은 진짜로 거절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에게는 자신의 삶에 동참할 사람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뒤로 한 채 떠난다.
우리 세대는 「졸업」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유용한 애정 전략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끈기였다. 이와 똑같은 전략이 모든 스토킹 사건의 핵심에 있다. 여성과 성공할 것 같지 않은 남자, 부적절한 관계로 성취하는 남자는 우리 문화에서 조장하는 공통적 주제다. 「플래시 댄스」, 「투씨」, 「과외수업」, 「10」, 「리오의 연정」, 「허니문 인 베가스」, 「은밀한 유혹」을 생각해 보자.
이런 헐리우드의 공식은 "소년은 소녀를 원한다, 소녀는 소년을 원치 않는다, 소년이 소녀를 괴롭힌다, 소년이 소녀를 얻는다." 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영화들은 당신이 여자를 공격하더라도, 그녀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그녀를 쓰레기처럼 다루었다고 하더라도(그리고 가끔은 그녀를 쓰레기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그 공식에 따르면 당신은 그녀를 얻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당신이 더스틴 호프만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당신은 결국에는 캐서린 로스나 제시카 랭을 얻을 것이다. 끈기는 모든 것을 제치고 전쟁에서 이길 것이다.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치어스」라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샘은 여성 직장 동료 두 명을 성적으로 8년 동안이나 괴롭혔지만 해고도, 고소도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괴롭힘으로 그는 그 두 여성을 얻는다.
젊은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훈은 실제 생활에서 벌어지는 스토킹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끈기는 끈기를 입증해 줄 뿐이지 사랑을 입증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후략)
호프만은 그녀를 찾기 위해 스토킹 기법을 사용한다. 그는 신랑의 친구인 척했다가, 가족인 척했다가, 또 목사인 척한다. 결국 그는 결혼식장인 교회를 찾아내어 캐서린 로스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음을 선포한 직후에 쳐들어간다. 그는 신부의 아버지를 때려눕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주먹으로 치고 가족들을 도우려는 하객들에게 큰 나무 십자가를 휘두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는 그 여자를 얻는다. 그녀는 자기 가족과 남편을 뒤로 한 채 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달아나 버린다. 그는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거절은 진짜로 거절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에게는 자신의 삶에 동참할 사람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뒤로 한 채 떠난다.
우리 세대는 「졸업」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유용한 애정 전략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끈기였다. 이와 똑같은 전략이 모든 스토킹 사건의 핵심에 있다. 여성과 성공할 것 같지 않은 남자, 부적절한 관계로 성취하는 남자는 우리 문화에서 조장하는 공통적 주제다. 「플래시 댄스」, 「투씨」, 「과외수업」, 「10」, 「리오의 연정」, 「허니문 인 베가스」, 「은밀한 유혹」을 생각해 보자.
이런 헐리우드의 공식은 "소년은 소녀를 원한다, 소녀는 소년을 원치 않는다, 소년이 소녀를 괴롭힌다, 소년이 소녀를 얻는다." 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영화들은 당신이 여자를 공격하더라도, 그녀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그녀를 쓰레기처럼 다루었다고 하더라도(그리고 가끔은 그녀를 쓰레기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그 공식에 따르면 당신은 그녀를 얻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당신이 더스틴 호프만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당신은 결국에는 캐서린 로스나 제시카 랭을 얻을 것이다. 끈기는 모든 것을 제치고 전쟁에서 이길 것이다.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치어스」라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샘은 여성 직장 동료 두 명을 성적으로 8년 동안이나 괴롭혔지만 해고도, 고소도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괴롭힘으로 그는 그 두 여성을 얻는다.
젊은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훈은 실제 생활에서 벌어지는 스토킹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끈기는 끈기를 입증해 줄 뿐이지 사랑을 입증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후략)
-가빈 드 베커, 『범죄신호』 中
이 글로 「졸업」은 영원히 S에게 찍혔다. 아무리 위대한 고전영화라 칭송을 받아도, 설령 세상 모든 영화가 사라지고 「졸업」 하나만 남는다 하더라도 나는 저 영환 저얼대 보지 않을 것이다. -_-+++
S가 아직 푸릇푸릇한 초딩이었을 때,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는지 뭐였는지 아무튼 어느 쇼 프로그램에서 연기와는 상관없는 연예인들이 단막극에 출연해서 뭐 이런저런 역을 맡는 코너가 있었다. 보다시피 매우 그저 그런 시시껄렁한 코너였으므로 딴 건 암것도 기억 못하지만, 딱 하나 근 10년이 지난 지금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출연자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수 박진영이었다 -_-
그 에피소드에서 박진영은 별볼일 없는 대학생으로 나온다. 그러다 어찌어찌 한 여학생에게 반해 죽어라고, 정말로 죽.어.라.고 쫓아다니지만 여자는 그에게 마음이 없다. 아마 달리 사귀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여자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줄줄줄줄 따라다니고 애정을 호소한다. 시달리다 못한 여자는 마침내 분을 터뜨린다. "난 너 싫어! 알아들어, 난 너 싫다구!!" 그날 밤 놈은 옥상 위로 올라간다. 옥상 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리겠다고 빽빽 고함을 지른다. 사람들이 놀라서 모여들고 누군가가 여자를 불러온다. 여자가 내려오라고 부탁하자 놈은 기세등등하게 고함을 지른다. "날 좋아한다고 말해! 안 그러면 뛰어내릴 거야!!" 겁먹은 여자는 시키는 대로 설레발이 되게 빌면서 좋아한다고 외친다. 그제서야 날듯이 달려내려와 여자를 부둥켜 안는데서 이야기가 끝나는데.
딴 시청자들은 어머 드디어 사랑을 성취했네 오호호 어쩌고 박수쳤을지 몰라도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S는 공포에 질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새하얗게 질렸다. 그럼 저 여자는 뭐가 되는 거냐고 생각했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너 싫어 죽겠다고 펄펄 뛰었는데, 그 사이 사랑의 감정 같은 건 싹트지도 않았는데, 뒈지겠다고 지랄하니 어쩔 수 없이 말해준 것뿐인데, 저놈은 얼씨구 좋다고 여자를 껴안고 빙빙 돌리고 있다. 만약 내가 저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문득 자신을 대입해 본 어린애는 무섭고, 싫고, 끔찍해서 파르하니 굳어버렸다. 누가 내 의사를 무시하고 무조건 덤벼들어 나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너무나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여자라는 성별을 부여받은 사람의 본능적인 공포였으리라.
그리고 나이 먹은 지금 나는 박진영이 연기한 그놈이 씹새라는 것을 이해한다. (저따위 각본 쓴 놈 누구냐. 제발 나가죽어라)
원래부터 옥상 위로 올라가서 뭐뭐해 달라 안 그러면 뛰어내린다고 지랄하는 새끼들을 혐오한다. 도날드 E. 웨스트레이크의 레빈 형사 시리즈 중에 마침 S의 심정을 단적으로 대표하는 훌륭한 단편이 있었다. 이혼해 주지 않는 아내를 협박하려고 창틀 위로 기어올라간 남자 얘길 들은 레빈 형사의 파트너는 강직한 얼굴을 찡그리며 씹어뱉는다. "망할 놈들, 진짜로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소동을 부리지 않아요. 조용히 뛰어내릴 뿐이지. 저놈들은 사기꾼이야. 누가 와서 다 들어줄 테니 내려와달라고 애원하길 바라는 거라고."
그렇다. 저건 자신의 목숨을 인질로 잡고, 죽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는 주제에 가능하면 사람 죽는 꼴은 피하고 싶고, 특히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나 때문에 누가 죽기를 원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는 비열하고 비겁하고 더러운 행위다. 여자는 분명 그를 혐오했다. 그렇지만 증오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놈이 만에 하나 정말로 뛰어내리기라도 하는 날엔 어처구니없게도 남은 그녀의 인생이 오히려 망가져 버린다. 한국에서는 자살한 놈이 이긴다. 불공평하게도 오죽하면 남자가 자살했겠느냐고 주위에서 수군수군 손가락질을 할 것이며, 그녀 자신은 그녀대로 멀쩡한(절대로 멀쩡한 새끼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남자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잠도 못 이룰 것이다. 그런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무릎을 꿇는다. 남자는 승리감에 도취된다. 거지 같은 결과다. -_-
얼마 전에 개봉되었던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다른 남자와 페리스휠을 탔다. 남자는 쫓아가 관람차에 매달려 데이트해 달라고 요구한다. 여자가 웃기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남자는 한 손을 놓아버린다. 여자는 기겁을 해서 데이트해 줄게! 할 테니까! 라 외치고 남자는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출발! 네타바레 여행(가명 처리)에서 이 장면을 보자마자 아름답건 말건 질기건 말건 「노트북」을 볼 의사는 영원히 허공 너머로 바이바이 증발했다. (그나마 이쪽의 여자는 데이트를 승낙한 직후 매달려 있어 손을 쓸 수 없는 남자의 바지와 팬티를 홀랑 벗겨버리는 화끈한 보복으로 응수한다. 그리고 나는 당해도 싸다고 중얼거렸다)
옛날 미국 유머에 그런 게 있었음. '여자가 NO라고 말하면 글쎄요를 의미하고 글쎄요라 말하면 YES를 의미한다. YES라고 말하는 여자는 이미 여자가 아니다' 대충 이랬는데, 거기, 여기는 열불 뻗칠 장소임. -_- '싫다 싫다 발악해도 알고 보면 좋아서 튕기는 거더라 뭐(嫌よ嫌よも好きのうち)' 라는 같은 취지의 일본 속담에서도 엿볼 수 있거니와 가빈 드 베커의 말마따나 이 세상은 여자의 거절은 거절이 아니라는 남성 제군들에게만 편리한 믿음으로 팽배해 있다. 그에 발맞춰 대부분의 여자들은 딱 잘라서 거절하면 여자답지 못하며(하!)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므로 돌려 돌려 말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다. 상승 효과는 대박이다; 운좋게 저 교육을 피해갔어도, 분명히 NO!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도 상대가 NO=YES라는 실로 같잖고 고리짝 냄새 풀풀 나는 공식 하에 '쟨 내가 좋으면서 예의상 튕기고 있으므로 밀어붙이면 언젠가는 넘어오셈' 이라 확신하고 있는 날엔 모든 게 말짱 도로아미타불. 「졸업」이 우리에게 남긴 실로 지저분한 유산인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는 말에 대한 광신적인 신봉은 가히 소름끼칠 정도다. 웃기지 마라.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는 안 넘어간다. 일부 남자들은 그 간단한 사실을 모른다.
재수없게 그런 찰거머리에게 걸려 결국 못 떼어낸 여자들이 뭐겠어, 바로 스토킹 피해자지. 살짝 돈 놈만 스토커가 된다는 편견을 버려라. 상대가 결코 원치 않는 끈기를 발휘하기 시작하면 스토커 되는 거 한순간이다. 그리고 결국엔 그녀의 생활을 파괴하고 그녀의 정신을 파괴하고 그녀의 영혼을 파괴하게 된다.
진리는 간단하다.
1. 여자가 NO라고 말하면 NO다. 여자의 NO=YES란 남자의 가장 병적인 환상이다. 멋대로 해석하지 좀 마라. 니가 뭐 그리 잘났다고 NO라는데 사실은 YES일 거라 망상하는 거냐?
2.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는 안 넘어간다. 쓸데없는 끈기는 상대를 감동시키는 게 아니라 미움만 가중시킨다. 싫다고 하면 깨끗이 물러나라.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몰라? しつこい男は嫌われます!
아마 그런 일은 영원히, 절대, 결코 없을 거라 생각-_-하나, 천억의 하나라도 옥상에 기어올라가 너 나랑 사귀어 주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는 사내새끼가 있을 경우 나는 주저없이 이렇게 외칠 것이다. "뛰어내려!! 뛰어내려, 이 X새야!! 니가 뒈지건 말건 내가 알 게 뭐냐!!" 그러다 정말 뛰어내려도 진짜 내 알 바 아님. -_-
아니면 끌어내려 삽으로 늘씬하게 두들겨패며 여자가 NO라고 하면 NO인 거고 협박으로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걸 부러진 뼈의 고통과 함께 가르쳐주는 게 더 속시원할지도 모른다. 막상 현장에선 또 소시민의 콩알만한 심장이 약해질지 모르므로;
덤. 가벼~업게 흥분 상태에서 마구마구 갈겨쓰고(아 난 정말 스팀 받으면 자제가 안 된다니까;) 몇 시간 있다 머리가 식어 허걱, 보지도 않은 영화를 남말 믿고 무턱대고 비난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라며 찔끔했던 차에 마침 lizhen님이 정곡을 찌르는 지적을 해주셨음. 잠재 졸업 시청 인구를 얼결에 두 명이나 줄인 것(....)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우선 보고 나서 욕질을 해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전히 준 스토킹은 사소한 개인적 문제까지 얽혀서 상상만 해도 진짜 기함할 것 같고(과잉반응의 원인은 아마도 그거) 결국 진짜 문제는 바보짓하는 남자 자체가 아니라 저래서 여자를 얻으면 절대 안 되는 건데 얻어버렸다는 거겠지만, 아니아니, 모든 건 보고 나서 보고 나서. 똑같이 욕질해도 직접 보기 전과 직접 본 다음은 무게가 다르다는 역시 매우 간단한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