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내 마음의 Honey | 2006/01/05 11:55

지나친 버닝은 심신을 황폐화시킵니다. -_-;;;
일도 바빠 죽겠는데 상대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사방팔방에 민폐 끼쳐가며 삽질해대는 못난 반편이 두 놈과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나 모르쇠나 굳힐 것이지 괜히 끼여들어 인생 잘잘이 조지고 있는 왕자님 때문에 휘떡 돌기 직전의 머리에게 잠시나마 안식을 주고자.



석문(石門)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는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 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 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수년 전에 모 팬픽에서 처음으로 이 시를 알고 피 토하며 부럭 죽어버렸음. 조지훈 시인, 당신은 정말이지 죽.어.라.고 나쁜 남자요 -_-;;; 지난 번의 나르키소스와 에코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시인이란 인류의 일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척살하기 위해 뮤즈들이 내려보낸 킬러가 틀림없음(<-피해망상). 뭐 이렇게 역사에 남고 기억에 남고 가슴에 남아서 훌륭한 시고 위대한 시인이겠습니다만.

원래 여기 관리인이 좀 심하게 감상적이지만 이 시는 읽을 때마다 눈 속 깊은 곳이 저릿저릿한다. 훌훌 떨치고 가 버린 님을 향한 원망과 탄식에 지새우면서, 그럼에도 차마 그리움과 미련과 한 가닥 기대를 떨치지 못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첫날밤의 신부는 그예 발걸음을 돌린 님의 손 끝에 한 마디 말도 없이 한 줌 해로 화하고. 뭇사람이 조바심쳐도 굳게만 닫힌, 그러나 당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활짝 열릴 그녀의 마음. 젠장 눈물나잖아. 로망이잖아. 생과부잖아. (이봐;)

..............

어... 어라? 뭔가 안식이 아니라 자방을 한 듯한 기분이...? ;;;;
(아예 지뢰를 밟아라 지뢰를 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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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삭제 댓글
개발부장 2006/01/06 11:49
...KISARA님 때문이야.
...어째 저 아름다운 시가 야하게(...) 들리냐구우우!!!
(MX지뢰를 들고 반자이 어택)
수정/삭제 댓글
KISARA 2006/01/07 14:10
개발부장 님 / 후, 어이하여 제 탓을 하십니까. 전 야한 소리는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그리 들리신다면 개발부장 님이 오염되신 까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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