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차 창작에 완전히 맛들였습니다;;; (H양이 놀아주지 않으니까..... OTL)
READ ONLY SEE ONLY를 철저하게 고수하는 본 관리인의 창작욕이 이토록 들끓는 것은 실로 7, 8년만. 결과물의 질이야 어찌됐건 본인은 차~암 즐겁습니다 (먼 눈)
물론 여성향이고, 언제나 그렇듯이 문재나 재미는 전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어딘가의 왕자님과 악성천연 챔프의 좀 닭살 돋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봤자지;)
테러는 고만해라 인간아;
1. 현재 K.H.군은 모씨로 인한 심각한 프러스트레이션을 식도락으로 풀고 있는 중. (.......)
2. 기왕 한국인으로 태어난 거 고국도 한 번 넣어보자는 담대한 발상에서 나온 한국 그랑프리. 경상남도 신항만 준설토 서킷은 F1 유치용으로 2001년부터 착공한 실존 서킷...이라고 주워는 들었는데 2006년 현재는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관리인도 전혀 모른다;;; (이럴 바에는 작년 9월경에 F1 유치 계약을 맺은 전남 쪽으로 할 걸 그랬나... 하지만 서킷이...;;)
3. 필시 엑스페리온은 딸기 파르페. 아마 오우가 파르페도 있지 않을까. (포도 파르페라던가)
4. 늘 생각하지만 먼저 반한 놈이 죄인이다. (저놈의 천연에게 왕자님은 어디까지나 친.구.임. ....빌어먹을 OTL)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칼 리히터 폰 란돌은 생각했다.
인류가 사고(思考)라는 걸 갖게 된 이후로 끝없이 되풀이된 근원적 질문을 매우 진지하게 회의를 품고 심사숙고하던 정통파 북구계 왕자님은, 설령 해답을 찾는다 한들 사라질 성 싶지도 않은 눈앞의 매머드 사이즈의 유리잔을 노려보고 품위가 손상되지 않을 만큼만 어깨를 살짝 떨구며 내심 이를 부득 갈았다.
일명 수퍼울트라그레이트딜럭스마블러스데스디재스터사이버포뮬러파르페. 제정신을 가진 인간의 작명 센스라고는 세상이 두 번 뒤집혀도 여겨줄 수 없고 단정컨대 CF와는 쥐뿔도 상관없는 이 높이 50센티미터짜리 초대형 파르페는 지금 그가 앉아 있는 Honey DEW인지 뭔지 하는 외장부터 인테리어까지 처절하게 핑크빛 소녀 취향으로 처덕처덕 도배된 가게가 없어서 못 파는 최고 인기 메뉴라던가 뭐라던가. 스위트와 비터와 다크와 화이트, 초콜릿이란 초콜릿은 다 쓸어넣고 캐러멜 시럽을 끼얹고 초콜릿 크림을 30센티미터 높이로 처붓고 토핑이라는 미명 하에 마블 초콜릿과 쿠키와 크런치와 오만가지 과자를 처바른, 은근하고 섬세하고 우아한 맛을 단연 선호하는 란돌로서는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메슥해질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아하, 그래서 데스에 디재스터인가. 먹다 피 토하고 죽어버리라고. 뭐가 사이버 포뮬러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자 그럼, 자허 호텔의 원조 자허토르테조차 맛이 천박하다며 이맛살을 찌푸리는 뼛속까지 골수 귀족 취향의 왕자님이 어쩌다 서민 냄새 풀풀 나는 도쿄 한복판의 아이스크림 샵에서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지경이 다 되셨느냐 하면.
순전히 탁자 맞은편에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얼굴로 파르페를 호냥냥냥 음미하고 있는 저놈의 망할 CF 월드 챔프, 여섯 자로 줄여 카자미 하야토 바로 그 인간이 원인이었다.
경상남도 신항만 준설토 서킷에서 개최된 2023년도 제 18회 사이버 포뮬러 제 5차전 한국 그랑프리가 순조롭게 막을 내린 후, 현해탄 하나만 건너면 바로 일본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잠시 휴가를 얻어 귀국한 하야토의 일정과 기술 제휴 협약 차 도일(渡日)한 란돌의 일정이 무언가의 농간으로 기막히게 맞아 떨어져 버린 것이 불행(?)의 시초였다면 시초였으리라. 예전에도 공부하랴 응원다니랴 꽤나 눈코 뜰 새가 없었지만 본격적으로 인턴 과정에 들어가 이젠 숨쉴 시간도 부족해진 프로일라인 아스카에게 넘겨받은 열쇠로 문을 열었을 땐, 그저 이 녀석이 살아 있는지 넋이 승천했는지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노릇인지, 문득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서민의 맛도 경험해 봐야 하며 뭐든지 하고 보면 좋은 추억이라 박박 우겨대는 하야토에게 강제로 팔 잡혀 복작복작한 도쿄 시내를 이리 돌고 저리 돌며 뱅뱅이질을 치고 있었다. Honey DEW는 무슨 정력이 그리 좋아 유독 힘이 펄펄 넘쳐나는 하야토가 오늘 네 번째로 란돌을 끌고 들어온 가게다.
....여기 파르페가 유명하다며 우하우하 들뜬 폼이, 보나마나 제가 먹고 싶어 벼르고 있었을 뿐이겠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진짜 난감하게도, 일단 모자와 안경으로 기본적인 무장을 단단히 갖춘 란돌과는 반대로 하야토는 그 흔하디 흔한 선글라스 하나 끼고 있지 않은 것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적절한 위장을 촉구하는 왕자님의 정당한 요구에, 문제의 챔프는 뭔 소리냐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대책없게 선량한 미소 - 혹자는 영업용 미소라고도 한다 - 를 지어보였다.
"괜찮아 괜찮아~난 너랑 달라서 어디서나 보는 흔해빠진 얼굴이니까. 좀 안 가린다고 들키진 않는다고."
진짜로 웃기고 있다.
'저거, 카자미 하야토 아냐?' 라는 말을 오늘 벌써 골백 번도 넘게 들었다! 넌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여자들의 시선이 따갑지도 않단 말이냐! 설마 아예 못 느끼는 거냐! ─라며 한 대 갈겨주었으면 속이 참 시원하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까닭인지 모두 흘금거리기만 할 뿐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말을 걸어오거나 소동을 일으키거나 귀찮게 달라붙는 중생은 단 한 개도 없어 저놈의 순 배짱이 고스란히 먹히고 있다. 빠돌빠순 근성이 남달리 발달했다는 일본인의 기질은 어떻게 됐어!
허나 어찌 보면 이해가 안 가지도 않는다.
란돌은 최대한 제 3자의 시선에서 눈앞의 청년을 한 번 바라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뱃심좋게도 소녀 취향의 가게 한복판에 진치고 앉아 초대형 파르페를 어린애처럼 달뜬 얼굴로 누가 뺏어갈까 열심히열심히 퍼먹고 있는, 동양계의 기준으로 봐도 이제 열 여덟이 됐을까 말까 싶은 터무니없는 동안에 또 그만큼 터무니없이 호리호리한 체격의 청년... 아니 오히려 소년이 하나.
한숨이 쏟아졌다.
─도대체 누가 이 인간을 통상 네 번 월드 챔프 획득의 영광에 빛나는 '서킷의 젊은 제왕'이라 생각해 줄까.
8년간 바로 옆에서 지긋지긋하게 지켜본 나도 지금 회의가 들려 하는 판에!
'..............뭐, 울증보다는 좀 견딜 만하군.'
차마 눈뜨고 보기도 어려웠던 몇 개월 전의 축 처진 녀석에 비하면 아무리 시끄럽고 정신없어도 당장에 귀와 꼬리가 불룩 튀어나올 기세인 지금의 하야토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며, 란돌은 무심하게 스푼 끝으로 거대한 초콜릿 크림의 산을 쿡쿡 찔렀다.
겉표면만의 허세에 가까운 가장과, 가장할 기력조차도 바닥난 것. 어느 쪽이 그나마 좋은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상대가 저만큼 미친듯이 기뻐하며 맛나게 먹으면 왠지 보는 쪽도 흐뭇해지는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서 Honey DEW인지 뭔지를 통째로 사들여 안겨줄까 하는 생각도 아주아주 조금은 들었으니까. (정말로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조금이다)
이어서 이 다소 어색한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단으로 '데이트'라는 심하게 살 떨리는 세 글자가 살며시 고개를 쳐들어 제 존재를 시위했지만 금세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깨끗이 밟아버렸다. 자타가 공인하는 죽빵으로 닭살스런 폼생폼사 대사의 남자 칼 리히터 폰 란돌 올해 22세, 의외로 정말 마음을 주고 만 상대와의 실전에는 대박으로 약한 건지도 모른다.
어쩐지 홧홧해진 감이 없지 않은 뺨 언저리를 가라앉히고자 헛기침을 하며 쓸데없이 찬 물만 들이키고 있는 왕자님의 손등을 테이블 건너편의 하야토가 톡톡 건드렸다.
"─....돌, 이봐~란돌, 내 말 듣고 있어?"
"...........뭐야."
뚱하기 짝이 없는 어조는 혼자 딴 생각에 골몰해 있던 게 약간 머쓱해진 탓이다.
"그거, 안 먹어? 다 녹겠다."
"흥, 녹건 말건."
"아깝지도 않냐~! 비싸게 줬는데!"
"네놈도 월드 챔프라면 쪼잔한 소리는 집어치워. 난 혀에 들러붙는 경박한 맛은 질색이다!"
"정말 불평 많다 너. 오늘은 서민의 맛 체험일 아니었어~?"
언제부터.
"그러지 말고 눈 딱 감고 한 입이라도 먹어 봐. 한 번 익숙해지면 이게 또 썩 괜찮다니까. ────이 다음에 SOFT&SWEET에서 아스라다 파르페도 먹어야 되는데."
"......뭐, 아스라다 파르페?"
"아, 물론 이슈자크 파르페도 있어. 바나나생크림파르페♥ 맛있다고?"
인간의 위장이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불명의 네이밍 센스는 둘째치고) 라면에 스시에 오코노미야키에 이어 50센티미터짜리 파르페까지 뚝딱하고 또? 키에 대해서는 좀 남말 할 때가 아니고 레이서가 운동량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세상에 한도가 있지 대체 그 열량은 다 어디로 가는 거야?
란돌은 날 잡아서 이놈이 정밀 건강 진단을 받도록 해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장본인이 원하건 말건 항의를 하건 말건.
하야토는 테이블 건너편에서 어이가 도망가다 바닥에 쓰러진 표정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오늘 하루 일본의 교통과 인구와 치안과 위생과 음식에 대해 오만가지 불평을 다 늘어놓으며 그래도 자신을 꼬박꼬박 따라와 준 친구를 바라보면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꼭꼭 억눌렀다. 온갖 복잡한 상념에 짓눌려 미칠 지경이 되었을 때 실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나 준 그가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는 건 비밀. 왜 비밀로 해야 하는지는 하야토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 진짜라니까?'
그나저나 참 여러 가지로 눈보신이 되는 광경이었다.
하나로 묶은 결 고운 금발 위에 얹힌 까만 베레모,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페라가모의 선글라스, 절제된 라인의 질 샌더 니트에 까만 카디건. 하얀 바지에 감싸인 다리는 탁자 밑에서 언제나 그렇듯 우아하게 꼬여 있으리라. 평소의 정장에서 최대한 다운사이징을 꾀했지만 역시 타고난 품격이란 옷 좀 허술하게 입는다고 감추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물론 허술하다고 단정짓기에는 옷 하나하나가 전부 손에 꼽히는 최상품이긴 하나, 설령 최상품이 아니라 한들 대체 뭐가 달라질까. 이 왕자님이 손에 들어만 준다면 시장바닥의 선글라스도 틀림없이 페라가모나 아르마니로 보일 테지.
문득, 뭔가 상당히 새삼스러워 진부하기까지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우와, 나도 참 뭘 이제 와서.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지?'
스푼을 입에 문 채로, 하야토는 머리에 떠오른 발상을 숨김없이 말로 표현했다.
"너, 이렇게 보니까 되게 미인이다."
격노한 왕자님께 그 뒤 어떤 보복을 당했는지는, 각자의 상상에 따라.
칼 리히터 폰 란돌은 생각했다.
인류가 사고(思考)라는 걸 갖게 된 이후로 끝없이 되풀이된 근원적 질문을 매우 진지하게 회의를 품고 심사숙고하던 정통파 북구계 왕자님은, 설령 해답을 찾는다 한들 사라질 성 싶지도 않은 눈앞의 매머드 사이즈의 유리잔을 노려보고 품위가 손상되지 않을 만큼만 어깨를 살짝 떨구며 내심 이를 부득 갈았다.
일명 수퍼울트라그레이트딜럭스마블러스데스디재스터사이버포뮬러파르페. 제정신을 가진 인간의 작명 센스라고는 세상이 두 번 뒤집혀도 여겨줄 수 없고 단정컨대 CF와는 쥐뿔도 상관없는 이 높이 50센티미터짜리 초대형 파르페는 지금 그가 앉아 있는 Honey DEW인지 뭔지 하는 외장부터 인테리어까지 처절하게 핑크빛 소녀 취향으로 처덕처덕 도배된 가게가 없어서 못 파는 최고 인기 메뉴라던가 뭐라던가. 스위트와 비터와 다크와 화이트, 초콜릿이란 초콜릿은 다 쓸어넣고 캐러멜 시럽을 끼얹고 초콜릿 크림을 30센티미터 높이로 처붓고 토핑이라는 미명 하에 마블 초콜릿과 쿠키와 크런치와 오만가지 과자를 처바른, 은근하고 섬세하고 우아한 맛을 단연 선호하는 란돌로서는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메슥해질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아하, 그래서 데스에 디재스터인가. 먹다 피 토하고 죽어버리라고. 뭐가 사이버 포뮬러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자 그럼, 자허 호텔의 원조 자허토르테조차 맛이 천박하다며 이맛살을 찌푸리는 뼛속까지 골수 귀족 취향의 왕자님이 어쩌다 서민 냄새 풀풀 나는 도쿄 한복판의 아이스크림 샵에서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지경이 다 되셨느냐 하면.
순전히 탁자 맞은편에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얼굴로 파르페를 호냥냥냥 음미하고 있는 저놈의 망할 CF 월드 챔프, 여섯 자로 줄여 카자미 하야토 바로 그 인간이 원인이었다.
경상남도 신항만 준설토 서킷에서 개최된 2023년도 제 18회 사이버 포뮬러 제 5차전 한국 그랑프리가 순조롭게 막을 내린 후, 현해탄 하나만 건너면 바로 일본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잠시 휴가를 얻어 귀국한 하야토의 일정과 기술 제휴 협약 차 도일(渡日)한 란돌의 일정이 무언가의 농간으로 기막히게 맞아 떨어져 버린 것이 불행(?)의 시초였다면 시초였으리라. 예전에도 공부하랴 응원다니랴 꽤나 눈코 뜰 새가 없었지만 본격적으로 인턴 과정에 들어가 이젠 숨쉴 시간도 부족해진 프로일라인 아스카에게 넘겨받은 열쇠로 문을 열었을 땐, 그저 이 녀석이 살아 있는지 넋이 승천했는지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노릇인지, 문득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서민의 맛도 경험해 봐야 하며 뭐든지 하고 보면 좋은 추억이라 박박 우겨대는 하야토에게 강제로 팔 잡혀 복작복작한 도쿄 시내를 이리 돌고 저리 돌며 뱅뱅이질을 치고 있었다. Honey DEW는 무슨 정력이 그리 좋아 유독 힘이 펄펄 넘쳐나는 하야토가 오늘 네 번째로 란돌을 끌고 들어온 가게다.
....여기 파르페가 유명하다며 우하우하 들뜬 폼이, 보나마나 제가 먹고 싶어 벼르고 있었을 뿐이겠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진짜 난감하게도, 일단 모자와 안경으로 기본적인 무장을 단단히 갖춘 란돌과는 반대로 하야토는 그 흔하디 흔한 선글라스 하나 끼고 있지 않은 것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적절한 위장을 촉구하는 왕자님의 정당한 요구에, 문제의 챔프는 뭔 소리냐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대책없게 선량한 미소 - 혹자는 영업용 미소라고도 한다 - 를 지어보였다.
"괜찮아 괜찮아~난 너랑 달라서 어디서나 보는 흔해빠진 얼굴이니까. 좀 안 가린다고 들키진 않는다고."
진짜로 웃기고 있다.
'저거, 카자미 하야토 아냐?' 라는 말을 오늘 벌써 골백 번도 넘게 들었다! 넌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여자들의 시선이 따갑지도 않단 말이냐! 설마 아예 못 느끼는 거냐! ─라며 한 대 갈겨주었으면 속이 참 시원하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까닭인지 모두 흘금거리기만 할 뿐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말을 걸어오거나 소동을 일으키거나 귀찮게 달라붙는 중생은 단 한 개도 없어 저놈의 순 배짱이 고스란히 먹히고 있다. 빠돌빠순 근성이 남달리 발달했다는 일본인의 기질은 어떻게 됐어!
허나 어찌 보면 이해가 안 가지도 않는다.
란돌은 최대한 제 3자의 시선에서 눈앞의 청년을 한 번 바라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뱃심좋게도 소녀 취향의 가게 한복판에 진치고 앉아 초대형 파르페를 어린애처럼 달뜬 얼굴로 누가 뺏어갈까 열심히열심히 퍼먹고 있는, 동양계의 기준으로 봐도 이제 열 여덟이 됐을까 말까 싶은 터무니없는 동안에 또 그만큼 터무니없이 호리호리한 체격의 청년... 아니 오히려 소년이 하나.
한숨이 쏟아졌다.
─도대체 누가 이 인간을 통상 네 번 월드 챔프 획득의 영광에 빛나는 '서킷의 젊은 제왕'이라 생각해 줄까.
8년간 바로 옆에서 지긋지긋하게 지켜본 나도 지금 회의가 들려 하는 판에!
'..............뭐, 울증보다는 좀 견딜 만하군.'
차마 눈뜨고 보기도 어려웠던 몇 개월 전의 축 처진 녀석에 비하면 아무리 시끄럽고 정신없어도 당장에 귀와 꼬리가 불룩 튀어나올 기세인 지금의 하야토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며, 란돌은 무심하게 스푼 끝으로 거대한 초콜릿 크림의 산을 쿡쿡 찔렀다.
겉표면만의 허세에 가까운 가장과, 가장할 기력조차도 바닥난 것. 어느 쪽이 그나마 좋은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상대가 저만큼 미친듯이 기뻐하며 맛나게 먹으면 왠지 보는 쪽도 흐뭇해지는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서 Honey DEW인지 뭔지를 통째로 사들여 안겨줄까 하는 생각도 아주아주 조금은 들었으니까. (정말로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조금이다)
이어서 이 다소 어색한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단으로 '데이트'라는 심하게 살 떨리는 세 글자가 살며시 고개를 쳐들어 제 존재를 시위했지만 금세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깨끗이 밟아버렸다. 자타가 공인하는 죽빵으로 닭살스런 폼생폼사 대사의 남자 칼 리히터 폰 란돌 올해 22세, 의외로 정말 마음을 주고 만 상대와의 실전에는 대박으로 약한 건지도 모른다.
어쩐지 홧홧해진 감이 없지 않은 뺨 언저리를 가라앉히고자 헛기침을 하며 쓸데없이 찬 물만 들이키고 있는 왕자님의 손등을 테이블 건너편의 하야토가 톡톡 건드렸다.
"─....돌, 이봐~란돌, 내 말 듣고 있어?"
"...........뭐야."
뚱하기 짝이 없는 어조는 혼자 딴 생각에 골몰해 있던 게 약간 머쓱해진 탓이다.
"그거, 안 먹어? 다 녹겠다."
"흥, 녹건 말건."
"아깝지도 않냐~! 비싸게 줬는데!"
"네놈도 월드 챔프라면 쪼잔한 소리는 집어치워. 난 혀에 들러붙는 경박한 맛은 질색이다!"
"정말 불평 많다 너. 오늘은 서민의 맛 체험일 아니었어~?"
언제부터.
"그러지 말고 눈 딱 감고 한 입이라도 먹어 봐. 한 번 익숙해지면 이게 또 썩 괜찮다니까. ────이 다음에 SOFT&SWEET에서 아스라다 파르페도 먹어야 되는데."
"......뭐, 아스라다 파르페?"
"아, 물론 이슈자크 파르페도 있어. 바나나생크림파르페♥ 맛있다고?"
인간의 위장이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불명의 네이밍 센스는 둘째치고) 라면에 스시에 오코노미야키에 이어 50센티미터짜리 파르페까지 뚝딱하고 또? 키에 대해서는 좀 남말 할 때가 아니고 레이서가 운동량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세상에 한도가 있지 대체 그 열량은 다 어디로 가는 거야?
란돌은 날 잡아서 이놈이 정밀 건강 진단을 받도록 해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장본인이 원하건 말건 항의를 하건 말건.
하야토는 테이블 건너편에서 어이가 도망가다 바닥에 쓰러진 표정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오늘 하루 일본의 교통과 인구와 치안과 위생과 음식에 대해 오만가지 불평을 다 늘어놓으며 그래도 자신을 꼬박꼬박 따라와 준 친구를 바라보면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꼭꼭 억눌렀다. 온갖 복잡한 상념에 짓눌려 미칠 지경이 되었을 때 실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나 준 그가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는 건 비밀. 왜 비밀로 해야 하는지는 하야토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 진짜라니까?'
그나저나 참 여러 가지로 눈보신이 되는 광경이었다.
하나로 묶은 결 고운 금발 위에 얹힌 까만 베레모,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페라가모의 선글라스, 절제된 라인의 질 샌더 니트에 까만 카디건. 하얀 바지에 감싸인 다리는 탁자 밑에서 언제나 그렇듯 우아하게 꼬여 있으리라. 평소의 정장에서 최대한 다운사이징을 꾀했지만 역시 타고난 품격이란 옷 좀 허술하게 입는다고 감추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물론 허술하다고 단정짓기에는 옷 하나하나가 전부 손에 꼽히는 최상품이긴 하나, 설령 최상품이 아니라 한들 대체 뭐가 달라질까. 이 왕자님이 손에 들어만 준다면 시장바닥의 선글라스도 틀림없이 페라가모나 아르마니로 보일 테지.
문득, 뭔가 상당히 새삼스러워 진부하기까지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우와, 나도 참 뭘 이제 와서.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지?'
스푼을 입에 문 채로, 하야토는 머리에 떠오른 발상을 숨김없이 말로 표현했다.
"너, 이렇게 보니까 되게 미인이다."
격노한 왕자님께 그 뒤 어떤 보복을 당했는지는, 각자의 상상에 따라.
1. 현재 K.H.군은 모씨로 인한 심각한 프러스트레이션을 식도락으로 풀고 있는 중. (.......)
2. 기왕 한국인으로 태어난 거 고국도 한 번 넣어보자는 담대한 발상에서 나온 한국 그랑프리. 경상남도 신항만 준설토 서킷은 F1 유치용으로 2001년부터 착공한 실존 서킷...이라고 주워는 들었는데 2006년 현재는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관리인도 전혀 모른다;;; (이럴 바에는 작년 9월경에 F1 유치 계약을 맺은 전남 쪽으로 할 걸 그랬나... 하지만 서킷이...;;)
3. 필시 엑스페리온은 딸기 파르페. 아마 오우가 파르페도 있지 않을까. (포도 파르페라던가)
4. 늘 생각하지만 먼저 반한 놈이 죄인이다. (저놈의 천연에게 왕자님은 어디까지나 친.구.임. ....빌어먹을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