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 커플 강화 주간 폭진 중.
거기 할 말 많아보이시는 분들, 제발 좀 가만히 계셔주십시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단 말이지. 아니 설마 블로그 개설하고 2년만에 처음으로 쓰는 노멀 팬픽이 CC 사쿠라일 줄은...!!!! orz
(아닛 1년 반 전부터 깔짝이던 카나메/소스케는 어떡하고 외도부터 하는 거냣!?)
몰라. 팬질 삽질도 불탈 때 아니면 못한대더라. 그냥 배짼다 째.
일본과 한국과 전세계를 통틀어서 탈탈 털어도 예서밖엔 구경 못할 매우 레어한 물건이므로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분은 열어보시라.
그러나 그 이후의 결과는 책임 한 개도 못 짐.
Alert! 다음 사항 중 단 한 가지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분은 냉큼 백워드를!
* 샤오란/사쿠라 아닙니다. 사쿠라/샤오란입니다. 세상이 다섯 번 뒤집혀도 이 구도는 바뀌지 않습니다.
* 사쿠라가 어그렛시-브합니다. 토모에다의 대마왕 키노모토 사쿠라의 대모 심의중(審議中) 님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으므로, 귀엽고 사랑스럽고 청초한 소녀 사쿠라짱을 기대하시는 분은 열 생각은 아예 하들들들 마십시오.
* 토모요는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 직접적인 묘사는 물.론. 없지만 상황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SIDE B-08. 먹다(食べる)
주인장 당분간 도망갑니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속의 속도로 내빼는 S)
"좋아해, 샤오란 군!"
"..............."
"샤오란 군이 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도 괜찮아, 난 샤오란 군을 좋아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샤오란 군이야!"
".................."
눈물을 글썽이며 애끓는 고백을 피토하듯 외치는 한 떨기 꽃과 같은 가련한 미소녀를, 정작 고백 받는 당사자는 절절한 내용이 무색하게 흰눈으로 단지 째려보고만 있었다.
조그마한 불빛(물론 GLOW다)에 둘러싸여 세계가 경탄할 박진의 연기에 도취되어 있던 사쿠라가 마침내 입술을 삐죽였다.
"샤오란 구-운, 조개처럼 입만 꾹 다물고 있음 어떡해! 이 타이밍에선 예의 명대사 '나도야, 사쿠라' 로 대답해 줘야지!"
"....아아, 그래."
샤오란이 드디어 무거운 침묵을 깼다.
"해야겠지. 하고 말고. 얼-마든지 말해주겠는데, 그 전에."
소년의 관자놀이에서 시퍼런 네거리 마크가 뿔룩 튀어나왔다.
"당장 내 위에서 내려왓──────!!!!!"
"싫・어♥"
리 샤오란(15)과 키노모토 사쿠라(14)의 피터지는 공방전, 제 2라운드로 돌입.
손과 손을 맞잡은 연인들, 이라 표현하면 듣기엔 좋지만 실은 올라타서 강제로 찍어누르려는 사쿠라의 손과 눌릴까 보냐고 악바리처럼 저항하는 샤오란의 손이 힘의 팽팽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사쿠라."
"왜애- 샤오란 군?"
"이거 POWER 카드지."
"데헷☆"
"데헷, 이 아냐 데헷이!! 카드를 사적인 이유로 남용하지 말라고, 내가 대체 몇 번...왓!!"
한순간 느슨해진 악력의 틈새를 사정없이 파고드는 파상공세로 손목을 거의 꺾여눌리기 직전까지 갔으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격렬한 혈투 끝에 샤오란은 결국 원래의 자리까지 사쿠라의 손을 밀어올리고야 말았다. POWER를 풀 스로틀로 돌리는 사쿠라와 마력 없이 막상막하로 맞붙는 샤오란의 완력이 대단한 건지 오기가 특출난 건진 상상에 맡기겠다.
기술의 악마같은 정련도로 보아 FIGHT도 살짝 쓰는 것 같지만 신경 쓰면 패배로 직결한다.
때는 가을, 해가 슬슬 저물어 가는 목요일의 오후 5시. 장소는 키노모토 가의 거실 마룻바닥.
잠깐 들러서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샤오란의 잘못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설마 집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여자친구가 애써 가르쳐놓은 호신술로 안다리후리기를 걸어올 줄 누군들 알았겠는가.
덤으로 후지타카는 출장 중. 토야는 유키토와 함께 MT로 집을 비웠고, 케르베로스는 케이크 바이킹에 눈이 멀어 토모요네 집에 가 버렸다.
평소 부탁도 안 했는데 와글와글 몰려나와 훼방 놓는 인간들은 정작 필요할 땐 코빼기도 안 비치는 법이다.
"....사쿠라."
"왜애~샤오란 군?"
"이유나 좀 알자."
"호에, 이유? 천재최강마법소녀 사쿠라짱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이유? 미안해, 타고난 거야."
".............."
"잘못했어요. 화내지 마. 진심이었어."
"...너한테 생략법을 쓴 내 잘못이지... 알았어! 다 알았으니까, 농담은 집어치우고 다짜고짜 사람 위에 올라탄 속셈이나 불어!"
".....샤오란 군."
사쿠라의 목소리가 차륵 가라앉았고, 샤오란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어차피 잡혀사는 팔자가 그렇지.
"뭐, 뭐야? ;;;"
"아는진 모르겠는데,
───우리, 손 잡는 데 1년 걸렸어."
"...윽;"
"키스에는 2년이 더 걸렸구."
"으윽!!"
"게다가 샤오란 군, 좀 있으면 홍콩으로 돌아가 버리고..."
"..............."
"일본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번엔 신음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언제 기운이 넘쳤냐는 듯 풀이 팍삭 죽어버려 보이지 않는 고양이 귀와 어깨를 추욱추욱 늘어뜨린 폼새의 사쿠라에게 몸둘 바를 모르고 무조건 발치에 엎드려 사죄하고 싶어지는 것은, 역시 반한 죄이려니.
"아, 저기, 물론 샤오란 군을 의심하는 건 아냐! 나도 언제까지고 기다릴 자신은 있어. 있지만... 역시, 이대로 헤어지기엔 허전하고... 무언가, 좀 더 확고한 증표가 있으면, 좀 더 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고... 샤오란 군도 날 생각해 준다는, 그런 증표 말야."
"사쿠라...."
"그래서, 토모요짱한테 상담을 했어."
"뭐!!!?"
방금 전까지 심장을 쿡쿡 짓누르던 죄책감이 단박에 분쇄당했다. 두렵도다 다이도우지 매직.
우후후후훗 사쿠라짱, 때는 여성상위시대랍니다. 여자가 가만히 앉아서 남자가 오길 기다렸던 머나먼 시절은 이미 바이바이예요! 리 군이 모션을 걸어오지 않는다면 사쿠라짱이 먼저 공략하면 되는 일이 아니겠나요. 리 군을 발 걸어 넘어뜨리고 올라타서 접수하세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사쿠라짱이 앞서서 침 짝발라 놓으면 문제 될 일이 없어요. 괜찮답니다. 리 군의 마음은 옛날에 사쿠라짱의 노예이니까♡ 더구나 한 번 기정사실을 만들어버리면 성실하신 분이니 목숨 걸고 등짝을 사수하겠지요. 이걸로 멀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심!
마침 내일 집이 빈다고 하셨죠? 잘된 일이에요. 좋은 일은 서두르라고 위대하신 선조님들께서도 말씀하셨어요. 케로짱은 저희 집에서 하루 맡도록 하겠으니 마음 놓고 즐기셔요♡ 케이크 바이킹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예요. 우연히도 저희 집에 아프리카 코끼리도 1초에 잠재우는 강~력한 약이 있답니다... 후후후후후후. 의상은... 아아, 마음 같아선 이런 옷도 저런 옷도 이런저런 옷도 만들어드리고 싶지만! 리 군의 경계심을 풀고 사쿠라짱의 청순한 매력을 한껏 살리기에는 교복이 제일이니까요. 섭섭하지만 거사 성공을 위하여 이번만은 꼬옥 참도록 하겠어요. 앞으로도 기회는 많고 말이죠!
아아아, 하지만 그보다도! 사쿠라짱의 연애 이벤트 Lv.99를 영상으로 보존할 수 없다니, 정말이지 너무나 너무나 아쉬운 일이에요!!
(조명은 반짝반짝 꽃들은 나풀나풀 배경은 쇼킹핑크)
"─라고, 토모요짱이."
매우 진지한 얼굴로 토모요의 대사를 한 글자 한 글자 충실히도 옮기는 사쿠라가 시야에서 휘청 흔들린다. 샤오란은 자신의 의식이 끔찍한 현실에서 강 건너 머나먼 꽃밭으로 미친듯이 도피하려는 낌새를 느꼈다.
이대로 그냥 기절해 버린다고 그를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겠으나 여기서 나 몰라라 뻗으면 다음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소년은 결사적으로 이를 악물며 흩어지려는 제정신을 악으로 긁어모았다.
"샤오란 군은 어차피 내게 정조를 바치기로 맹세한 몸이잖아? 좀 빨리 준다고 문제될 일은 없어! 틀림없이 괜찮아(絶対だいじょうぶ)!"
"미쳤냐─────────!!!!!"
리 샤오란 VS 키노모토 사쿠라, 제 3라운드 돌입.
한때 그녀가 근처에 오기만 해도 시뻘개지고 곰인형만 봐도 시뻘개지고 음성 메시지만 들어도 새애애애애빨개져 연중 자알 익은 토마토 흡사한 꼴이었던 연애질에 관한 한 극도로 숫기가 부족한 소년한테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 해서 진도를 퍼뜩퍼뜩 나가라는 건 무모한 요구다.
사쿠라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아는 것과 납득하는 것은 언제나 별개이다.
샤오란이 3년 기한으로나마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공항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해 버린 일은 아직도 떠올릴 때마다 얼굴에 불부터 나는 새로운 기억이다.
'아, 하지만 막 쩔쩔매면서 날 달래려고 기쓰는 샤오란 군은 귀여웠어. 풋.'
누가 뭐래도 명문가의 귀하디 귀한 차기 당주다. 비록 오만가지 제약을 달기는 했으되 금지옥엽 같을 후계자를 타국에 풀어준 이에란(夜蘭)이 오히려 신기하고 고마웠다. 다음에 일본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3년 후가 될지 5년 후가 될지 아예 쫑이 날지는 샤오란 하기 나름이라고 했지만, 그 점에 있어선 타악 믿고 있으니까 구석으로 쭉 밀어놔도 되겠고, 사쿠라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 또는 대책없이 태평한 - 성격답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청춘의 3년을 한껏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흑심밖에 없는 남자도 참으로 골때리지만 흑심이 너무 없는 남자친구란 생물은 더더욱 문제였다.
공자왈 맹자왈 남녀칠세부동석의 호랑이 담배 피던 고리짝에서 타임 슬립한 인간도 아니고 여자가 허락도 해줬는데 자연스럽게 손 잡기까지 꼬박 1년이 들면 이건 뭐 이미 웬수니 화상이니 까댈 깜냥조차 생기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2년만에 그나마 베이비 키스라도 해본 건 2cm 거리에서 뭐가 그리 힘겨워서 더 이상 접근을 못하는 샤오란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친 사쿠라가 덮치고 본 결과였다.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실컷 러브러브를 하고 싶은 사춘기 소녀의 핑크빛♡ 마음을 몰라주는 저놈의 야속한 둔탱이 님. 속을 푹푹 썩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샤오란이 모친과 약조한 3년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어느 새 귀국 일정이 초침 단위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사쿠라의 귀여운 뒤통수에 왕따시만한 식은땀이 데롱데롱 매달렸다.
Out of Sight, Out of Mind는 어느 시대 어느 바닥에서도 진리이거니와 이곳은 초딩의 약속이 평생을 가는 CLAMP의 미러클 월드. 이미 영혼 레벨로 사쿠라의 포로인 샤오란에게 바람피울 주변머리가 있을 리도 전무하고, 그래 까짓 5년이나 10년쯤 독수공방 못할 일도 없겠지만, 나이 먹으면서 미모와 품격이 점점 향상되는 지극 바람직한 남자친구를 시야 바깥에 방치하자니 한 여자로선 참으로 불안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본인이 바람피울 마음을 먹지 않는다 해도 꼭 희한한 구석에서 띨한 데다 위압감을 팍팍 풍기는 어머니와 드센 누나 넷과 만만찮은 사촌에 둘러싸인 여계 가족에서 자라 '여성에게 함부로 구는 놈은 뒤지게 터져도 싸다'는 관념이 은근히 골수에 콱 박힌 샤오란이 어버버하는 사이 어느 엄한 여자한테 잡혀먹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실제로도 교생에게 따먹힐 뻔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래서 사쿠라는 토모요의 조언에 따라 중대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선수필승 선즉제인. 먹히기 전에 내가 먹어라.
뭐 건 그렇고.
'다이도우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마음 속으로 암만 절규한들 여기에 없는 토모요에게 샤오란의 처절한 비명이 닿을 리가 없었다. 있어도 안 닿겠지만.
<사쿠라짱, 리 군과 어른의 단계를 밟다의 章>을 찍는답시고 오호호홋 웃으며 캠코더를 끼고 동석하는 상상만 해도 죽어버리고 싶은 사태보단 그나마 낫다고 애써 자위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상대는 <그> 다이도우지 토모요.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서 방심은 금물. 뭐니뭐니해도 21세기는 하이테크의 시대.
가령 무인도촬로봇이라던가...다이도우지 코포레이션의 인공위성이라던가...
...가능해! 다이도우지라면!!
"찬스!"
"...엣? 우왓!!!"
그런 암담한 방향으로 정신을 날렸다가 빈틈을 허용하고 말았다. 리 샤오란, 15년 인생 통틀어 세 손가락에 꼽히는 일생일대의 불찰.
첫 번째는 일본에 온 것이고 두 번째는 사쿠라에게 반해버린 일이라고도 한다.
"WOOD!!"
"뭐... 안돼 사쿠라! 하지 마!!"
마력이 카드에 폭발하듯 부딪히면서 단숨에 뭉클뭉클 번식한 덩굴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방안을 뒤덮고 샤오란의 팔을 칭칭 휘감아 바닥에 따악 고정시켰다.
시작부터 구속 플레이라니 매니악하기도 하지.
사쿠라는 상반신을 일으키곤 달성감에 충만한 얼굴로 상큼하게 이마의 땀을 씻었다.
"어휴, 힘들었다. 진작 이럴걸, 양손이 막혀 있음 아무것도 못하고."
"하긴 뭘해!! 하긴!!"
그 대답은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다.
당연한 결과로 샤오란은 키노모토 가의 마룻바닥을 다 들어먹자고 날뛰었지만, 얼마나 촘촘하고 꼼꼼하고 섬세하고 확실하게 잘 묶었던지 마력으로 절단하지 않는 한 끊기는커녕 풀기조차 불가능했다. 이날을 위해 토모요에게 빌린 풍기문란한 서적으로 사쿠라가 열과 성을 다해 학습했는지,음험한 안경변태 크로우 리드가 WOOD를 만들 때 재밌자고 그런 기능도 추가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애시당초 키노모토 사쿠라의 DNA에 표준장비된 스킬이었는지는... 걍 따지지 말자.
면목이 없는지 샤오란의 화염방사기 저리가랄 시선을 빗금 긋고 외면하는 WOOD에게 죄는 없다.
"샤오란 구~운, 이제 그만 좀 포기하지 그래─? 나 슬슬 가슴에 스크래치 나겠어~"
허걱.
너라면 가만 있겠냐고 항의하려다 샤오란이 뿌직 굳었다.
사쿠라가 네 발로 엎드려 종종종종 기어올라오는 와중에, 흐느적 늘어진 세일러 컬러 셔츠의 앞섶 틈새로 귀여운 모양새의 하얀 브래지어와 가슴선이 살짝살짝 엿보이지 않는가. 보일듯말듯 보일듯말듯, 이것이 판치라에 목숨 건 어린 아해들은 참하 아지 못하는 치랄리즘의 미학.
'우와아아앗! 보여! 다 보이겠다고!! 사쿠라 제발!!'
까놓고 말해 객관적으로 봐선 '껌딱지를 운좋게 면한 굴곡도 없고 색기도 없는'(by 키노모토 토야) 납작 가슴이지만 볼륨이 있건 없건 문제가 아니었다. 관건은 그게 <키노모토 사쿠라의 가슴>이라는 것이다.
몸싸움 와중에 아슬아슬한 선까지 기어올라간 짧은 교복 스커트 밑의 하얀 넓적다리와 쪽 뻗은 종아리가 덩달아 눈부셨다.
꿀꺽. 반사적으로 마른침을 삼켜버린 자신을 깨닫고 샤오란은 즉시 깊고 깊은 자기혐오의 늪으로 다이빙했다.
하지만 어쩔 것이여. 그게 좋아하는 사람을 눈앞에 둔 사지 멀쩡한 소년의 당연한 반응인데.
"와, 샤오란 군이 빨개졌다 파래졌다 한다. 신호등 같애. 귀여워!"
남의 속을 알 리 없는 사쿠라는 뺨을 꾹꾹 찌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저 구김살 없는 미소를 위해서라면 설령 어떠한 일이라도 꺼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그 마음은 단 1분, 단 1초도 변한 적이 없다.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아니야!!!
흥이 난 가느다란 손가락이 신기한 물건을 만지듯 요리조리 더듬다가 마침내 블레이저의 단추 위에 안착했다.
곰실곰실 블레이저의 단추 셋을 풀어내고, 넥타이의 매듭을 풀고, 셔츠를...
"────안돼애애애앳!!! 역시 혼전교섭은 안돼! 미성년은 미성년답게 건전한 교제가 제일이야! 사쿠라, 다시 생각해!"
"정말, 아까부터 꺄아꺄아 시끄럽다구 샤오란 군. 자꾸 떠들면 뽀뽀해서 막아버린다─"
"...........떠들지 않아도 막는 주제에."
"잘 아네☆"
"사쿠라────!!!"
정조가 오락가락하는 이 위급한 찰나에 행여 사쿠라가 다칠까봐 차마 마력으로는 응전 못하는 시점에서 그는 이미 글렀다.
"이제 앞으로 몇 년은 밤참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무슨 뜻인지나 알고 하는 말이야!?"
"걱정하지 마. 처음엔 좀 아파도 금방 기분 좋아진댔어. 나, 열심히 할게!"
"대체 뭘! 넌 어디의 호색 중년이냐!"
"....앗."
"?"
이쪽이 악악대거나 말거나 거품을 물거나 말거나 줄줄이 이어진 셔츠 단추 위에서 바지런히 놀리던 손을 잠시 멈추고, 사쿠라가 종알거렸다.
"미안해 샤오란 군. 나도 차암~까먹을 게 따로 있지."
"....아?"
사쿠라는 제대로 가정교육 받고 반듯이 자란 아이답게 경건히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잘 먹겠습니다."
"꺄───────!!!!!!"
그 다음은... 청보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으므로 생략한다.
다음날 아침. 지각대장으로 소문난 사쿠라가 웬일로 한 시간이나 일찍 등교했다.
생기로 반짝반짝 빛나는 탱탱한 피부와 윤기가 잘잘 흐르는 머리카락과 꽃발이 풀풀 날리는 화안한 미소로 온 교내를 훤히 밝히며 니진스키 부럽잖은 완벽한 도약 스텝을 밟고 교실로 날아가는 사쿠라의 상큼 오라에 데인 속사정 모르는 어리고 순진한 남아들이 '아아 키노모토 상... 오늘도 귀엽다...' 를 읊조리며 행복에 겨워 승천했지만 건 알 바 아니고.
와우! 오늘은 저 하늘의 해가 서쪽에서 떴나 봐? 라며 까르르 웃는 친구들과 적당히 한두 마디 교환하고, 사쿠라는 단숨에 볼품없는 학교 걸상에 앉은 폼새조차 한 폭의 초상화인 소꿉친구에게로 달려들었다.
"안녕, 토모요짱!"
"안녕하세요, 사쿠라짱."
소녀들의 아름다운 아침 인사 교환의 장면도 잠시.
토모요는 눈을 번쩍 빛내며 사쿠라의 양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사쿠라짱, 성공하셨군요. 축하드려요!"
"응, 토모요짱 말대로 했더니 다 잘됐어!"
"전, 저는 사쿠라짱이라면 틀림없이 해내실 줄로 믿고 있었어요!"
"고마워 토모요짱!"
"사쿠라짱!"
내용은 조금도 감동적이지 않지만 어쨌든 모양만은 어여쁜 소녀들의 감동의 포옹이다.
인간사란 어쨌건 눈에만 상냥하면 만사가 장땡이므로 이번에도 기냥 넘어간다.
토모요는 사쿠라의 손을 끌어당겨 옆자리에 앉혔다.
"자아 사쿠라짱, 어서 어젯밤의 무용담을 들려주셔요. 재미는 좋으셨나요?"
"응! 솔직히 나도 되게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일이 쉽더라구. 저 있지 저 있지 토모요짱, 샤오란 군, 무지무지 귀여웠어♡!"
머리 위에는 날분홍의 꽃잎이 하늘하늘, 등 뒤에는 쪼끄만 케르베로스와 유에가 손과 앞발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며 얼음과 불꽃을 난사하는 메르헨한 배경. 사쿠라는 지난 밤을 회상하며 하냐앙~모드에 잠겼다.
"기쁜 일이어요. 참, 물론 '그것'도 잊지 않고 하셨겠지요?"
"그럼! 토모요짱이 신신당부한 일을 설마 잊어버렸을까 봐. 그리구 실은, 예전부터 좀 동경했었거든.. 에헤헤헤."
"사쿠라짱도 차암~"
"근데 샤오란 군은 기절해 버렸지 뭐야."
"어머나, 기절할 정도로 감격스러우셨나 봐요. 오호호호호."
"에헤, 역시? 우후후후후."
또는 토모요가 조달한 담배(모양의 초콜릿)를 꼬나물고 팔짱도 끼고 다리도 꼬고 가진 폼은 다 잡고 반 어거지로 톤을 떨어뜨린 탄게 사쿠라 보이스로 '처음엔 다 그런 거야. 책임질 테니까 그만 울라구' 라고 시니컬하게 뇌까리는 키노모토 사쿠라라는 시각적 정신적 폭력의 한계를 더는 감당 못한 샤오란이 외부 연결 채널을 강제 차단했다고도 한다.
여전히 메르헨한 배경과는 삼천만 광년 동떨어진 시커먼 오라를 휘감고 소녀들의 웃음소리는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평소부터 예상 사망원인 0순위가 과로사인 근로 중학생이긴 하되 오늘따라 모 우주의 초즌원도 부러워할 다섯 배로 뻥튀기된 다크 서클을 눈밑에 죽죽 그은 샤오란이 난생 처음으로 지각하기까지 앞으로 58분.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
"샤오란 군이 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도 괜찮아, 난 샤오란 군을 좋아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샤오란 군이야!"
".................."
눈물을 글썽이며 애끓는 고백을 피토하듯 외치는 한 떨기 꽃과 같은 가련한 미소녀를, 정작 고백 받는 당사자는 절절한 내용이 무색하게 흰눈으로 단지 째려보고만 있었다.
조그마한 불빛(물론 GLOW다)에 둘러싸여 세계가 경탄할 박진의 연기에 도취되어 있던 사쿠라가 마침내 입술을 삐죽였다.
"샤오란 구-운, 조개처럼 입만 꾹 다물고 있음 어떡해! 이 타이밍에선 예의 명대사 '나도야, 사쿠라' 로 대답해 줘야지!"
"....아아, 그래."
샤오란이 드디어 무거운 침묵을 깼다.
"해야겠지. 하고 말고. 얼-마든지 말해주겠는데, 그 전에."
소년의 관자놀이에서 시퍼런 네거리 마크가 뿔룩 튀어나왔다.
"당장 내 위에서 내려왓──────!!!!!"
"싫・어♥"
리 샤오란(15)과 키노모토 사쿠라(14)의 피터지는 공방전, 제 2라운드로 돌입.
손과 손을 맞잡은 연인들, 이라 표현하면 듣기엔 좋지만 실은 올라타서 강제로 찍어누르려는 사쿠라의 손과 눌릴까 보냐고 악바리처럼 저항하는 샤오란의 손이 힘의 팽팽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사쿠라."
"왜애- 샤오란 군?"
"이거 POWER 카드지."
"데헷☆"
"데헷, 이 아냐 데헷이!! 카드를 사적인 이유로 남용하지 말라고, 내가 대체 몇 번...왓!!"
한순간 느슨해진 악력의 틈새를 사정없이 파고드는 파상공세로 손목을 거의 꺾여눌리기 직전까지 갔으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격렬한 혈투 끝에 샤오란은 결국 원래의 자리까지 사쿠라의 손을 밀어올리고야 말았다. POWER를 풀 스로틀로 돌리는 사쿠라와 마력 없이 막상막하로 맞붙는 샤오란의 완력이 대단한 건지 오기가 특출난 건진 상상에 맡기겠다.
기술의 악마같은 정련도로 보아 FIGHT도 살짝 쓰는 것 같지만 신경 쓰면 패배로 직결한다.
때는 가을, 해가 슬슬 저물어 가는 목요일의 오후 5시. 장소는 키노모토 가의 거실 마룻바닥.
잠깐 들러서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샤오란의 잘못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설마 집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여자친구가 애써 가르쳐놓은 호신술로 안다리후리기를 걸어올 줄 누군들 알았겠는가.
덤으로 후지타카는 출장 중. 토야는 유키토와 함께 MT로 집을 비웠고, 케르베로스는 케이크 바이킹에 눈이 멀어 토모요네 집에 가 버렸다.
평소 부탁도 안 했는데 와글와글 몰려나와 훼방 놓는 인간들은 정작 필요할 땐 코빼기도 안 비치는 법이다.
"....사쿠라."
"왜애~샤오란 군?"
"이유나 좀 알자."
"호에, 이유? 천재최강마법소녀 사쿠라짱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이유? 미안해, 타고난 거야."
".............."
"잘못했어요. 화내지 마. 진심이었어."
"...너한테 생략법을 쓴 내 잘못이지... 알았어! 다 알았으니까, 농담은 집어치우고 다짜고짜 사람 위에 올라탄 속셈이나 불어!"
".....샤오란 군."
사쿠라의 목소리가 차륵 가라앉았고, 샤오란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어차피 잡혀사는 팔자가 그렇지.
"뭐, 뭐야? ;;;"
"아는진 모르겠는데,
───우리, 손 잡는 데 1년 걸렸어."
"...윽;"
"키스에는 2년이 더 걸렸구."
"으윽!!"
"게다가 샤오란 군, 좀 있으면 홍콩으로 돌아가 버리고..."
"..............."
"일본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번엔 신음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언제 기운이 넘쳤냐는 듯 풀이 팍삭 죽어버려 보이지 않는 고양이 귀와 어깨를 추욱추욱 늘어뜨린 폼새의 사쿠라에게 몸둘 바를 모르고 무조건 발치에 엎드려 사죄하고 싶어지는 것은, 역시 반한 죄이려니.
"아, 저기, 물론 샤오란 군을 의심하는 건 아냐! 나도 언제까지고 기다릴 자신은 있어. 있지만... 역시, 이대로 헤어지기엔 허전하고... 무언가, 좀 더 확고한 증표가 있으면, 좀 더 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고... 샤오란 군도 날 생각해 준다는, 그런 증표 말야."
"사쿠라...."
"그래서, 토모요짱한테 상담을 했어."
"뭐!!!?"
방금 전까지 심장을 쿡쿡 짓누르던 죄책감이 단박에 분쇄당했다. 두렵도다 다이도우지 매직.
우후후후훗 사쿠라짱, 때는 여성상위시대랍니다. 여자가 가만히 앉아서 남자가 오길 기다렸던 머나먼 시절은 이미 바이바이예요! 리 군이 모션을 걸어오지 않는다면 사쿠라짱이 먼저 공략하면 되는 일이 아니겠나요. 리 군을 발 걸어 넘어뜨리고 올라타서 접수하세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사쿠라짱이 앞서서 침 짝발라 놓으면 문제 될 일이 없어요. 괜찮답니다. 리 군의 마음은 옛날에 사쿠라짱의 노예이니까♡ 더구나 한 번 기정사실을 만들어버리면 성실하신 분이니 목숨 걸고 등짝을 사수하겠지요. 이걸로 멀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심!
마침 내일 집이 빈다고 하셨죠? 잘된 일이에요. 좋은 일은 서두르라고 위대하신 선조님들께서도 말씀하셨어요. 케로짱은 저희 집에서 하루 맡도록 하겠으니 마음 놓고 즐기셔요♡ 케이크 바이킹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예요. 우연히도 저희 집에 아프리카 코끼리도 1초에 잠재우는 강~력한 약이 있답니다... 후후후후후후. 의상은... 아아, 마음 같아선 이런 옷도 저런 옷도 이런저런 옷도 만들어드리고 싶지만! 리 군의 경계심을 풀고 사쿠라짱의 청순한 매력을 한껏 살리기에는 교복이 제일이니까요. 섭섭하지만 거사 성공을 위하여 이번만은 꼬옥 참도록 하겠어요. 앞으로도 기회는 많고 말이죠!
아아아, 하지만 그보다도! 사쿠라짱의 연애 이벤트 Lv.99를 영상으로 보존할 수 없다니, 정말이지 너무나 너무나 아쉬운 일이에요!!
(조명은 반짝반짝 꽃들은 나풀나풀 배경은 쇼킹핑크)
"─라고, 토모요짱이."
매우 진지한 얼굴로 토모요의 대사를 한 글자 한 글자 충실히도 옮기는 사쿠라가 시야에서 휘청 흔들린다. 샤오란은 자신의 의식이 끔찍한 현실에서 강 건너 머나먼 꽃밭으로 미친듯이 도피하려는 낌새를 느꼈다.
이대로 그냥 기절해 버린다고 그를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겠으나 여기서 나 몰라라 뻗으면 다음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소년은 결사적으로 이를 악물며 흩어지려는 제정신을 악으로 긁어모았다.
"샤오란 군은 어차피 내게 정조를 바치기로 맹세한 몸이잖아? 좀 빨리 준다고 문제될 일은 없어! 틀림없이 괜찮아(絶対だいじょうぶ)!"
"미쳤냐─────────!!!!!"
리 샤오란 VS 키노모토 사쿠라, 제 3라운드 돌입.
한때 그녀가 근처에 오기만 해도 시뻘개지고 곰인형만 봐도 시뻘개지고 음성 메시지만 들어도 새애애애애빨개져 연중 자알 익은 토마토 흡사한 꼴이었던 연애질에 관한 한 극도로 숫기가 부족한 소년한테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 해서 진도를 퍼뜩퍼뜩 나가라는 건 무모한 요구다.
사쿠라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아는 것과 납득하는 것은 언제나 별개이다.
샤오란이 3년 기한으로나마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공항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해 버린 일은 아직도 떠올릴 때마다 얼굴에 불부터 나는 새로운 기억이다.
'아, 하지만 막 쩔쩔매면서 날 달래려고 기쓰는 샤오란 군은 귀여웠어. 풋.'
누가 뭐래도 명문가의 귀하디 귀한 차기 당주다. 비록 오만가지 제약을 달기는 했으되 금지옥엽 같을 후계자를 타국에 풀어준 이에란(夜蘭)이 오히려 신기하고 고마웠다. 다음에 일본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3년 후가 될지 5년 후가 될지 아예 쫑이 날지는 샤오란 하기 나름이라고 했지만, 그 점에 있어선 타악 믿고 있으니까 구석으로 쭉 밀어놔도 되겠고, 사쿠라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 또는 대책없이 태평한 - 성격답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청춘의 3년을 한껏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흑심밖에 없는 남자도 참으로 골때리지만 흑심이 너무 없는 남자친구란 생물은 더더욱 문제였다.
공자왈 맹자왈 남녀칠세부동석의 호랑이 담배 피던 고리짝에서 타임 슬립한 인간도 아니고 여자가 허락도 해줬는데 자연스럽게 손 잡기까지 꼬박 1년이 들면 이건 뭐 이미 웬수니 화상이니 까댈 깜냥조차 생기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2년만에 그나마 베이비 키스라도 해본 건 2cm 거리에서 뭐가 그리 힘겨워서 더 이상 접근을 못하는 샤오란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친 사쿠라가 덮치고 본 결과였다.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실컷 러브러브를 하고 싶은 사춘기 소녀의 핑크빛♡ 마음을 몰라주는 저놈의 야속한 둔탱이 님. 속을 푹푹 썩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샤오란이 모친과 약조한 3년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어느 새 귀국 일정이 초침 단위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사쿠라의 귀여운 뒤통수에 왕따시만한 식은땀이 데롱데롱 매달렸다.
Out of Sight, Out of Mind는 어느 시대 어느 바닥에서도 진리이거니와 이곳은 초딩의 약속이 평생을 가는 CLAMP의 미러클 월드. 이미 영혼 레벨로 사쿠라의 포로인 샤오란에게 바람피울 주변머리가 있을 리도 전무하고, 그래 까짓 5년이나 10년쯤 독수공방 못할 일도 없겠지만, 나이 먹으면서 미모와 품격이 점점 향상되는 지극 바람직한 남자친구를 시야 바깥에 방치하자니 한 여자로선 참으로 불안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본인이 바람피울 마음을 먹지 않는다 해도 꼭 희한한 구석에서 띨한 데다 위압감을 팍팍 풍기는 어머니와 드센 누나 넷과 만만찮은 사촌에 둘러싸인 여계 가족에서 자라 '여성에게 함부로 구는 놈은 뒤지게 터져도 싸다'는 관념이 은근히 골수에 콱 박힌 샤오란이 어버버하는 사이 어느 엄한 여자한테 잡혀먹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실제로도 교생에게 따먹힐 뻔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래서 사쿠라는 토모요의 조언에 따라 중대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선수필승 선즉제인. 먹히기 전에 내가 먹어라.
뭐 건 그렇고.
'다이도우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마음 속으로 암만 절규한들 여기에 없는 토모요에게 샤오란의 처절한 비명이 닿을 리가 없었다. 있어도 안 닿겠지만.
<사쿠라짱, 리 군과 어른의 단계를 밟다의 章>을 찍는답시고 오호호홋 웃으며 캠코더를 끼고 동석하는 상상만 해도 죽어버리고 싶은 사태보단 그나마 낫다고 애써 자위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상대는 <그> 다이도우지 토모요.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서 방심은 금물. 뭐니뭐니해도 21세기는 하이테크의 시대.
가령 무인도촬로봇이라던가...다이도우지 코포레이션의 인공위성이라던가...
...가능해! 다이도우지라면!!
"찬스!"
"...엣? 우왓!!!"
그런 암담한 방향으로 정신을 날렸다가 빈틈을 허용하고 말았다. 리 샤오란, 15년 인생 통틀어 세 손가락에 꼽히는 일생일대의 불찰.
첫 번째는 일본에 온 것이고 두 번째는 사쿠라에게 반해버린 일이라고도 한다.
"WOOD!!"
"뭐... 안돼 사쿠라! 하지 마!!"
마력이 카드에 폭발하듯 부딪히면서 단숨에 뭉클뭉클 번식한 덩굴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방안을 뒤덮고 샤오란의 팔을 칭칭 휘감아 바닥에 따악 고정시켰다.
시작부터 구속 플레이라니 매니악하기도 하지.
사쿠라는 상반신을 일으키곤 달성감에 충만한 얼굴로 상큼하게 이마의 땀을 씻었다.
"어휴, 힘들었다. 진작 이럴걸, 양손이 막혀 있음 아무것도 못하고."
"하긴 뭘해!! 하긴!!"
그 대답은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다.
당연한 결과로 샤오란은 키노모토 가의 마룻바닥을 다 들어먹자고 날뛰었지만, 얼마나 촘촘하고 꼼꼼하고 섬세하고 확실하게 잘 묶었던지 마력으로 절단하지 않는 한 끊기는커녕 풀기조차 불가능했다. 이날을 위해 토모요에게 빌린 풍기문란한 서적으로 사쿠라가 열과 성을 다해 학습했는지,
면목이 없는지 샤오란의 화염방사기 저리가랄 시선을 빗금 긋고 외면하는 WOOD에게 죄는 없다.
"샤오란 구~운, 이제 그만 좀 포기하지 그래─? 나 슬슬 가슴에 스크래치 나겠어~"
허걱.
너라면 가만 있겠냐고 항의하려다 샤오란이 뿌직 굳었다.
사쿠라가 네 발로 엎드려 종종종종 기어올라오는 와중에, 흐느적 늘어진 세일러 컬러 셔츠의 앞섶 틈새로 귀여운 모양새의 하얀 브래지어와 가슴선이 살짝살짝 엿보이지 않는가. 보일듯말듯 보일듯말듯, 이것이 판치라에 목숨 건 어린 아해들은 참하 아지 못하는 치랄리즘의 미학.
'우와아아앗! 보여! 다 보이겠다고!! 사쿠라 제발!!'
까놓고 말해 객관적으로 봐선 '껌딱지를 운좋게 면한 굴곡도 없고 색기도 없는'(by 키노모토 토야) 납작 가슴이지만 볼륨이 있건 없건 문제가 아니었다. 관건은 그게 <키노모토 사쿠라의 가슴>이라는 것이다.
몸싸움 와중에 아슬아슬한 선까지 기어올라간 짧은 교복 스커트 밑의 하얀 넓적다리와 쪽 뻗은 종아리가 덩달아 눈부셨다.
꿀꺽. 반사적으로 마른침을 삼켜버린 자신을 깨닫고 샤오란은 즉시 깊고 깊은 자기혐오의 늪으로 다이빙했다.
하지만 어쩔 것이여. 그게 좋아하는 사람을 눈앞에 둔 사지 멀쩡한 소년의 당연한 반응인데.
"와, 샤오란 군이 빨개졌다 파래졌다 한다. 신호등 같애. 귀여워!"
남의 속을 알 리 없는 사쿠라는 뺨을 꾹꾹 찌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저 구김살 없는 미소를 위해서라면 설령 어떠한 일이라도 꺼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그 마음은 단 1분, 단 1초도 변한 적이 없다.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아니야!!!
흥이 난 가느다란 손가락이 신기한 물건을 만지듯 요리조리 더듬다가 마침내 블레이저의 단추 위에 안착했다.
곰실곰실 블레이저의 단추 셋을 풀어내고, 넥타이의 매듭을 풀고, 셔츠를...
"────안돼애애애앳!!! 역시 혼전교섭은 안돼! 미성년은 미성년답게 건전한 교제가 제일이야! 사쿠라, 다시 생각해!"
"정말, 아까부터 꺄아꺄아 시끄럽다구 샤오란 군. 자꾸 떠들면 뽀뽀해서 막아버린다─"
"...........떠들지 않아도 막는 주제에."
"잘 아네☆"
"사쿠라────!!!"
정조가 오락가락하는 이 위급한 찰나에 행여 사쿠라가 다칠까봐 차마 마력으로는 응전 못하는 시점에서 그는 이미 글렀다.
"이제 앞으로 몇 년은 밤참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무슨 뜻인지나 알고 하는 말이야!?"
"걱정하지 마. 처음엔 좀 아파도 금방 기분 좋아진댔어. 나, 열심히 할게!"
"대체 뭘! 넌 어디의 호색 중년이냐!"
"....앗."
"?"
이쪽이 악악대거나 말거나 거품을 물거나 말거나 줄줄이 이어진 셔츠 단추 위에서 바지런히 놀리던 손을 잠시 멈추고, 사쿠라가 종알거렸다.
"미안해 샤오란 군. 나도 차암~까먹을 게 따로 있지."
"....아?"
사쿠라는 제대로 가정교육 받고 반듯이 자란 아이답게 경건히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잘 먹겠습니다."
"꺄───────!!!!!!"
그 다음은... 청보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으므로 생략한다.
다음날 아침. 지각대장으로 소문난 사쿠라가 웬일로 한 시간이나 일찍 등교했다.
생기로 반짝반짝 빛나는 탱탱한 피부와 윤기가 잘잘 흐르는 머리카락과 꽃발이 풀풀 날리는 화안한 미소로 온 교내를 훤히 밝히며 니진스키 부럽잖은 완벽한 도약 스텝을 밟고 교실로 날아가는 사쿠라의 상큼 오라에 데인 속사정 모르는 어리고 순진한 남아들이 '아아 키노모토 상... 오늘도 귀엽다...' 를 읊조리며 행복에 겨워 승천했지만 건 알 바 아니고.
와우! 오늘은 저 하늘의 해가 서쪽에서 떴나 봐? 라며 까르르 웃는 친구들과 적당히 한두 마디 교환하고, 사쿠라는 단숨에 볼품없는 학교 걸상에 앉은 폼새조차 한 폭의 초상화인 소꿉친구에게로 달려들었다.
"안녕, 토모요짱!"
"안녕하세요, 사쿠라짱."
소녀들의 아름다운 아침 인사 교환의 장면도 잠시.
토모요는 눈을 번쩍 빛내며 사쿠라의 양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사쿠라짱, 성공하셨군요. 축하드려요!"
"응, 토모요짱 말대로 했더니 다 잘됐어!"
"전, 저는 사쿠라짱이라면 틀림없이 해내실 줄로 믿고 있었어요!"
"고마워 토모요짱!"
"사쿠라짱!"
내용은 조금도 감동적이지 않지만 어쨌든 모양만은 어여쁜 소녀들의 감동의 포옹이다.
인간사란 어쨌건 눈에만 상냥하면 만사가 장땡이므로 이번에도 기냥 넘어간다.
토모요는 사쿠라의 손을 끌어당겨 옆자리에 앉혔다.
"자아 사쿠라짱, 어서 어젯밤의 무용담을 들려주셔요. 재미는 좋으셨나요?"
"응! 솔직히 나도 되게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일이 쉽더라구. 저 있지 저 있지 토모요짱, 샤오란 군, 무지무지 귀여웠어♡!"
머리 위에는 날분홍의 꽃잎이 하늘하늘, 등 뒤에는 쪼끄만 케르베로스와 유에가 손과 앞발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며 얼음과 불꽃을 난사하는 메르헨한 배경. 사쿠라는 지난 밤을 회상하며 하냐앙~모드에 잠겼다.
"기쁜 일이어요. 참, 물론 '그것'도 잊지 않고 하셨겠지요?"
"그럼! 토모요짱이 신신당부한 일을 설마 잊어버렸을까 봐. 그리구 실은, 예전부터 좀 동경했었거든.. 에헤헤헤."
"사쿠라짱도 차암~"
"근데 샤오란 군은 기절해 버렸지 뭐야."
"어머나, 기절할 정도로 감격스러우셨나 봐요. 오호호호호."
"에헤, 역시? 우후후후후."
또는 토모요가 조달한 담배(모양의 초콜릿)를 꼬나물고 팔짱도 끼고 다리도 꼬고 가진 폼은 다 잡고 반 어거지로 톤을 떨어뜨린 탄게 사쿠라 보이스로 '처음엔 다 그런 거야. 책임질 테니까 그만 울라구' 라고 시니컬하게 뇌까리는 키노모토 사쿠라라는 시각적 정신적 폭력의 한계를 더는 감당 못한 샤오란이 외부 연결 채널을 강제 차단했다고도 한다.
여전히 메르헨한 배경과는 삼천만 광년 동떨어진 시커먼 오라를 휘감고 소녀들의 웃음소리는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평소부터 예상 사망원인 0순위가 과로사인 근로 중학생이긴 하되 오늘따라 모 우주의 초즌원도 부러워할 다섯 배로 뻥튀기된 다크 서클을 눈밑에 죽죽 그은 샤오란이 난생 처음으로 지각하기까지 앞으로 58분.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주인장 당분간 도망갑니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속의 속도로 내빼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