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알라고 떠들어댔다시피 나는 그랜드 피날레 취향의 앵스트 서커이나 더블오는 내 근처에 이미 악마와 사탄님들이 부글거리시므로 (리린 님, 어서 5편을... 글썽글썽) 본분대로 썰렁하고도 시시하며 정체성도 불분명한 알 수 없는 패러디에 착수하였다. 이하는 며칠 전부터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떠들어댄 바와 같이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더블오의 크로스오버. 이것 때문에 <지혜의 일곱 기둥>까지 챙겨 읽었다는 건 비밀이다(읽었는데 이 모양이니 이년아;)
중간중간 시대착오적인 표현이 꽤 있는데 어차피 크로스오버이므로 과감하게 역사를 왜곡했다. 그게 무슨 면죄부라도 되느냐고? 따지지 말라니까요 -_-;;;
내가 늘 그렇지만 문재를 기대하시면 웁니다.
2013년 5월 13일 추가. 5년 전에 연재를 시작한 주제에 이제야 웹상에서 마무리지을 마음을 먹은 나의 경이로운 게으름엔 그냥 말을 아끼겠다능. 흐미 근데 이제 보니 원문을 정말로 딱 5년 전인 2008년 5월 13일에 작성했을세!?
Chapter 1. 사막에서는 물 한 방울도 귀중한 보고
Chapter 2.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뻘소리는 작작하고 그냥 건너라
Chapter 3. 무모함이 도를 넘으면 귀신도 질린대더라
Chapter 4. 남자의 헌팅 대사는 예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다
Chapter 5. 바보와 가위는 쓰기 나름
Chapter 6. 잠자는 공주는 원래 변태성욕자의 이야기라죠
Chapter 7. 애들은 모르는 사이에 알아서 자란다
Chapter 8. 참을성도 삼세 번까지
Chapter 9. 나쁜 일은 언제나 한꺼번에 터진다
Chapter 10.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데 정말이긴 한 거냐
Epilogue.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Chapter 1. 사막에서는 물 한 방울도 귀중한 보고
알렐루야 아우다 아부 타이(...)를 건드리고파 죽겠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프린스 파이살 티에리아 빈 알 후세인(...)이 먼저지 말입니다. 네푸드 사막도 건너야 하지 말입니다.
뭔가 허접한 크로스오버 주제에 인생 최초의 연재물이 될 것 같지 말입니다.
...Holy shit...!
거기 잊을 만하면 재촉하신 H모 님, 저랑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이 봐 주시지 않음 울 겁니다. 으흐흐흐흐흑.
(정말 상영회라도 할까요?)
2013년 5월 13일 한 줄 더 추가. 정말로 인생 최초의 연재물이 되었다'_`
닐 로렌스 디란디 중위는 푹 젖은 미역 모양 라마호의 난간에 반으로 접혀 걸려 있었다. 조국의 축축한 공기가 그리웠다. 우중충한 하늘이 그리웠다. 눈이 닿는 곳 어디에도 있는 싱싱한 녹색이 그리웠다. 펍에서 꺾는 맥주 한 잔이 절실하게 그리웠다. 매쉬드 포테이토가 그리웠다. 무엇보다 소매를 걷고 카이로의 육군병원 곳곳을 바쁘게 활보하고 있을 라일의 쌀쌀맞은 튕김이 죽도록 그리웠다.
원망스럽게 드높기만 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종족과 성별에 가림 없이 누구와도 쉽사리 친근해지며 곤란한 이를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그예 끼어들고 마는 광대한 오지랖은 고국에서나 여기서나 쌤쌤인지라 덕택에 아랍어에도 풍속에도 정황에도 빠삭하며 지인도 많다는 자부는 있었지만, 설마 사이드 이오리아 후세인 빈 알리의 아들들 중 누가 제일 쓸만하겠는지 직접 가늠하고 오라는 명령을 하달받을 줄은,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일개 스나이퍼일 뿐이라는 소심한 항의는 비정하게도 동생을 인질로 잡은 마네킨 국장의 가차없는 협박에 묵살당했고, 끝까지 좋은 얼굴을 짓지 않았지만 하여간 동의는 한 머레이 장군의 인가를 받아 언젠가 그 오지랖이 니 인생에 피박 씌울 거라던 랏세의 예언을 곱씹으며 준비된 배에 오르는 길밖에 닐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뭐 좋다. 군대는 어차피 상명하복이다. 위에서 기라면 기고 까라면 까는 법이다. 동행을 자청하고 나선 ─ 필경은 유람이 목적인 ─ 쿠죠 참사관은 초장부터 위스키병을 한 짐 지고 배를 타더니 에헤라디야 병나발을 분 끝에 곤죽이 되어 갑판 의자에 뻐드러져 팔자 좋게 자고 있지만 어차피 도움 따위 바라지도 않았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조금 고역이긴 해도 카이로도 무덥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수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황홀하게 아름답고 수에즈 운하는 제법 근사했다. 미스터리물은 서양 문명의 정점이라 입에 거품을 물고 주장하는 한편 살아생전 10만 권은 채우고자 가열차게 달리는 미스터리 광빠 아이즈 엘 마스리와의 렉스 스타우트 토론도 즐거웠다. 비록 엘 마스리가 어쩐지 너무 자주 몸을 바싹 기울여 붙어 앉거나 짐짓 헛기침을 하며 넓적다리를 짚는 것이 후덥지근했으나, 예의바르게 검지와 중지를 잡고 바깥쪽으로 살짝 꺾어주었으므로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만하면 됐지 뭐가 더 아쉬워서 빨다 만 세탁물처럼 구겨져 있느냐 구박당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원래 팔불출 엉아는 손닿는 곳에 동생이 없으면 정기적으로 우울해지는 법이고, 더하여 스파이물을 너무 읽고 007 영화나 보며 황량한 사춘기를 보낸 게 틀림없는 머레이 장군이 이것은 극비 임무다 → 극비 임무에 임하는 자에게는 코드네임이 필수다 → 고로 자네에게도 코드네임이 있어야 한다는 괴이한 삼단논법에 의거해 즉석에서 일필휘지로 지어준 이름이 나흘 여정으로 다 삭이기에는 좀 많이 충격적이었던 까닭이다.
록온 스트라토스라니.
록온 스트라토스라니!
록온 스트라토스라니!!
록온 스트라토스라니!!!
……옳지, 앞으로 열 번만 더 반복하면 훨씬 나아지겠다. 계속 읊어대서 그런지 이젠 약간은 멋지게도 들리는 것 같아! 랄까 나름 그럴싸하지 않아? 오히려 폼나지 않아? 제법 간지나지 않아? 야 누구야 머릿속 한 구석에서 촌스럽다고 한 놈! 과거의 선인들이 삼인성호라 하였으니 에고와 슈퍼 에고와 리비도가 단결하여 멋지다고 믿으면 무조건 멋져지는 거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라니까?
목하, 절찬 자기 세뇌 중이었다.
O형의 낙천성은 하늘을 찌르고 반복 학습의 효과는 절대적이다. 주역의 보다 빠른 적응을 위해 앞으로의 표기는 록온 스트라토스로 통일하겠다.
라일아, 형은 버거운 임무와 이젠 3/4 가량만 망측하게 느껴지는 코드네임에도 꺾이지 않고 힘내고 있단다. 난간에 엉겨붙어 큐트한 주황색의 휴대폰 바탕화면에 깐 동생의 사랑스런 ─ 그러나 눈이 제대로 붙은 자는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노골적으로 짜증내고 있는 ─ 사진에 부비부비를 하며 충전 겸사 청승을 떨고 있을제, 역시 장군의 괴이한 삼단논법과 콩은 나눠먹고 매는 같이 맞는다는 원칙에 의하여 세 나라 성씨를 대충 풀 발라붙인 듯한 코드네임을 덤태기로 얻어온 리사 쿠죠 참사관, 아니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는 눈을 부비면서 나른한 발을 들어 록온의 등부터 냅다 걷어찬다.
"동생 사진은 대강 좀 핥아요. 남이 보면 정신나간 나르시스튼 줄 알겠네."
"시끄럽습니다 이 주정뱅이. 자려면 들어가서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자요. 대체 누가 곯아떨어진 미스 스메라기를 들쳐업고 헛둘헛둘 운반해야 하는지 알기나 합니까?"
천금보다 보배로운 사진들이 빼곡히 담긴 큐티한 하로 휴대폰이 하마터면 홍해에 거꾸로 다이빙을 할 뻔했으므로 매몰찬 반응이야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홧김에 '가볍기나 하면 내 말을 안 해요' 까지 한숨에 뱉고 록온은 즉각 후회했다.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는 안전지대와 지뢰지대로 나뉘어 있으며, 특히 묘령의 여성 상대로는 목숨 걸고 밟기를 피해야 할 지뢰가 있는 법이고 소리가 난다고 다 주둥이는 아닌 것이다.
록온은 식은땀을 삐질거리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어 그게 말이죠, 미스 스메라기, 방금 전은 실수였어요 실수……제발 병을 내려놓고 눈을 번들거리면서 다가오지 말아줄래요 진짜 무섭……아니 저기, 입술은 왜 핥고 겉옷 단추는 왜 끄릅으아아아아아아아악!!!?"
본서는 전연령가이므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말할 수 없다.
‡ ‡ ‡ ‡ ‡
이렇듯 우여곡절이 매우 많았지만, 라마호는 나흘만에 무사히 목적지인 지다에 도착했다. 때마침 시찰을 나온 장남 네시브 리본즈 이븐 후세인과는 쉽게 접촉할 수 있었고, 라베그에 주둔한 차남 자이드 리제네 이븐 후세인과의 접선도 어렵잖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애시당초 뭔가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스메라기는 아니나다를까 라베그에 이르러 증상이 어째 급성알콜중독과 매우 흡사한 풍토병으로 뻗어버렸다. 헛소리로 '술을 위해 살고 술을 위해 죽으니 그것이 운명'으로 시작해 소주에서 빼갈까지 갖은 술 이름을 주워섬기는 스메라기의 이마에 서비스로 물수건이나마 얹어주면서 록온은 지난 며칠간의 채점 결과를 되짚어보았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네시브야말로 아랍 반란의 핵심 두뇌라고 했다. 그를 겹겹으로 둘러싼 색색의 열성적인 빠돌빠순, 흠흠, 실례했습니다. 추종자들은 네시브가 얼마나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위정자이며 빈틈없는 정치가인지를 귀가 아프도록 역설했지만 록온이 보기에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는 예언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반듯하고 냉정하고 신중하고 복잡했으며 지나친 선민의식에 쩔어 있었다. 특히 고인이 된 부친에 대한 참으로 강렬한 애증은 가족 문제에선 여러 가지로 남말할 때가 아닌 록온조차 꽤나 민망했다. 딴 건 몰라도 한밤중에 흰 시트를 말아감고 어슬렁거리다 부친의 거대한 초상화를 손가락질하며 크게 웃는 짓만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칼같이 정확한 문법과 우아한 발음의 옥스포드 영어를 구사하는 대신 핵심을 자꾸 슬쩍슬쩍 빗겨가며 진정한 의도를 감추고 말을 삼가며 주변의 풀숲만 줄창 두드려대는 화법도 문제였다. 싸우는 예언자는 행동은 많고 말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그러나 네시브와의 대화는 언제나 모호한 말장난으로 시작해 애매한 얼버무림으로 끝났다. 그건 흡사 울름의 요한 갬볼푸티에서 끝내도 될 것을 조낸 성실하게도 <울름의 요한 갬볼푸티 드 봉 아우스프린 슈플렌던 쉴리터 크레스그렌본 프라이드 디거 딩글 댕글 동글 덩글 버스타인 폰 내커 스래셔 애플 뱅거 호로비츠 티콜른식 그랜더 노티 스펠팅클 그랭들리히 크럼블마이어 스펠터와셔 커스틀리히 힘블라이즌 반바근 쿠텐나븐 비트 아인 넌버서 브랫워스클 게슈퍼튼 밋츠 와이맥히 루버 훈트스푸트 검버라버 쇤당커 캅스플라이쉬 미틀러 아우셔 폰 하우콥트>2)를 죄다 읊어대던 어딘가의 바보들과도 같았다. 지다에 체류한 이틀 사이 아랍혁명전쟁과 영국의 정책과 터키의 좀스러움으로 시작해 뭔가 하렘이 어쩌고 미인이 어쩌고로도 쉴새없이 떠들기는 했으되 절반도 채 알아듣지 못했다. 딴 생각도 약간 하고 있긴 했다.
자이드는 논외였다. 니트를 데리고 뭘 하랴.
사이드가 급서한 이후 아랍혁명은 몇 달째 고인 물처럼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사실상 그 원인의 대부분은 각자의 주둔지에서 미적거리며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네시브와 자이드였다. 외진 곳에서 삽질도 마다하지 않고 비록 눈에 확 뜨이진 않아도 어쨌든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이는, 형들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한 존재인 파이살 티에리아 이븐 후세인 왕자뿐이었다. 형제 중에 사막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자,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자질을 숨긴 자가 있다면 아마도 파이살일 터였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고 모든 동화가 그렇듯, 극적인 운명의 반전을 가져오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장 나약한 자, 가장 무력한 자, 형들에게 가려 채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있던 막내이다.
필경 그의 여정은 파이살에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록온은 예감했다.
끝도 없이 끙끙대는 스메라기가 얼마간 낫기를 기다리가 사흘째에 기어코 지쳐버린 록온은 그녀를 지다의 영사관에 도로 던져넣고 혼자 파이살 왕자를 찾으러 떠날 준비에 착수했다. 혁명은커녕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떨쳐 일어나 엉덩이를 까고 캉캉춤을 추는 세상 종말의 날에조차 독일 음악을 듣고 영국 책을 읽으며 우아하게 니트질이나 할 듯한 자이드는, 그래도 메디나 반경 300마일 이내 어딘가에 텐트 치고 짱박혀 있다는 파이살 앞으로 소개장을 써주기는 했다. 혹여나 싶어 정확한 위치를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록온에게, 자이드는 조소와 위로가 반반씩 뒤섞인 신비로운 표정으로 단지 훗하고 웃어보였다.
모르나 보다.
‡ ‡ ‡ ‡ ‡
테하마 사막에 발을 들인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흘러내리는 땀조차 말라붙고 말 열사의 지옥은 힘겨웠고 밤이면 밤마다 쓸고 닦고 부벼도 곱게 싸서 모셔온 파트너 PSG-1의 구석구석에 꼬여드는 알알이 모래는 의욕을 분지르기 딱 좋았으며 낙타에 올라앉아 흔들리자니 흡사 널판으로 엉덩이를 두들겨맞는 기분이었지만, O형의 낙천성은 이런 국면에서 그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이드가 덤으로 딸려준 안내인 타파스는 친절했다. 실은 다소 지나치게 친절했다.
눈이 마주치면 어쩐지 가무잡잡한 얼굴을 발갛게 붉힌다거나 옷을 갈아입으려 하면 곁눈질로 열심히 흘금거린다거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몇 가지 없지는 않았으나, 호기심에 가득한 눈길과 터키 첩자들의 수작을 용케 피해가며 알음알음으로 파이살 왕자의 캠프가 자리했다는 와디 사프라까지 하루 거리인 마스투라 우물에 이르러 타파스가 정성껏 길은 물을 잔에 따라 내밀었을 때 록온은 기꺼이 고맙게 받아들었다. 하지미는 미인을 찬미한다는 수줍은 한 마디는 틀림없이 더위에 지쳐 들은 환청이리라.
그리하여 잔을 입술에 가져가려는데,
두두두두두두두두
"……엉?"
두두두두두두두두
숫제 모래폭풍을 일으키며 까마득한 지평선 너머에서 돌진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격수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눈이다. 가물가물한 아지랑이 사이로 새까만 로브를 빈틈없이 두른 호리호리한 실루엣을 포착하기란 그닥 어렵지 않았다. 굳이 판별할 필요도 없었다. 시속 50마일은 가뿐히 넘을 무지막지한 속도로 접근해오는 상대는 금세 제 모습을 찾았다.
낙타에 올라앉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우물에서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세운 낙타의 무릎을 굽히지도 않은 채 능숙한 몸짓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키는 약 5피트 4인치. 체중은 대략 111에서 114파운드. 골격으로 추정해 연령은 열 셋 가량. 많아봤자 열 다섯. 전형적인 아랍계의 가무잡잡한 피부. 붉은 기가 살짝 도는 갈색 눈동자. 표정은 없지만 나름 귀여운 얼굴. 몇 년 더 지나면 그럴싸한 미남으로 발전할 생김새. 확고하고도 단단한 눈빛. 작고 가늘어 뵈는 체구와는 달리 검은 로브 밑에 숨겨진 꽉 짜인 근육. 걷는 동작에서조차 일말의 허점이 보이지 않는 몸놀림은 필시 고도로 단련된 전사의 것이었다. 여기까지의 관찰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5초, 뒤이어 저격 상황을 상정한 면밀한 시뮬레이션 및 효율적인 각도의 계산, 실패 시의 대응을 기계적으로 산출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도록 훈련받은 저격수이다.
그럼에도 반응이 늦어진 이유는, 허리에 찬 무식하게 큰 시미타르 두 자루와 등에 이고 진 같은 길이의 석 자루와 허리띠에 찔러넣은 단도 두 자루까지 도합 일곱 자루의 어마어마한 중무장에 록온도 나름 기가 질렸기 때문이었다. 창졸간에 모래폭풍을 뒤집어쓰고 쿨럭콜록대다 숨넘어갈 뻔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아니라면 아니다.
옆에서 숨소리도 없이 굳어 있던 타파스가 난데없이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며칠 전 록온이 선물로 준 피스톨을 품에서 뽑아들었다. 여전히 쿨럭이면서도 기겁하여 말리고 나서려 했을 때 소년은 이미 타파스의 코앞으로 쇄도해 있었다.
피스톨을 쥔 오른손의 손목을 내려베며 1격. 오른쪽 옆구리부터 왼쪽 어깨에 걸쳐 2격.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까지 3격. 오른발에 체중을 실어 한 바퀴 돌며 그 반동으로 허리에 4격. 칼날을 세워 가랑이 사이에서부터 머리까지 쳐올리며 5격. 단도를 뽑아 심장과 폐에 동시에 박으며 6격 및 7격. 과잉 칼질이 차라리 예술적인 세븐 소드(Seven Swords)였다.
정줄을 좀만 더 놓고 있었으면 영락없이 오오 감탄하며 기립박수를 칠 뻔한 록온을 향해 토막난 타파스를 가리키면서 소년은 엄숙히도 말했다.
"물을 훔쳤다. (He stole water.)"
한국어로는 두 마디, 영어로도 세 마디.
그걸로 설명 다 됐다 여겼는지 소년은 벙찐 록온을 내팽개치고 한 동작으로 낙타에 뛰어올라 질풍같이 사라졌고, 뒤늦게 정줄 잡은 록온의 비명은 벌써 지평선 저편으로 가물가물해진 소년에게 닿지 못한 채 사막의 후끈한 공기만을 공허하게 뒤흔들었다.
"야, 기다려 임마! 적어도 육하원칙 갖춘 설명은 하고 가──────!! 어이이이이이!!!!"
하리스 부족의 셰리프 세츠나 소란 이븐 엘 이브라힘과 닐 L. 디란디 혹은 록온 스트라토스의 운명적이라면 운명적일 그러나 실상은 황당한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원망스럽게 드높기만 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종족과 성별에 가림 없이 누구와도 쉽사리 친근해지며 곤란한 이를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그예 끼어들고 마는 광대한 오지랖은 고국에서나 여기서나 쌤쌤인지라 덕택에 아랍어에도 풍속에도 정황에도 빠삭하며 지인도 많다는 자부는 있었지만, 설마 사이드 이오리아 후세인 빈 알리의 아들들 중 누가 제일 쓸만하겠는지 직접 가늠하고 오라는 명령을 하달받을 줄은,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일개 스나이퍼일 뿐이라는 소심한 항의는 비정하게도 동생을 인질로 잡은 마네킨 국장의 가차없는 협박에 묵살당했고, 끝까지 좋은 얼굴을 짓지 않았지만 하여간 동의는 한 머레이 장군의 인가를 받아 언젠가 그 오지랖이 니 인생에 피박 씌울 거라던 랏세의 예언을 곱씹으며 준비된 배에 오르는 길밖에 닐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뭐 좋다. 군대는 어차피 상명하복이다. 위에서 기라면 기고 까라면 까는 법이다. 동행을 자청하고 나선 ─ 필경은 유람이 목적인 ─ 쿠죠 참사관은 초장부터 위스키병을 한 짐 지고 배를 타더니 에헤라디야 병나발을 분 끝에 곤죽이 되어 갑판 의자에 뻐드러져 팔자 좋게 자고 있지만 어차피 도움 따위 바라지도 않았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조금 고역이긴 해도 카이로도 무덥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수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황홀하게 아름답고 수에즈 운하는 제법 근사했다. 미스터리물은 서양 문명의 정점이라 입에 거품을 물고 주장하는 한편 살아생전 10만 권은 채우고자 가열차게 달리는 미스터리 광빠 아이즈 엘 마스리와의 렉스 스타우트 토론도 즐거웠다. 비록 엘 마스리가 어쩐지 너무 자주 몸을 바싹 기울여 붙어 앉거나 짐짓 헛기침을 하며 넓적다리를 짚는 것이 후덥지근했으나, 예의바르게 검지와 중지를 잡고 바깥쪽으로 살짝 꺾어주었으므로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만하면 됐지 뭐가 더 아쉬워서 빨다 만 세탁물처럼 구겨져 있느냐 구박당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원래 팔불출 엉아는 손닿는 곳에 동생이 없으면 정기적으로 우울해지는 법이고, 더하여 스파이물을 너무 읽고 007 영화나 보며 황량한 사춘기를 보낸 게 틀림없는 머레이 장군이 이것은 극비 임무다 → 극비 임무에 임하는 자에게는 코드네임이 필수다 → 고로 자네에게도 코드네임이 있어야 한다는 괴이한 삼단논법에 의거해 즉석에서 일필휘지로 지어준 이름이 나흘 여정으로 다 삭이기에는 좀 많이 충격적이었던 까닭이다.
록온 스트라토스라니.
록온 스트라토스라니!
록온 스트라토스라니!!
록온 스트라토스라니!!!
……옳지, 앞으로 열 번만 더 반복하면 훨씬 나아지겠다. 계속 읊어대서 그런지 이젠 약간은 멋지게도 들리는 것 같아! 랄까 나름 그럴싸하지 않아? 오히려 폼나지 않아? 제법 간지나지 않아? 야 누구야 머릿속 한 구석에서 촌스럽다고 한 놈! 과거의 선인들이 삼인성호라 하였으니 에고와 슈퍼 에고와 리비도가 단결하여 멋지다고 믿으면 무조건 멋져지는 거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라니까?
목하, 절찬 자기 세뇌 중이었다.
O형의 낙천성은 하늘을 찌르고 반복 학습의 효과는 절대적이다. 주역의 보다 빠른 적응을 위해 앞으로의 표기는 록온 스트라토스로 통일하겠다.
라일아, 형은 버거운 임무와 이젠 3/4 가량만 망측하게 느껴지는 코드네임에도 꺾이지 않고 힘내고 있단다. 난간에 엉겨붙어 큐트한 주황색의 휴대폰 바탕화면에 깐 동생의 사랑스런 ─ 그러나 눈이 제대로 붙은 자는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노골적으로 짜증내고 있는 ─ 사진에 부비부비를 하며 충전 겸사 청승을 떨고 있을제, 역시 장군의 괴이한 삼단논법과 콩은 나눠먹고 매는 같이 맞는다는 원칙에 의하여 세 나라 성씨를 대충 풀 발라붙인 듯한 코드네임을 덤태기로 얻어온 리사 쿠죠 참사관, 아니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는 눈을 부비면서 나른한 발을 들어 록온의 등부터 냅다 걷어찬다.
"동생 사진은 대강 좀 핥아요. 남이 보면 정신나간 나르시스튼 줄 알겠네."
"시끄럽습니다 이 주정뱅이. 자려면 들어가서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자요. 대체 누가 곯아떨어진 미스 스메라기를 들쳐업고 헛둘헛둘 운반해야 하는지 알기나 합니까?"
천금보다 보배로운 사진들이 빼곡히 담긴 큐티한 하로 휴대폰이 하마터면 홍해에 거꾸로 다이빙을 할 뻔했으므로 매몰찬 반응이야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홧김에 '가볍기나 하면 내 말을 안 해요' 까지 한숨에 뱉고 록온은 즉각 후회했다.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는 안전지대와 지뢰지대로 나뉘어 있으며, 특히 묘령의 여성 상대로는 목숨 걸고 밟기를 피해야 할 지뢰가 있는 법이고 소리가 난다고 다 주둥이는 아닌 것이다.
록온은 식은땀을 삐질거리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어 그게 말이죠, 미스 스메라기, 방금 전은 실수였어요 실수……제발 병을 내려놓고 눈을 번들거리면서 다가오지 말아줄래요 진짜 무섭……아니 저기, 입술은 왜 핥고 겉옷 단추는 왜 끄릅으아아아아아아아악!!!?"
본서는 전연령가이므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말할 수 없다.
이렇듯 우여곡절이 매우 많았지만, 라마호는 나흘만에 무사히 목적지인 지다에 도착했다. 때마침 시찰을 나온 장남 네시브 리본즈 이븐 후세인과는 쉽게 접촉할 수 있었고, 라베그에 주둔한 차남 자이드 리제네 이븐 후세인과의 접선도 어렵잖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애시당초 뭔가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스메라기는 아니나다를까 라베그에 이르러 증상이 어째 급성알콜중독과 매우 흡사한 풍토병으로 뻗어버렸다. 헛소리로 '술을 위해 살고 술을 위해 죽으니 그것이 운명'으로 시작해 소주에서 빼갈까지 갖은 술 이름을 주워섬기는 스메라기의 이마에 서비스로 물수건이나마 얹어주면서 록온은 지난 며칠간의 채점 결과를 되짚어보았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네시브야말로 아랍 반란의 핵심 두뇌라고 했다. 그를 겹겹으로 둘러싼 색색의 열성적인 빠돌빠순, 흠흠, 실례했습니다. 추종자들은 네시브가 얼마나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위정자이며 빈틈없는 정치가인지를 귀가 아프도록 역설했지만 록온이 보기에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는 예언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반듯하고 냉정하고 신중하고 복잡했으며 지나친 선민의식에 쩔어 있었다. 특히 고인이 된 부친에 대한 참으로 강렬한 애증은 가족 문제에선 여러 가지로 남말할 때가 아닌 록온조차 꽤나 민망했다. 딴 건 몰라도 한밤중에 흰 시트를 말아감고 어슬렁거리다 부친의 거대한 초상화를 손가락질하며 크게 웃는 짓만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칼같이 정확한 문법과 우아한 발음의 옥스포드 영어를 구사하는 대신 핵심을 자꾸 슬쩍슬쩍 빗겨가며 진정한 의도를 감추고 말을 삼가며 주변의 풀숲만 줄창 두드려대는 화법도 문제였다. 싸우는 예언자는 행동은 많고 말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그러나 네시브와의 대화는 언제나 모호한 말장난으로 시작해 애매한 얼버무림으로 끝났다. 그건 흡사 울름의 요한 갬볼푸티에서 끝내도 될 것을 조낸 성실하게도 <울름의 요한 갬볼푸티 드 봉 아우스프린 슈플렌던 쉴리터 크레스그렌본 프라이드 디거 딩글 댕글 동글 덩글 버스타인 폰 내커 스래셔 애플 뱅거 호로비츠 티콜른식 그랜더 노티 스펠팅클 그랭들리히 크럼블마이어 스펠터와셔 커스틀리히 힘블라이즌 반바근 쿠텐나븐 비트 아인 넌버서 브랫워스클 게슈퍼튼 밋츠 와이맥히 루버 훈트스푸트 검버라버 쇤당커 캅스플라이쉬 미틀러 아우셔 폰 하우콥트>2)를 죄다 읊어대던 어딘가의 바보들과도 같았다. 지다에 체류한 이틀 사이 아랍혁명전쟁과 영국의 정책과 터키의 좀스러움으로 시작해 뭔가 하렘이 어쩌고 미인이 어쩌고로도 쉴새없이 떠들기는 했으되 절반도 채 알아듣지 못했다. 딴 생각도 약간 하고 있긴 했다.
자이드는 논외였다. 니트를 데리고 뭘 하랴.
사이드가 급서한 이후 아랍혁명은 몇 달째 고인 물처럼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사실상 그 원인의 대부분은 각자의 주둔지에서 미적거리며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네시브와 자이드였다. 외진 곳에서 삽질도 마다하지 않고 비록 눈에 확 뜨이진 않아도 어쨌든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이는, 형들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한 존재인 파이살 티에리아 이븐 후세인 왕자뿐이었다. 형제 중에 사막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자,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자질을 숨긴 자가 있다면 아마도 파이살일 터였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고 모든 동화가 그렇듯, 극적인 운명의 반전을 가져오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장 나약한 자, 가장 무력한 자, 형들에게 가려 채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있던 막내이다.
필경 그의 여정은 파이살에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록온은 예감했다.
끝도 없이 끙끙대는 스메라기가 얼마간 낫기를 기다리가 사흘째에 기어코 지쳐버린 록온은 그녀를 지다의 영사관에 도로 던져넣고 혼자 파이살 왕자를 찾으러 떠날 준비에 착수했다. 혁명은커녕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떨쳐 일어나 엉덩이를 까고 캉캉춤을 추는 세상 종말의 날에조차 독일 음악을 듣고 영국 책을 읽으며 우아하게 니트질이나 할 듯한 자이드는, 그래도 메디나 반경 300마일 이내 어딘가에 텐트 치고 짱박혀 있다는 파이살 앞으로 소개장을 써주기는 했다. 혹여나 싶어 정확한 위치를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록온에게, 자이드는 조소와 위로가 반반씩 뒤섞인 신비로운 표정으로 단지 훗하고 웃어보였다.
모르나 보다.
테하마 사막에 발을 들인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흘러내리는 땀조차 말라붙고 말 열사의 지옥은 힘겨웠고 밤이면 밤마다 쓸고 닦고 부벼도 곱게 싸서 모셔온 파트너 PSG-1의 구석구석에 꼬여드는 알알이 모래는 의욕을 분지르기 딱 좋았으며 낙타에 올라앉아 흔들리자니 흡사 널판으로 엉덩이를 두들겨맞는 기분이었지만, O형의 낙천성은 이런 국면에서 그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이드가 덤으로 딸려준 안내인 타파스는 친절했다. 실은 다소 지나치게 친절했다.
눈이 마주치면 어쩐지 가무잡잡한 얼굴을 발갛게 붉힌다거나 옷을 갈아입으려 하면 곁눈질로 열심히 흘금거린다거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몇 가지 없지는 않았으나, 호기심에 가득한 눈길과 터키 첩자들의 수작을 용케 피해가며 알음알음으로 파이살 왕자의 캠프가 자리했다는 와디 사프라까지 하루 거리인 마스투라 우물에 이르러 타파스가 정성껏 길은 물을 잔에 따라 내밀었을 때 록온은 기꺼이 고맙게 받아들었다. 하지미는 미인을 찬미한다는 수줍은 한 마디는 틀림없이 더위에 지쳐 들은 환청이리라.
그리하여 잔을 입술에 가져가려는데,
두두두두두두두두
"……엉?"
두두두두두두두두
숫제 모래폭풍을 일으키며 까마득한 지평선 너머에서 돌진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격수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눈이다. 가물가물한 아지랑이 사이로 새까만 로브를 빈틈없이 두른 호리호리한 실루엣을 포착하기란 그닥 어렵지 않았다. 굳이 판별할 필요도 없었다. 시속 50마일은 가뿐히 넘을 무지막지한 속도로 접근해오는 상대는 금세 제 모습을 찾았다.
낙타에 올라앉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우물에서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세운 낙타의 무릎을 굽히지도 않은 채 능숙한 몸짓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키는 약 5피트 4인치. 체중은 대략 111에서 114파운드. 골격으로 추정해 연령은 열 셋 가량. 많아봤자 열 다섯. 전형적인 아랍계의 가무잡잡한 피부. 붉은 기가 살짝 도는 갈색 눈동자. 표정은 없지만 나름 귀여운 얼굴. 몇 년 더 지나면 그럴싸한 미남으로 발전할 생김새. 확고하고도 단단한 눈빛. 작고 가늘어 뵈는 체구와는 달리 검은 로브 밑에 숨겨진 꽉 짜인 근육. 걷는 동작에서조차 일말의 허점이 보이지 않는 몸놀림은 필시 고도로 단련된 전사의 것이었다. 여기까지의 관찰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5초, 뒤이어 저격 상황을 상정한 면밀한 시뮬레이션 및 효율적인 각도의 계산, 실패 시의 대응을 기계적으로 산출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도록 훈련받은 저격수이다.
그럼에도 반응이 늦어진 이유는, 허리에 찬 무식하게 큰 시미타르 두 자루와 등에 이고 진 같은 길이의 석 자루와 허리띠에 찔러넣은 단도 두 자루까지 도합 일곱 자루의 어마어마한 중무장에 록온도 나름 기가 질렸기 때문이었다. 창졸간에 모래폭풍을 뒤집어쓰고 쿨럭콜록대다 숨넘어갈 뻔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아니라면 아니다.
옆에서 숨소리도 없이 굳어 있던 타파스가 난데없이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며칠 전 록온이 선물로 준 피스톨을 품에서 뽑아들었다. 여전히 쿨럭이면서도 기겁하여 말리고 나서려 했을 때 소년은 이미 타파스의 코앞으로 쇄도해 있었다.
피스톨을 쥔 오른손의 손목을 내려베며 1격. 오른쪽 옆구리부터 왼쪽 어깨에 걸쳐 2격.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까지 3격. 오른발에 체중을 실어 한 바퀴 돌며 그 반동으로 허리에 4격. 칼날을 세워 가랑이 사이에서부터 머리까지 쳐올리며 5격. 단도를 뽑아 심장과 폐에 동시에 박으며 6격 및 7격. 과잉 칼질이 차라리 예술적인 세븐 소드(Seven Swords)였다.
정줄을 좀만 더 놓고 있었으면 영락없이 오오 감탄하며 기립박수를 칠 뻔한 록온을 향해 토막난 타파스를 가리키면서 소년은 엄숙히도 말했다.
"물을 훔쳤다. (He stole water.)"
한국어로는 두 마디, 영어로도 세 마디.
그걸로 설명 다 됐다 여겼는지 소년은 벙찐 록온을 내팽개치고 한 동작으로 낙타에 뛰어올라 질풍같이 사라졌고, 뒤늦게 정줄 잡은 록온의 비명은 벌써 지평선 저편으로 가물가물해진 소년에게 닿지 못한 채 사막의 후끈한 공기만을 공허하게 뒤흔들었다.
"야, 기다려 임마! 적어도 육하원칙 갖춘 설명은 하고 가──────!! 어이이이이이!!!!"
하리스 부족의 셰리프 세츠나 소란 이븐 엘 이브라힘과 닐 L. 디란디 혹은 록온 스트라토스의 운명적이라면 운명적일 그러나 실상은 황당한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2갬볼푸티 가의 마지막 후손은 이름을 읊다 인터뷰를 끝내지 못하고 사망했다.
알렐루야 아우다 아부 타이(...)를 건드리고파 죽겠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프린스 파이살 티에리아 빈 알 후세인(...)이 먼저지 말입니다. 네푸드 사막도 건너야 하지 말입니다.
뭔가 허접한 크로스오버 주제에 인생 최초의 연재물이 될 것 같지 말입니다.
...Holy shit...!
거기 잊을 만하면 재촉하신 H모 님, 저랑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이 봐 주시지 않음 울 겁니다. 으흐흐흐흐흑.
(정말 상영회라도 할까요?)
2013년 5월 13일 한 줄 더 추가. 정말로 인생 최초의 연재물이 되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