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사막에서는 물 한 방울도 귀중한 보고
Chapter 2.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뻘소리는 작작하고 그냥 건너라
Chapter 3. 무모함이 도를 넘으면 귀신도 질린대더라
Chapter 4. 남자의 헌팅 대사는 예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다
Chapter 5. 바보와 가위는 쓰기 나름
Chapter 6. 잠자는 공주는 원래 변태성욕자의 이야기라죠
Chapter 7. 애들은 모르는 사이에 알아서 자란다
Chapter 8. 참을성도 삼세 번까지
Chapter 9. 나쁜 일은 언제나 한꺼번에 터진다
Chapter 10.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데 정말이긴 한 거냐
Epilogue.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Chapter 9. 나쁜 일은 언제나 한꺼번에 터진다
2기 18화 이후에 닐 디란디의 깊고 거대한 에고에 천장 뚫려 하이킥을 하면서 다 갈아엎었지만 역시 이때만 해도 내가 닐 디란디의 미친 근성을 너무 가볍게 보았지 말입니다 (먼 산) 라일이한테 미주알고주알 보고하고 갈 놈도 라일이한테 격려받을 놈도 결코 아니었어요 이놈의 다메남 색히는orz
뭐 여기는 훨씬 말랑말랑한 세계겠다 픽션으로 라이리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자비라고 생각하자 (더더욱 먼 눈)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설핏 깨어나길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깨어날 때마다 하얀 붕대가 어김없이 시야의 절반을 막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중간에 한 번 저도 모르게 발악하다가 유리파편에 찔려버렸지. 바보같이. 록온은 가물거리는 의식으로도 스스로를 타박했다.
셰리프 나사르가 록온의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바지런히 돌보아 주었지만, 세츠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 ‡ ‡ ‡
세츠나를 비로소 본 것은, 등의 열상이 가까스로 아물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아이는 등을 돌리고 묵묵히 짐을 챙기고 있었다.
"세츠나……? 지금 뭘,"
"네게 귀환 명령이 내려왔다."
비명을 질러대는 몸을 팔꿈치로 지탱해 힘겹게 반쯤 일으킨 록온을, 세츠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보았다.
귀환 명령이라니, 무슨. 나오려던 말은 입안에서 속절없이 사그라들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세츠나가 무덤덤하다고들 하지만, 알고 보면 의외로 눈의 표정은 풍부했다. 지금 이 아이가 기분이 좋은지, 화가 났는지, 토라졌는지, 만족했는지 감정이 곧바로 드러나는 커다란 적갈색 눈동자를 관찰하는 것을, 록온은 내심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눈마저도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탈랄 엘 하레이딘은 살다 살다 너 같은 바보는 처음 보겠다더군."
"세츠나."
"나도 동감이다."
감정 없는 목소리로 내뱉고, 세츠나는 스윽 일어나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록온의 앞에 무릎을 꿇은 아이의 양손이 뒷머리를 움켜쥐고 위로 확 젖혔다. 갑작스런 충격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남자를 전혀 개의치 않고, 아이는 거의 물어뜯다시피 입술을 겹쳐왔다.
록온은 소스라쳤다.
이를 억지로 비틀어 열고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온 혀가, 기교도 아무것도 없이 난폭하게 입안을 헤집고, 얼결에 뒤로 물러나려는 혀를 붙잡아 얽어매고, 잡아당겨 사납게 이를 세웠다.
"……으……!"
짧은 비명이 잇새로 새어나왔지만 아이는 사냥감을 갈기갈기 찢는 맹수의 사나움으로 입안을 사정없이 유린하고 탐닉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호흡마저도 빨아들이는 무자비한 입맞춤에 사고마저 흐려지기 시작한 록온은 반사적으로 세츠나의 팔을 움켜쥐었고, 하지만 그 팔이 너무나도 가늘었기 때문에 제풀에 놀라 놓고 말았다.
키스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당돌하게 끝났다.
피와 타액이 뒤섞인 투명한 실이 한순간 입술 사이에 걸렸다 바닥에 떨어졌고, 숨결이 흐트러진 록온을 있는 힘껏 떠다밀고 세츠나는 벌떡 일어섰다.
"세츠나……!"
아이를 붙잡으려던 손은, 그러나 텐트 틈새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비친 세츠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힘을 잃었다.
아 하느님, 역력하게 상처입고 부서진 열 여섯 살 아이의 참담한 표정이라니.
세츠나는 옷가지를 집어들어 록온에게 내던졌다.
"당장, 카이로로 돌아가!"
‡ ‡ ‡ ‡ ‡
카이로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극비리에 맺은 아랍 나눠먹기 밀약인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발각났음을 알았다.
‡ ‡ ‡ ‡ ‡
"앞으로는 아랍 자치 정부 수립을 떠들면서 뒤로는 그랬단 말이죠?"
"소령."
"영국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건 당연하지만요. 설마 시시한 좀도둑들처럼 사기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소령."
"그래요. 깜박했습니다. 깜박한 내가 바보였어요. 어차피 그게 우리의 잘나신 조국, 위대하고 위대한 그레이트 브리튼의 방식이죠. 약속 따윈 한낱 휴지조각만도 못했었죠. 아랍 독립은 무슨……!"
"소령!"
달려온 카타기리가 그레임의 책상에 양손을 짚고 격앙하는 록온을 의자로 끌다시피 데려가 앉히며 속삭였다. 자네 등이.
반사적으로 등에 손을 대어보았다.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진정하게, 소령."
그레이엄의 어조는 부드럽고도 침착했다. 록온은 가벼운 자기혐오에 사로잡혔다. 흡사 바닥에 누워서 버둥거리며 떼를 쓰고 우는 초딩이 된 기분이었다. 뼛속까지 철저하게 군바리인 그레이엄에게 정치가들의 영역인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가지고 입에 거품을 물어봤자 하등 소용없는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간단한 자제심조차 잊을 만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였다. 갑자기 실감으로 다가오는 피로의 끔찍한 무게감에 숨이 턱 막혔다.
"보고는 들었네. 의사는 오른쪽 눈이 완전히 회복될지는 미지수라 하더군."
그레이엄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려는 듯 잠시 뜸을 들이고, 마침내 말했다.
"록온 스트라토스 소령, 오늘부로 자네의 아랍혁명군 지원 임무를 해제하겠네."
"뭐라고요……!"
"──그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려는 록온을, 뒤에서 뻗어온 섬섬옥수가 양어깨를 지그시 눌러 다시 주저앉혔다. 마치 허공에서 솟아나오기라도 한 듯 급작스럽고도 돌연히 그 자리에 나타난 청량한 목소리가 완벽한 영어로 말했다.
"내 요청이기도 합니다."
짙은 보랏빛을 띤 찰랑이는 머리칼이 관자놀이 곁으로 사르륵 쏟아졌다.
──티에리아.
"파이살 전하."
"앉으십시오, 에이커 경."
티에리아는 우아하게 손을 들어 그레이엄을 제지했다. 역광과 안경 렌즈의 반사광, 그리고 절반이 막힌 시야 때문에 록온에게는 티에리아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일순 무언가가 시선 끝자락을 스쳤었는데……?
"이야기는 세츠나에게 들었습니다."
"티에리아."
"자기 몸 간수는 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록온 스트라토스."
티에리아는 피가 배어나오는 자리를 손톱 끝으로 서서히 힘을 주어가며 찍어눌렀다.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려는 신음소리를 록온은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삼켰다. 그리고, 렌즈의 반사광 너머로 얼핏 비친 아름다운 붉은 눈 속에서, 한 점의 불순물도 없이 이글거리는 순수한 감정의 실체를 돌연 깨달았다.
분노였다.
티에리아는, 격노하고 있었다.
"아랍혁명군의 최고사령관으로써, 이제까지 귀관이 보여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바닥과 천장이 온통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 얼레.
빠른 속도로 시야가 기울어지며 세상이 한 점으로 수축했다.
"록온 스트라토스!"
귓전에서 티에리아의 당혹스런 외침이 울려퍼지고, 책상 건너편에서 자리를 박차고 달려오는 그레이엄이 보였던 것도 같았지만.
이런 맙소사, 왜 그레이엄이 둘이지?
그게 제대로 떠올릴 수 있었던 마지막 문장이었다.
‡ ‡ ‡ ‡ ‡
록온은 멍청하게 병원의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남자가 되어서 스물 넷이나 주워먹은 보람도 없이 공중의 면전에서 기절해 병원에 실려오는 신세가 되다니. 스스로의 체력과 정신력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박살이 난지 오래였다.
엉겁결에 국제적 사기단의 일원이 된 기분도 말 못하게 더러웠지만, 무엇보다 상처입은 세츠나의 얼굴과 분노에 찬 티에리아의 붉은 눈동자가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실망시켰고, 화나게 했고, 울려버렸다.
캠프를 몰래 나와서 데라로 향했을 때는 이런 결과도 전부 각오하고 기꺼이 감수하기로 결심했었을 터였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이건 예상 이상으로 아팠다. 나는 백주대로에서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사람을 다치게 하다 지도 찌르고 아프다고 징징 우는 중2병 테러범인가. 울고 싶어질 만큼 한심스러운데 뭐라 반박할 말은 없는 비유였다.
록온은 베개에 얼굴을 치대면서 신음했다.
"최악……!"
"형."
침대 아래쪽에서 라일이 불쑥 솟아올랐다.
"우와아아아아악!!!"
굴러 떨어질 뻔했다.
"아 거, 귀청 떨어지겠수. 누가 들으면 유령 본 줄 알겠다. 다 큰 어른이 체신머리없게."
"너야말로 뭣 땜에 침대 밑에서 나타나는 거냣!"
"따지지 마."
"안 따지게 생겼어!"
까짓 아우성쯤은 모른 척 씹고, 라일은 하얗고 모양 좋은 손가락을 뻗어 형의 오른쪽 얼굴 반을 덮은 붕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자연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반 년만에 겨우 보나 싶었더니 꼴 하고는……."
"죄송합니다."
"만신창이만 되어 왔음 말을 안 해요, 사령관실에서 픽 기절해서 갖은 민폐를 다 끼치질 않나, 파이살 왕자에게 공주님 안기로 병원까지 들려오질 않나, 애꿎은 간호사는 붙잡고 세츠나──세츠나──형아가 잘못했어 훌쩍훌쩍 울면서 별 청승을 다 떨질 않나, 벗겨놓고 보니 기껏 붙은 상처는 깡그리 다 터져 있고, 아 진짜 창피해서……이번에야말로 확 인연 끊을까 했네."
"커흑."
아픈 심장과 쑤시는 위장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다, 불행히도 문장 속에 무언가 상황에 맞지 않는 볼록체가 끼여 있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동생아."
"응."
"방금 뭐라 그랬니."
"이번에야말로 확 인연,"
"아니 그 앞에."
"벗겨놓고 보니 기껏 붙은,"
"아니 그 앞에."
"애꿎은 간호사는 붙잡고,"
"아니 그 앞에."
"파이살 왕자에게 공주님 안기로 병원까지 들려오질 않나."
"동생아."
"응."
"자꾸 파이살 왕자로 들리는구나."
"제대로 들었어."
소녀처럼 섬세한 미모의 티에리아가 3인치는 더 큰 자신을 안고 씩씩하게 병원 복도를 질주하는 광경을 반사적으로 그려보고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야이 그레이엄 이 쓸모없는 놈아 차라리 니놈이 업고 오란 말이다!
"형, 목은 그만 쥐어뜯고 현실세계로 돌아와."
"내, 내 팔자 대체 왜 이럴까……."
"지은 죄가 많아서겠지."
"……저기, 형제애는……!?"
"미안해, 없어."
"라일────────!!!"
‡ ‡ ‡ ‡ ‡
"그래서, 이젠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예전처럼 다시 카이로 사령부에 근무하는 거지."
"형은 그래도 좋아?"
"응? 얘가 무슨……."
"가고 싶잖아."
"……웃."
라일의 명도 높은 청록색 눈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 옛날부터 형제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고, 숨길 수도 없었다. 일란성 쌍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세츠나한텐 쫓겨났고, 티에리아는 돌아오지 말라고──."
"그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아니."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했어?"
"……아, 아니."
"형……어떻게 사람이 여기까지 바보일 수가……."
"어흑흑 경멸조의 시선이 따갑습니다!"
"걔네들을 대신해서 내가 좀 패줄까."
"도 동생아 살기가 충천한 게 많이 무섭다만 형아는 지금 환자란……아야야야야야얏!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항복항복!"
"닥치고 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어. 때리면 때리는 대로 다 맞아. 나 죽여줍쇼 하고 엎드려 있어."
"……."
"형이 말한 대로 착한 애들이라면, 용서해 줄 거야. ……형이 바보짓이나 하고 걱정을 끼쳐서 화가 났을 뿐이지. 정말 형을 미워하는 게 아닐 테니까."
"……응, 그랬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좋아하시네. 이 사람 기합이 빠졌어."
"아야야야야야얏!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남자는 배짱이라며. 부딪쳐서 깨지고 와."
"깨지는 거 확정입니까!?"
그러고도 얼마간 더 손속을 둘 생각이 전혀 없는 (그러니까 형제애는?) 라일에게 목을 실컷 비틀렸다. 목뼈는 맛이 갔지만 마음만은 훨씬 가벼워졌으므로, 내친 김에 협정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가슴 속 한켠에 자리잡았고, 방금 전에 완전히 제 모양을 갖춘 결심도 동생에게만은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말이다, 라일."
"알고 있어."
라일은 손을 내저어 형의 말을 가로막았다.
"사이크스-피코인지 뭔지, 소식 들었을 때부터 감이 오더라. 이 사람이라면 보나마나 열받아서 나 이 짓 못 해! 안 해! 하고 사표 던지고 사령부에서 니트짓하든지 이 색히들 어디 두고 보자 이 갈면서 아랍혁명을 곧 죽어도 성공시키든지 둘 중의 하나겠다 싶대."
"……."
"보아하니 후자고, 여차직하면 영국군도 때려치울 생각이지. 아냐?"
"……날 너무 이해해줘서 형아는 기쁘다 라일아……."
어쩌면, 고국 땅을 더는 밟지 못할지도 모르고, 동생 얼굴조차 두 번 다시 못 보게 될지도 모르는 결심이었다. 그도 알았고, 당연히 라일도 알았으며, 서로가 알았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감이 빠른 동생은 티를 내지 않고 단지 웃어만 보였다.
"형이 원하는 대로 해."
"라일……."
"뭘 내 눈치는 보고 그래. 지가 언제부터 남말 꼬박꼬박 들었다고."
"윽."
"항상 형이 옳다고 믿는 쪽으로 불도저처럼 우악스럽게 밀어붙였으면서. 이번에도 그러면 되잖아."
"동생아."
"왜."
"뭔가 비난받는 기분이 살살 치밀어 오르는구나."
"아닌 줄 알았어?"
라일은 충격 먹고 베개에 거꾸로 처박힌 형을 외면했다. 군의관은 노가다가 따로 없는 직업이고 따라서 꺾어진 환갑이 다 되어 동생의 사소한 까칠거림에 일일이 상처 입는 팔불출에게 꼬박꼬박 맞춰줄 여분의 체력 따위 애시당초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놈의 가족이 뭔지 형제가 뭔지 옛날엔귀여웠는데으흑흑흑 궁상을 떠는 형이 쬐끔 가여워진 착한 동생은 결국 고개를 잘레잘레 젓고 상처에 소금을 끼얹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예 무시하느니 이쪽이 훨씬 자비롭다.
"청승맞게 애꿎은 베개에 눈물콧물 짜지 마. 첫째로 꼴사납고 둘째로 세탁이 공으로 되는 줄 알아?"
"어흑흑흑."
"어휴 이제 그놈의 지겨운 면상, 잘하면 아예 안 봐도 된단 말이지. 상상만 해도 속이 다 시원하네. 아아 상쾌해라."
"가……족애는! 형제애는 어디로 가고! 형을 못 보는 게 그리도 좋더냐 그리도 후련하더냐 이 매정한 녀석아!"
"형의 쨍알쨍알 잔소리에서 드디어 해방인데 안 좋아하게 생겼어."
"뭣이라! 오기로라도 잔소리는 계속 해주마!"
"……이 기회에 동생한테서 졸업 좀 하지?"
"못 해. 안 해."
"자랑이냐!"
"응."
"얼른 아랍에나 가 버려!"
뻔뻔하게 가슴을 펴는 형을 냅다 걷어차고, 라일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손을 탁 쳤다.
"그 대신."
"대신?"
"세츠나. ……세츠나 소란 이븐 엘 이브라힘이랬던가?"
라일은 노래하듯이 이름을 발음했다.
"때가 되면, 나한테도 소개해 줘. ……형의 동생은, 내게도 동생이잖아?"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이 얼마나 말갛던지, 심장이 찌르르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내 가족, 내 보물.
"라일."
"응?"
"좀 안아보자 내 새끼."
"우린 쌍둥이고, 난 스물 넷 장정이고, 징그럽거든요 바보 형님."
말은 매몰차게 하면서도 라일은 내민 양팔에 순순히 안겨왔다.
오랜만에 겹친 동생의 입술은, 변함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깨어날 때마다 하얀 붕대가 어김없이 시야의 절반을 막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중간에 한 번 저도 모르게 발악하다가 유리파편에 찔려버렸지. 바보같이. 록온은 가물거리는 의식으로도 스스로를 타박했다.
셰리프 나사르가 록온의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바지런히 돌보아 주었지만, 세츠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세츠나를 비로소 본 것은, 등의 열상이 가까스로 아물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아이는 등을 돌리고 묵묵히 짐을 챙기고 있었다.
"세츠나……? 지금 뭘,"
"네게 귀환 명령이 내려왔다."
비명을 질러대는 몸을 팔꿈치로 지탱해 힘겹게 반쯤 일으킨 록온을, 세츠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보았다.
귀환 명령이라니, 무슨. 나오려던 말은 입안에서 속절없이 사그라들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세츠나가 무덤덤하다고들 하지만, 알고 보면 의외로 눈의 표정은 풍부했다. 지금 이 아이가 기분이 좋은지, 화가 났는지, 토라졌는지, 만족했는지 감정이 곧바로 드러나는 커다란 적갈색 눈동자를 관찰하는 것을, 록온은 내심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눈마저도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탈랄 엘 하레이딘은 살다 살다 너 같은 바보는 처음 보겠다더군."
"세츠나."
"나도 동감이다."
감정 없는 목소리로 내뱉고, 세츠나는 스윽 일어나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록온의 앞에 무릎을 꿇은 아이의 양손이 뒷머리를 움켜쥐고 위로 확 젖혔다. 갑작스런 충격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남자를 전혀 개의치 않고, 아이는 거의 물어뜯다시피 입술을 겹쳐왔다.
록온은 소스라쳤다.
이를 억지로 비틀어 열고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온 혀가, 기교도 아무것도 없이 난폭하게 입안을 헤집고, 얼결에 뒤로 물러나려는 혀를 붙잡아 얽어매고, 잡아당겨 사납게 이를 세웠다.
"……으……!"
짧은 비명이 잇새로 새어나왔지만 아이는 사냥감을 갈기갈기 찢는 맹수의 사나움으로 입안을 사정없이 유린하고 탐닉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호흡마저도 빨아들이는 무자비한 입맞춤에 사고마저 흐려지기 시작한 록온은 반사적으로 세츠나의 팔을 움켜쥐었고, 하지만 그 팔이 너무나도 가늘었기 때문에 제풀에 놀라 놓고 말았다.
키스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당돌하게 끝났다.
피와 타액이 뒤섞인 투명한 실이 한순간 입술 사이에 걸렸다 바닥에 떨어졌고, 숨결이 흐트러진 록온을 있는 힘껏 떠다밀고 세츠나는 벌떡 일어섰다.
"세츠나……!"
아이를 붙잡으려던 손은, 그러나 텐트 틈새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비친 세츠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힘을 잃었다.
아 하느님, 역력하게 상처입고 부서진 열 여섯 살 아이의 참담한 표정이라니.
세츠나는 옷가지를 집어들어 록온에게 내던졌다.
"당장, 카이로로 돌아가!"
카이로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극비리에 맺은 아랍 나눠먹기 밀약인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발각났음을 알았다.
"앞으로는 아랍 자치 정부 수립을 떠들면서 뒤로는 그랬단 말이죠?"
"소령."
"영국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건 당연하지만요. 설마 시시한 좀도둑들처럼 사기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소령."
"그래요. 깜박했습니다. 깜박한 내가 바보였어요. 어차피 그게 우리의 잘나신 조국, 위대하고 위대한 그레이트 브리튼의 방식이죠. 약속 따윈 한낱 휴지조각만도 못했었죠. 아랍 독립은 무슨……!"
"소령!"
달려온 카타기리가 그레임의 책상에 양손을 짚고 격앙하는 록온을 의자로 끌다시피 데려가 앉히며 속삭였다. 자네 등이.
반사적으로 등에 손을 대어보았다.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진정하게, 소령."
그레이엄의 어조는 부드럽고도 침착했다. 록온은 가벼운 자기혐오에 사로잡혔다. 흡사 바닥에 누워서 버둥거리며 떼를 쓰고 우는 초딩이 된 기분이었다. 뼛속까지 철저하게 군바리인 그레이엄에게 정치가들의 영역인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가지고 입에 거품을 물어봤자 하등 소용없는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간단한 자제심조차 잊을 만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였다. 갑자기 실감으로 다가오는 피로의 끔찍한 무게감에 숨이 턱 막혔다.
"보고는 들었네. 의사는 오른쪽 눈이 완전히 회복될지는 미지수라 하더군."
그레이엄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려는 듯 잠시 뜸을 들이고, 마침내 말했다.
"록온 스트라토스 소령, 오늘부로 자네의 아랍혁명군 지원 임무를 해제하겠네."
"뭐라고요……!"
"──그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려는 록온을, 뒤에서 뻗어온 섬섬옥수가 양어깨를 지그시 눌러 다시 주저앉혔다. 마치 허공에서 솟아나오기라도 한 듯 급작스럽고도 돌연히 그 자리에 나타난 청량한 목소리가 완벽한 영어로 말했다.
"내 요청이기도 합니다."
짙은 보랏빛을 띤 찰랑이는 머리칼이 관자놀이 곁으로 사르륵 쏟아졌다.
──티에리아.
"파이살 전하."
"앉으십시오, 에이커 경."
티에리아는 우아하게 손을 들어 그레이엄을 제지했다. 역광과 안경 렌즈의 반사광, 그리고 절반이 막힌 시야 때문에 록온에게는 티에리아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일순 무언가가 시선 끝자락을 스쳤었는데……?
"이야기는 세츠나에게 들었습니다."
"티에리아."
"자기 몸 간수는 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록온 스트라토스."
티에리아는 피가 배어나오는 자리를 손톱 끝으로 서서히 힘을 주어가며 찍어눌렀다.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려는 신음소리를 록온은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삼켰다. 그리고, 렌즈의 반사광 너머로 얼핏 비친 아름다운 붉은 눈 속에서, 한 점의 불순물도 없이 이글거리는 순수한 감정의 실체를 돌연 깨달았다.
분노였다.
티에리아는, 격노하고 있었다.
"아랍혁명군의 최고사령관으로써, 이제까지 귀관이 보여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바닥과 천장이 온통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 얼레.
빠른 속도로 시야가 기울어지며 세상이 한 점으로 수축했다.
"록온 스트라토스!"
귓전에서 티에리아의 당혹스런 외침이 울려퍼지고, 책상 건너편에서 자리를 박차고 달려오는 그레이엄이 보였던 것도 같았지만.
이런 맙소사, 왜 그레이엄이 둘이지?
그게 제대로 떠올릴 수 있었던 마지막 문장이었다.
록온은 멍청하게 병원의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남자가 되어서 스물 넷이나 주워먹은 보람도 없이 공중의 면전에서 기절해 병원에 실려오는 신세가 되다니. 스스로의 체력과 정신력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박살이 난지 오래였다.
엉겁결에 국제적 사기단의 일원이 된 기분도 말 못하게 더러웠지만, 무엇보다 상처입은 세츠나의 얼굴과 분노에 찬 티에리아의 붉은 눈동자가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실망시켰고, 화나게 했고, 울려버렸다.
캠프를 몰래 나와서 데라로 향했을 때는 이런 결과도 전부 각오하고 기꺼이 감수하기로 결심했었을 터였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이건 예상 이상으로 아팠다. 나는 백주대로에서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사람을 다치게 하다 지도 찌르고 아프다고 징징 우는 중2병 테러범인가. 울고 싶어질 만큼 한심스러운데 뭐라 반박할 말은 없는 비유였다.
록온은 베개에 얼굴을 치대면서 신음했다.
"최악……!"
"형."
침대 아래쪽에서 라일이 불쑥 솟아올랐다.
"우와아아아아악!!!"
굴러 떨어질 뻔했다.
"아 거, 귀청 떨어지겠수. 누가 들으면 유령 본 줄 알겠다. 다 큰 어른이 체신머리없게."
"너야말로 뭣 땜에 침대 밑에서 나타나는 거냣!"
"따지지 마."
"안 따지게 생겼어!"
까짓 아우성쯤은 모른 척 씹고, 라일은 하얗고 모양 좋은 손가락을 뻗어 형의 오른쪽 얼굴 반을 덮은 붕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자연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반 년만에 겨우 보나 싶었더니 꼴 하고는……."
"죄송합니다."
"만신창이만 되어 왔음 말을 안 해요, 사령관실에서 픽 기절해서 갖은 민폐를 다 끼치질 않나, 파이살 왕자에게 공주님 안기로 병원까지 들려오질 않나, 애꿎은 간호사는 붙잡고 세츠나──세츠나──형아가 잘못했어 훌쩍훌쩍 울면서 별 청승을 다 떨질 않나, 벗겨놓고 보니 기껏 붙은 상처는 깡그리 다 터져 있고, 아 진짜 창피해서……이번에야말로 확 인연 끊을까 했네."
"커흑."
아픈 심장과 쑤시는 위장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다, 불행히도 문장 속에 무언가 상황에 맞지 않는 볼록체가 끼여 있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동생아."
"응."
"방금 뭐라 그랬니."
"이번에야말로 확 인연,"
"아니 그 앞에."
"벗겨놓고 보니 기껏 붙은,"
"아니 그 앞에."
"애꿎은 간호사는 붙잡고,"
"아니 그 앞에."
"파이살 왕자에게 공주님 안기로 병원까지 들려오질 않나."
"동생아."
"응."
"자꾸 파이살 왕자로 들리는구나."
"제대로 들었어."
소녀처럼 섬세한 미모의 티에리아가 3인치는 더 큰 자신을 안고 씩씩하게 병원 복도를 질주하는 광경을 반사적으로 그려보고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야이 그레이엄 이 쓸모없는 놈아 차라리 니놈이 업고 오란 말이다!
"형, 목은 그만 쥐어뜯고 현실세계로 돌아와."
"내, 내 팔자 대체 왜 이럴까……."
"지은 죄가 많아서겠지."
"……저기, 형제애는……!?"
"미안해, 없어."
"라일────────!!!"
"그래서, 이젠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예전처럼 다시 카이로 사령부에 근무하는 거지."
"형은 그래도 좋아?"
"응? 얘가 무슨……."
"가고 싶잖아."
"……웃."
라일의 명도 높은 청록색 눈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 옛날부터 형제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고, 숨길 수도 없었다. 일란성 쌍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세츠나한텐 쫓겨났고, 티에리아는 돌아오지 말라고──."
"그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아니."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했어?"
"……아, 아니."
"형……어떻게 사람이 여기까지 바보일 수가……."
"어흑흑 경멸조의 시선이 따갑습니다!"
"걔네들을 대신해서 내가 좀 패줄까."
"도 동생아 살기가 충천한 게 많이 무섭다만 형아는 지금 환자란……아야야야야야얏!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항복항복!"
"닥치고 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어. 때리면 때리는 대로 다 맞아. 나 죽여줍쇼 하고 엎드려 있어."
"……."
"형이 말한 대로 착한 애들이라면, 용서해 줄 거야. ……형이 바보짓이나 하고 걱정을 끼쳐서 화가 났을 뿐이지. 정말 형을 미워하는 게 아닐 테니까."
"……응, 그랬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좋아하시네. 이 사람 기합이 빠졌어."
"아야야야야야얏!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남자는 배짱이라며. 부딪쳐서 깨지고 와."
"깨지는 거 확정입니까!?"
그러고도 얼마간 더 손속을 둘 생각이 전혀 없는 (그러니까 형제애는?) 라일에게 목을 실컷 비틀렸다. 목뼈는 맛이 갔지만 마음만은 훨씬 가벼워졌으므로, 내친 김에 협정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가슴 속 한켠에 자리잡았고, 방금 전에 완전히 제 모양을 갖춘 결심도 동생에게만은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말이다, 라일."
"알고 있어."
라일은 손을 내저어 형의 말을 가로막았다.
"사이크스-피코인지 뭔지, 소식 들었을 때부터 감이 오더라. 이 사람이라면 보나마나 열받아서 나 이 짓 못 해! 안 해! 하고 사표 던지고 사령부에서 니트짓하든지 이 색히들 어디 두고 보자 이 갈면서 아랍혁명을 곧 죽어도 성공시키든지 둘 중의 하나겠다 싶대."
"……."
"보아하니 후자고, 여차직하면 영국군도 때려치울 생각이지. 아냐?"
"……날 너무 이해해줘서 형아는 기쁘다 라일아……."
어쩌면, 고국 땅을 더는 밟지 못할지도 모르고, 동생 얼굴조차 두 번 다시 못 보게 될지도 모르는 결심이었다. 그도 알았고, 당연히 라일도 알았으며, 서로가 알았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감이 빠른 동생은 티를 내지 않고 단지 웃어만 보였다.
"형이 원하는 대로 해."
"라일……."
"뭘 내 눈치는 보고 그래. 지가 언제부터 남말 꼬박꼬박 들었다고."
"윽."
"항상 형이 옳다고 믿는 쪽으로 불도저처럼 우악스럽게 밀어붙였으면서. 이번에도 그러면 되잖아."
"동생아."
"왜."
"뭔가 비난받는 기분이 살살 치밀어 오르는구나."
"아닌 줄 알았어?"
라일은 충격 먹고 베개에 거꾸로 처박힌 형을 외면했다. 군의관은 노가다가 따로 없는 직업이고 따라서 꺾어진 환갑이 다 되어 동생의 사소한 까칠거림에 일일이 상처 입는 팔불출에게 꼬박꼬박 맞춰줄 여분의 체력 따위 애시당초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놈의 가족이 뭔지 형제가 뭔지 옛날엔귀여웠는데으흑흑흑 궁상을 떠는 형이 쬐끔 가여워진 착한 동생은 결국 고개를 잘레잘레 젓고 상처에 소금을 끼얹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예 무시하느니 이쪽이 훨씬 자비롭다.
"청승맞게 애꿎은 베개에 눈물콧물 짜지 마. 첫째로 꼴사납고 둘째로 세탁이 공으로 되는 줄 알아?"
"어흑흑흑."
"어휴 이제 그놈의 지겨운 면상, 잘하면 아예 안 봐도 된단 말이지. 상상만 해도 속이 다 시원하네. 아아 상쾌해라."
"가……족애는! 형제애는 어디로 가고! 형을 못 보는 게 그리도 좋더냐 그리도 후련하더냐 이 매정한 녀석아!"
"형의 쨍알쨍알 잔소리에서 드디어 해방인데 안 좋아하게 생겼어."
"뭣이라! 오기로라도 잔소리는 계속 해주마!"
"……이 기회에 동생한테서 졸업 좀 하지?"
"못 해. 안 해."
"자랑이냐!"
"응."
"얼른 아랍에나 가 버려!"
뻔뻔하게 가슴을 펴는 형을 냅다 걷어차고, 라일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손을 탁 쳤다.
"그 대신."
"대신?"
"세츠나. ……세츠나 소란 이븐 엘 이브라힘이랬던가?"
라일은 노래하듯이 이름을 발음했다.
"때가 되면, 나한테도 소개해 줘. ……형의 동생은, 내게도 동생이잖아?"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이 얼마나 말갛던지, 심장이 찌르르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내 가족, 내 보물.
"라일."
"응?"
"좀 안아보자 내 새끼."
"우린 쌍둥이고, 난 스물 넷 장정이고, 징그럽거든요 바보 형님."
말은 매몰차게 하면서도 라일은 내민 양팔에 순순히 안겨왔다.
오랜만에 겹친 동생의 입술은, 변함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2기 18화 이후에 닐 디란디의 깊고 거대한 에고에 천장 뚫려 하이킥을 하면서 다 갈아엎었지만 역시 이때만 해도 내가 닐 디란디의 미친 근성을 너무 가볍게 보았지 말입니다 (먼 산) 라일이한테 미주알고주알 보고하고 갈 놈도 라일이한테 격려받을 놈도 결코 아니었어요 이놈의 다메남 색히는orz
뭐 여기는 훨씬 말랑말랑한 세계겠다 픽션으로 라이리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자비라고 생각하자 (더더욱 먼 눈)